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마케터가 된 이유 | 유달리 브랜딩 노트 1

청호나이스 3명의 마케팅팀, 그리고 경계를 넘는다는 것

by udarly 유달리

[프롤로그]

"광고쟁이들은 내구성이 좋아."

2011년 1월, 청호나이스 전무님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 하신 말씀이었다. 그분은 광고대행사 출신들을 좋아하셨다. "광고대행사 일 힘든 거 많이 들었다고. 그래서 여기서 견딜 수 있다고."

나는 그때 28살이었다. 세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광고 대행사에서 3년을 보냈다. 200건이 넘는 ATL/BTL 캠페인 — 광고 PT까지 합치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 을 만들며 '잠'이라는 개념을 잊고 살았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매일 밤을 새우고, 금요일 새벽 7시에 출고를 시켰다. 포토샵도 못 하던, 누끼(이미지 외곽을 펜툴로 따는 일)도 못 따던 내가 포토샵 전문가가 되었다. 지금은 AI로 쉽게 가능한 합성들을 그땐 CG로, 수작업으로 다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내구성'이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는 것을.


[1. 직원 500명, 마케팅팀 3명]

청호나이스는 그 당시 연매출 3,000억 원 정도 되는 생활가전 회사였다. 직원은 약 500명. 하지만 마케팅팀은 단 3명뿐이었다.

디자인총괄인 나, 언론 담당 선배, 사보 담당자.

팀장은 퇴직 후 오랫동안 공석이었다. 잠깐 조직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왔다 갔고, 그 뒤로는 팀장을 아예 뽑지 않았다. 우리는 전무님 직보고 체계로 돌아갔다.

성수기 광고비만 60억 원이 넘던 시절이었다.

선배와 나, 둘이서 모든 걸 했다. 광고, 홍보, 프로모션, 홈쇼핑, PPL, 전국 규모 이벤트. 신라호텔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기획하고, SBS 드라마 '장미의 전쟁' 세트장에 제품을 배치하고 회사용 소품을 만들었다. 가상의 캐릭터 모델이나 셀럽 캠페인도 진행했다.

전사 디자인의 모든 것 — 이때도 연간 약 200여 종의 제작물을 만들었던 것 같다.

나는 전사 디자인을 담당했지만, 디자인만 하지 않았다. 브랜드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보다 — 진짜는 마케팅에 있는 것 같았다. 브랜드가 더 내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2.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

2011년은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이크로사이트를 만들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프로모션 사이트다. 모바일 사이트의 개념이 막 생겼을 때, 나는 개발자와 협업하며 사용자가 제품을 경험하는 인터랙티브 한 페이지를 설계했다.

페이스북도 운영했다. 인플루언서라는 단어가 없던 그 시절, 나는 청호의 인플루언서였다. 공식 계정뿐 아니라 담당자로서 회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지금처럼 사진 찍고, 콘텐츠를 만들며 페이스북을 장식했다.

그 스토리는 지금도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그대로 남아있다.

선배는 나를 이렇게 기억한다.

"디자이너라는 본인 주 업무 외에 홍보마케팅 전 분야에 걸쳐 함께 협업하고 성과를 냈던, 제 직장생활 최고의 동료였습니다. 유달리 씨와 함께 근무할 수 있는 직장동료는 굉장히 복 받은 분들이라 확신합니다."

이것은 얼마 전 평판조회 요청에 쓴 글이다. 그리고 선배는 10년 동안 후배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정수연 같은 사람은 없었어."


[3. 아이러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로 나는 그 정도 예산을 써본 적이 없다.

2012년 청호나이스를 떠난 뒤, 나는 외국계 IT 기업 SoftBank Commerce Korea(SoftBank Group)에 합류해 전사 반응형 홈페이지 리뉴얼, 클라우드 플랫폼 개발, Microsoft·Adobe 등 글로벌 벤더의 연간 마케팅 예산 관리를 했다.

2016년에는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를 설립해 7년간 운영했다. 2022년에는 KABINE에서 최소 예산으로 4개월 만에 매출 800% 성장을 이끌었고, 2025년에는 다비앙에서 7년 재고를 2개월 만에 완판 시켰다.

하지만 청호나이스에서처럼 '큰 예산'을 다뤄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 2년은 내 커리어의 뿌리가 되었다.

왜일까?


[4. 진짜 배운 것]

청호나이스에서 배운 것은 '예산 집행 능력'이 아니었다.

브랜드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언어와 맥락으로 만들어진다는 것.

영업팀은 "팔리는 것"을 원했다. 기획팀은 "차별화"를 요구했다. 제조팀은 "가능한 것"을 물었다. 법무팀은 "안전한 것"을 검토했다.

나는 이 서로 다른 감각과 언어를 조율해야 했다. 디자이너였지만, 다른 부서 회의에 많이 참석했다. 제조 현장에 가서 제품을 이해했다. 법무팀과 카피 문구를 조율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브랜드는 한 사람의 감각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언어로 만들어진다는 것.

디자인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유'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

마케팅은 '숫자'가 아니라 '의미'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


[5. 디자이너가 마케터가 된 이유]

전무님이 말씀하신 '내구성'의 진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 생각한다.

그것은 단순히 '버티는 힘'이 아니었다. 경계를 두지 않고, 배우려 하고, 브랜드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내는 '확장하는 힘'이었다.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마케터는 그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의미'가 되게 하는 사람이다.

나는 청호나이스에서 그 경계를 넘었다.

아름다움을 넘어 이유로, 결과물을 넘어 맥락으로, 디자인을 넘어 브랜딩으로.

그 2년이 토대가 되어, 나는 17년째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에필로그]

"그 뒤로 온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했어."

선배가 후배들에게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자랑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나에게묻는다.

당신은 경계를 두고 있는가?

당신의 역할은 누가 정하는가?

당신은 확장하고 있는가?

브랜딩은 결과가 아니라 해석의 과정이다 — 그리고 디자인은 그 해석의 시작이었다.


[다음 예고]

광고 대행사 시절 이야기를 나눕니다. 200건의 캠페인, 정우성·한채영·손태영과의 작업, 그리고 "평범함으로는 기억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대하여.


* 청호나이스 시절 만들었던 마이크로사이트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