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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앓느니 쓰지 Sep 20. 2018

우리 문장에 예의를 좀 갖추자

No.16 <내 문장이 그렇게 어색한가요?>_김정선



선수들은 소속 팀에서의 활약 여부에 따라 올스타에 뽑힐 수 있다 (p22)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딱 꼬집어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p37)

그 여배우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영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p57)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p96)

생존자의 이름이 불려질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p121)


위의 다섯 문장 중 틀린 문장은 몇개일까요?


"어? 다 괜찮은 것 같은데? 대체 어디가 틀렸다는거지?"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꽤 있을 겁니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장들'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뭔가 알 수 없는 서운함과 반항심을 느꼈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0개국어인가?" "저 사람 너무 트집잡는건 아닐까?"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하고 작가에게 당장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글을 좀 더 잘 써보고 싶은 마음에 든 책인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한숨만 나왔습니다. 대체 언제쯤 나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요? 하는 고민만 이어졌습니다. 쓸 데 없이 한탄만길었네요. 일단 위 문장의 정답을 발표해야 겠습니다. 위에서 틀린 문장의 개수는


0개 입니다.


위의 다섯 문장 중 틀린 문장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틀린 문장' 이라는 말 자체가 틀렸습니다. 한국말에서 '틀린 단어' 라는 말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틀린 문장' 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말장난이야? 싶지만 우리가 쓰는 문장은 어색하거나 문법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을 뿐 그 문장을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색하다'고 느끼는 것도 결국 개인차 일 뿐입니다. 비문에 특별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의미만 잘 전달하면 됐지" 하고 틀린 표현을 부러 지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좋은 문장'에 집착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까' 노력하는 걸까요? 아니 대체 좋은 문장이란 무엇일까요?


최소한 '모든 문법을 정확히 지키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지'라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시인은 죄인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20년을 넘게 단행본 교정 교열을 하며 남의 문장을 다듬어 왔던 교정전문가가 생각하는 '좋은 문장'에 대한 자기 주장입니다. 저자 또한 확신에 차서 이 것이 좋은 문장이다 말하지 않습니다. 문법의 규칙을 따를수록 문장은 정확해 지나 '자기만의 문장'과도 멀어집니다. 평생을 남의 문장을 들여다본 저자의 고민 또한 정확한 문장과 개성있는 문장 사이에 있었습니다. '글 읽고 고치는게 업'인 사람도 말이지요. 그렇다니 조금 안심입니다.


이 책은 '좋은 문장' 보다는 '글 쓰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20여년간 수 많은 사람들의 문장을 읽으며 그가 계속해서 마주하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의 게으름' 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예민하게 접근하면 분명히 더 좋은 문장이 있는데 익숙함에 젖어 어색함에도 그냥 지나쳐버린 표현에 관하여, 개성을 이유로 독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는 문장을 찾아 지적하는게 그의 일입니다. 그는 '조금 예민해도 괜찮아' 라는 구호를 평생의 업이었던 사람이었고, 설사 '당신 뭐 그렇게 빡빡해' 라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저자의 글이 독자에게 더 의미있게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예민함이 있기에 우리 문장이 그나마 좀 양심을 갖추는게 아닐까요?


이 책이 단순히 맞춤법 교본이나 좋은 문장 메뉴얼 이상의 책으로 읽히는 이유는 독특한 구성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전개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쉽게 쓰는 어색한 표현 교정'과 '저자와 교정자 사이에 나눈 이메일'이 번갈아가며 쓰였습니다. 저자와의 스토리는 마치 짧은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몰입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메일 안에 나눈 대화를 통해 작가가 생각하는 좋은 글, 좋은 문장을 엿보며 글 쓰는 사람의 매무새가 좀 더 단정해 집니다. 이 책은 교정 교열 전문가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바른자세와 인사이트를 얻는 귀한 책입니다. 서두에 적었던 어색한 문장의 교정과 해설로 이 글을 마칩니다.


선수들은 소속 팀에서의 활약 여부에 따라 올스타에 뽑힐 수 있다 (p22)

  > 선수들은 소속 팀에서 활약 여부에 따라 올스타에 뽑힐 수 있다 

     ('의'를 빼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중독적으로 '의'를 사용한 경우)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딱 꼬집어 말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p37)

  > 노래를 잘 부르는 게 무엇인지 딱 꼬집어 말하기는 무척 어렵다

     ('것'이 중독적으로 사용된 표현. '것'을 빼고 써도 아무 무리가 없다)


그 여배우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영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p57)

  > 그 여배우와 가까운 영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액세서리 같이 '관계에 있는' 이라는 표현을 넣어 지나친 장식처럼 보이는 경우)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p96)

  >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 때문에 우리는 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에'와 '- 을(를)'을 가려서 써야 함. '에'는 처소나 방향 등을 나타내고, '을(를)'은 목적이나 방향을 나타냄)


생존자의 이름이 불려질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p121)

  > 생존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성과 한숨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부르다'의 당하는 말은 '-리-'를 붙인 '불리다'이다. '불려지다'는 '불리다'에 다시 '-어지다'를 붙여 두 번 당하게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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