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를 학교 보내고, 뉴베리 스트릿의 뉴베리 코믹스(Newbury Comics) 음반가게 옆, 스타벅스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 씨디가 사라진 세상에 25년전 학교 다닐적에도 있었던 씨디가게가 아직도 있다니!
학교가 이전보다 더 중심가가 된 느낌이었지만 몇몇 새로 지어진 빌딩외엔 대부분 그대로였다. 그때 내가 살던 아파트, 학교앞 놀이터 벽화까지 그대로 있었다.
뭔가 ‘아니, 아직도 그대로야! 짜증내는 척하면서도 미소를 멈출 수가 없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랄까? 나는 변해도, 변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그 무엇이 아직도 지구상 한 곳에서 나를 지키고 있다는 느낌말이다. 내가 일했던 학교 도서관도 그대로였다. 그때도 난 책과 가까이했었구나!
나의 20대 청춘을 묻고 왔던 버클리(Berklee College of Music).
그 옛날, 보스턴 버클리는 짝퉁취급을 받았다. 사람들이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는 캘리포니아에 있지 않냐며 반문하면 보스턴에 실용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스펠링 다른 버클리(Berklee College of music)하나가 더 있다며 매번 설명해줘야 했다. 지금은 그걸 묻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학교의 위상은 이전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
하교길에 D를 픽업하려고 학교앞에서 기다리는데 정말 놀랍게도 이전에 버클리에서 같이 공부했던 언니 하날 만났다. 한국에서도 귀국 후 단 한번 만난적이 없던 언니다. 조카가 올해 버클리 신입생으로 들어오는 데, 겸사겸사 같이 왔다고 한다. 그간 서로의 삶을 업데이트하는데 순간 뭔지 모를 데자뷰를 느꼈다.
솔직히 한두번이 아니다. 요며칠 학교 오며가며 어디서 본적 있는 광경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 학교 근처 오가는 사람들하나하나 모두 낯설지가 않았다. 흡사 대역 몇명이서 내가 가는 길목에 스탠바이하고 기다리다가 로테이션하면서 자기 배역을 연기하는 느낌이다. 짐 캐리의 영화 트루먼쇼(The Truman Show)처럼 말이다.
정말 우리는 애초 주어진 의도대로, 이미 설계된 대로(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던 혹은 그 신이 누구의, 어떤 종교의 신이든지 간에), 기계처럼 무한 반복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력해서 얻은듯 하지만, 반드시 그 한계는 정해져 있다. 그저 본인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한다. 예정설은 우울하니까, 그렇게 믿고 싶지 않을 뿐이다. 순응하지 않고 역행하면 운명은 당사자가 깨달을 때까지 질질 끌고 다니며 고난을 준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이 사람들을 만날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여기에서 만났고 앞으로도 만나야 할 인연들은 적재적소에 나타나서 그 시기, 나와 인연이 되어 해야 하는 역할임무 수행을 마친 후, 사라질 것이다.
학교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하지 않은 건, 아니 못하는 건, 결국 이미 계획대로 그래야 했기 때문만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