짜릿한 e스포츠의 한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일'의 영역에서 e스포츠는 그 특성이 다를 뿐, 결과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다른 일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결승전 단 하루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개월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협업하고, 사업으로서 이 모든 것들이 지속적으로 영위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며 여러 부서가 함께 움직이죠.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느리고 답답합니다. e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도 많습니다. 다만, 그 속에서 계속해서 가능성을 찾아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할 뿐입니다.
이번에 글을 쓰게 된 동기는 그동안의 경험을 공유하면 어떨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경험에서 나온 글이므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드릴지 장담할 순 없지만, 워낙 관련 정보를 쉽게 얻기 어려운 환경이다보니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일전에 우연히 기회가 되어 지망생분들과 함께 자리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실무적인 정보를 얻기 어렵고, 어떻게 취업을 준비해야하는지 막막하다'는 질문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매한가지고 저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e스포츠'라는 분야를 다룰 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각각의 부서와 담당자들을 만나고, 약속을 잡고, 의견을 교환하며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목적을 달성해나가는 과정이 주를 이룹니다. e스포츠는 보통 게임사에서 직접 전담 부서를 꾸려 전체를 관리하기도 하지만, 마케팅 목적에서 e스포츠를 전문으로 기획, 제작, 운영하는 외부 업체와 함께 진행되기도 합니다. 물론 e스포츠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요즘은 인플루언서 중심으로도 크고 작은 대회가 이루어지고 있어 더 다양한 조직 간에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e스포츠는 기획부터 방송제작, 운영까지 모두 전문적인 경험치가 몹시 필요하므로 다양한 인원들이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모든 일의 처음에는 반드시 '목표'가 있듯, e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창기의 e스포츠가 '마케팅' 목적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현재에도 마케팅은 물론 고레벨 유저들을 위한 즐길거리를 위해 e스포츠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e스포츠는 보통 '실력'을 기반으로 랭크나 점수 등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구조로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참신한 전략과 화려한 기술들은 플레이어가 게임이라는 규칙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나는 짜릿한 승리의 경험이 계속해서 e스포츠에 열광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고 새로운 유저를 유입시키는 접점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외에도 회사와 조직은 다양한 목표들을 달성하고자 '일'을 시작합니다.
일은 정해진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장 적합한 수단'을 찾아 실행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입니다. 게임의 특성에 맞춰 유저들의 니즈(needs), 기존의 히스토리 등을 분석하고 필요한 인력과 비용을 계산하며, 모든 가능성을 두고 가장 적절한 수단을 조합하여 '계획'을 수립합니다. 예를 들어 '마케팅'을 해야할 때, 인플루언서를 섭외하거나, TV 광고를 제작한다거나, PPL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진행하듯이 e스포츠 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서 선택되곤 하죠. 보통 계획서에는 ①프로젝트의 목적(이유, WHY)과 ②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일정, 진행 시기, 필요인력, 비용, 진행방식, 마케팅 전략, 예상 기대 효과, KPI 등)이 포함됩니다. 이 과정에서 정확한 시장분석으로 적합한 목표가 수립되었는지, 계획은 현실적이며 구체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수립되었는지 끊임없이 논의하고 보완합니다. 또한 여러 부서가 참여해야만 하므로 각자의 이해관계를 설득하고, 혼선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역량이 매우 중요합니다. (보통 해당 프로젝트의 PM이 전반적인 조율을 담당하죠.) 마침내 계획이 수립되고 예산과 인력이 확보되었다면 이제 일을 실제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하나의 대회를 만들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요소들은 정말 많습니다. 'e스포츠를 좋아해서'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다는 분들에게는 종종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80%의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말을 드리곤 합니다. e스포츠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짜릿한 한 장면을 만들기까지 무대 위에 오른 선수는 물론이거니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묵묵하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수립하고, 일정을 체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방송CG, 타이틀, 대회로고, 출연진 섭외, 장소 대관, 티켓팅 준비, 운영 메뉴얼 작성, 대회규정수립, 방송연출, 소품제작, 이슈 대응, 스탭채용, 현장테스트 등 정말 다양한 요소들을 준비해야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여러 조직과 부서들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며 진행되며, 대부분 핵심적인 업무는 비슷하게 진행되지만 매번 새로운 시장의 니즈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고 결과물로 만들어야하는 어려운 미션들이 생겨나곤 합니다. 물론 '누구나 얻어맞기 전까지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처럼 계획과 다른 문제나 상황들이 발생했을 때에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과 대응책을 준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겠습니다.
