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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Nov 18. 2015

IF I DIE

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23


IF I DIE

Barkly Homestead, Northern Territory

Australia  



여행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바로 죽음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 홀로 떨어져 있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라던가, 혹은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면 ─ 어떻게 하지. 처음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캐나다로 떠나기 전, 스물네 살의 나는 그런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어야 딸을 먼저 보낸 부모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몸에 국적과 이름 등의 간단한 신상명세를 문신으로 새기면 어떨까, 하는 쓸데없는 고민도 했다.


캐나다를 지나 뉴질랜드를 거쳐 호주까지.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4년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아직도 습관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혼자 밤늦게 낯선 도시에 도착해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데, 같이 내린 사람은 없고 함께 내린 가방이 크고 무거워서 무슨 일이 생겨도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았을 때.


걸어서 두시 간 거리에 있는 마을을 찾아 국도를 따라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트럭에서 맥주병이 날아들고, 도로변엔 로드킬 당한 동물들이 줄지어 있었을 때.


철없고 할 일 없는 십 대들이 영어로 쌍욕과 인종차별적 폭언을 던지며 길에서 우리를 계속 따라왔을 때.


이 밖에도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나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아, 실화 바탕 공포영화 <울프 크릭>을 봤을 때도. 로드트립 하시는 분들은 보지 마세요. 나머지 여행이 무서워질 수 있어요...)



그렇다고 꼭 나쁜 일이 있을 때만 죽음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와 마주쳤던 그 모든 순간들과 뉴질랜드에서 며칠이고 울창한 숲길을 따라 트래킹을 하며 길이 길로 계속해서 이어지던 순간들, 그리고 호주의 황량한 아웃백 한가운데서 붉게 퍼지는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매 순간마다 ─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여행이라는 게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영혼을 울리는 일이라면, 죽음은 가슴을 멈추게 하고 영혼을 어디론가 데려가는 일인데도 여행을 생각하면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왜 그런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죽음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극 탐험가, 아담 스코트의
「남극일기」 중에서


내가 만약 죽는다면 나도 그 길에 서고 싶다. 원했던 모든 것이 잡힐 듯 말듯하게 아른거리는 길에서. 천천히 허물어지듯이 쓰러져 죽는 것이다.


죽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계속 살아나가는 것이 때로 고문이듯이.


끝과 시작은 언제나 맞물려 있다고 믿는다 해도, 이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희망적이다.


끝과 시작.

그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

여행을 구겨 넣을 수 있다면,

그건 마치 한 생에 여러 삶을 사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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