#사업부서(+영업)
사업과 마케팅은 e스포츠 본래의 목적이자, 많은 부서들과 함께 계속 e스포츠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업파트는 여러 클라이언트 또는 제작업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며 전체 과정을 조율하고, 회사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합니다. 여기에는 좋은 퀄리티를 만드는 업체나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발굴하려는 영업도 포함되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e스포츠는 다양한 전문인력이 요구되는 프로젝트이므로 필요한 인력과 리소스를 구비하는 것도 사업의 일환입니다. (물론 규모가 크지 않은 선에서 작은 팀 단위로도 직접 진행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규모와 프로젝트의 난이도에 따라서 케이스마다 다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업부서는 이 과정에서 회사 내부 자원이나 인력을 구성하며, 물론 외부에서 협력 업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며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필요한 전문인력과 자원을 확보합니다. 여기에는 사업적으로도 충분한 이윤과 가치를 창출하여야 하는 목적이 있으며, e스포츠 또한 '사업'이므로 충분한 비용이 없다면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케팅은 많은 사람들이 대회를 시청하거나 참여할 수 있도록 '흥행'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시행합니다. 보통 대회는 시청자나 참가자 등을 중요한 목표(KPI)로 보기도 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저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대회로 비춰질 수 있도록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적합한 방법과 컨셉을 찾고, 효과적인 타이밍에 적절하게 정보가 유통될 수 있도록 합니다. 단순한 배너 노출이더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달되느냐도 살펴봐야하고, 자연스럽게 유저들이 관심을 가지고 관련 정보를 확산시킬 수 있도록 계속해서 고민합니다.
#방송제작부서
e스포츠 대회는 생방송 중계를 통해 보통 송출되며, 그 외에 하이라이트 및 시청자들의 재미를 위한 별도의 편집 콘텐츠들로 구성되곤 합니다. 인플루언서가 참여하는 대회의 경우라면 그 자체로 다양한 콘텐츠가 창발되기도 하며, 대회 도중 극적으로 나타나는 장면들이 그 자체로 스토리가 되어 놀라운 경험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마케팅이나 후속 콘텐츠로 이어나가는 것도 방송제작의 일부이기도 하죠.
보통 대회의 기본적인 구성(종목, 컨셉, 일정 등)이 마련되면 대회를 대표하는 로고/슬로건을 정하고, 여러 상징이나 컬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차별적인 매력으로 각인되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대회 종목이나 진행 방식에 따라 생방송에서 보여드려야하는 내용들을 구성하며, 이를 CG와 출연진, 광고영상, 배너 등으로 어떻게 노출시킬지 고민합니다. 특히 하나의 방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촘촘한 구성과 이미지들이 필요합니다. 이 부분을 'OAP'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대회 중계에서 볼 수 있는 자막이나, 정보 전달을 위한 안내화면(개요, 방식, 상금 등), 중계진 네임바, 경기 중 하단 바, 광고배너, 승/패 표기, 진영표기, POV캠, 트랜지션, 옵저버 등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이 요구됩니다. 즉, 카메라에 담겨지는 영상 이외에 모든 그래픽 효과들은 전담부서를 통해서 제작되고, 정확한 시점과 컷에 맞추어 PD와 연출진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움직입니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중계와 스튜디오에서는 생방송에 맞춰 정확한 준비가 되도록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합니다. 섭외된 중계진의 헤어메이크업과 의상을 준비하고, 대본을 작성합니다. 현장에서는 각 타이밍에 맞춰 원하는 연출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여러번의 리허설을 거쳐 동선과 연출을 기획합니다. 여기에는 선수들의 등장/퇴장 동선부터 시상식을 위한 자리배치까지 다양한 지점을 고려해야하고, 현장 상황에 맞게 카메라에 담기는 장면을 꼼꼼하게 체크합니다. 특히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e스포츠는 작은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미리 모든 부분을 체크해두어야만 합니다. 하나의 방송이 정확한 시간에 계획된 연출에 맞춰 정확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부분(인터넷, 송출장비, 대회PC, 대관처 전기 사용 이슈 등)은 물론이고, 경기 도중 발생하는 돌발상황도 염두해야 하며, 이를 위해 출연진이나 연출인력들과 사전에 대응 약속된 방안을 마련합니다. (물론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장은 언제나 늘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는 곳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대회운영부서
하나의 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운영인력도 필요합니다. 게임마다 진행방식이나 룰, 규정이 천차만별이므로 게임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스포츠 심판은 해당 게임의 규정을 잘 숙지하고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책임을 가집니다. 다만, 게임은 '버그'나 '기술적 문제'에 대한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죠. 만약 축구 경기 도중 축구공이 터져버렸다거나, 야구장의 조명이 꺼지는 등의 문제와 같다고도 볼 수 있지만, 게임은 그런 상황이 야기될 수 있는 확률이 다소 높은 편입니다. (게임 업데이트에 따라 새로이 나타나는 버그, 컴퓨터 자체의 이슈, 새로운 컴퓨터 주변기기 설치에 따른 소프트웨어 충돌, 통신 장애로 인한 접속 장애, 방송 기기의 기술적 이슈 ··· 등등) 가급적 많은 준비를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은 늘 발생한다는 점은 여러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대회의 운영진이 심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편, 대회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양측의 선수가 약속된 시간에 만나 규정에 따라 올바른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할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합니다. 대회 진행 전에는 종목에 따라 적합한 규정을 검토하고, 신규 업데이트 등으로 변동된 사항들이 있거나 예상가능한 이슈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대회의 일정에 맞춰 참가자들이 현장(오프라인)이나 약속된 온라인 경기 플랫폼(디스코드 서버나 lvup.gg같은 e스포츠 토너먼트 플랫폼 등)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고, 대회 진행을 위해 필요한 순서와 대진표를 작성합니다. (맵픽, 진영선택, 선공후공, 참가 선수 신원 확인 등) 또한 진행 과정에서 규정에 어긋난 세팅 또는 기기를 사용하였거나, 부정행위는 없었는지 모니터링 합니다. 필요한 경우 운영진은 규정에 따라 돌발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며, 대회결과가 기록된 내용과 다르지 않은지 최종적으로 확인합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대회의 경우 운영팀과 방송제작팀은 긴밀하게 소통하며 방송과 경기가 맞춰서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력합니다.
#게임단
e스포츠는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인력은 물론 실제 경기를 진행하는 수많은 참가자들이 존재하여야만 진행될 수 있습니다. 게임단은 정해진 일정에 맞춰 선수들의 기량을 높이는 다양한 전략과 방법을 고민하며, 단순히 '게임 실력 향상'을 넘어 올바른 생활습관 및 태도 함양과 체력 및 멘탈관리를 통해 더욱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장시간 게임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긴장된 순간들을 버텨내야하는 선수들에게 발생하는 높은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 또한 오랜 선수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필요한 서류준비, 선수계약서 작성, 팀 홍보 활동, 외부 커뮤니케이션 조율, 다양한 영상 촬영, 인터뷰 대응, 팬들과의 교류 등 선수들과 게임단에 요구되는 다양한 업무들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이는 앞서도 말씀드렸던 '좋아하는 일을 위해 80%의 하기 싫은 업무를 해야한다'에 해당합니다. 특히 하나의 사업으로서 게임단이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하려면 충분한 투자나 수익모델을 찾는 고민이 요구되며, 국내에서도 다양한 팀들과 게임단들이 각자의 개성있는 사업수단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게임단의 상황이나 규모, 사업구조에 따라 그 형태와 접근방법은 매우 다르므로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 물론 위에 언급한 부서가 정확하게 나눠지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각 회사의 성격과 스타일에 따라서 부서를 표현하는 명칭부터 업무 범위, 업무 프로세스가 다를 수 있으며, 여러 부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어떤 역량이나 부서들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관련 업종의 채용공고를 통해서 부서와 요구되는 역량, 주요 업무들을 살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일은 기본적인 과정을 따른다'는 말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일을 한다'는 것이 '게임'을 다루는 산업이라고 더 특별하고 재미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일은 어렵고 느리며 포기해야하는 것들도 많아 재미없는 시간들을 버텨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 다만, 그 인고의 시간을 거쳐 끝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소중한 무대를 제공하고, 시청자들의 탄성과 환호성이 무대 앞에서 터져나올 때 그만큼 짜릿한 순간이 없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들 때문에 우리가 e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었겠죠. 모두가 각자 그 이유를 잘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앞서 설명드린 조직부서에 대해서는 제가 전체 부서의 전문가는 아니므로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하는가에 노하우를 모두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지만, 큰 틀에서 어떠한 조직들이 협력하며 일을 만들어나가는지 그 구조와 흐름을 이해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나아가 각각의 부서들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커리어 측면에서 어떻게 이어나가는지도 유사한 사업군과 비교해보면서 그려보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앞서 좋은 기회로 만나뵈었던 지망생분들이 저에게 주셨던 질문들과 면접에서 느꼈던 포인트들을 한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