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후배도 자신의 경우, 계획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학갈 형편이 되지 않았고 2년정도 버클리 음대가 어떤 곳인지 경험이나 하자며, 떠난 유학길이었다. 보컬 전공인 그녀가 지금은 재즈계에서 각광받는 차세대 빅밴드 리더이자 편곡자로서 활약하기까지 미리 그러하리라, 예측한데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길대로 따라 갔다. 악착같이 미국에 남으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6살때 미국 이민온 남편을 만나, 지금은 영주권도 얻었다.
이미 정해진 길이 있다는 말, 팔자라는 말, 한계가 있다는 말, 인연이라는 말, 운명이라는 말, 다 다른것 같지만 모두 비슷한 의미 일것이다.
“D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하면 일단 시켜주세요! 제 길이라면 갈것이고 아니라면 중간에 다른 길을 갈꺼예요. 음악이 제 길이라도 방향은 다 다를 수 있어요. 그건 아무도 몰라요. 부모로서 해달라면 일단 나중에 원망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해주세요. 사실 언니가 가해자시쟎아요(웃음)“
그랬다. 내가 음악을 전공했고 아는 길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그런 환경을 접할 수 있도록 이것 저것 내 선에서 경험하게 해주었지만 정말로 음악하고 싶다고 할 지는 몰랐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 알기에, 선뜻 허락할 수 없다. 이번에 버클리 여름 음악 캠프를 신청하고 온 것도 그런 의미에서 직접 D가 보고, 느낀 후, 어떠한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는 의미에서의 최후 통첩과도 같은 거였다.
그런데 하겠단다.
과연 D는 진지한걸까? 아니면 사춘기의 허무맹랑한 일시적 꿈을 꾸고 있는걸까? 막연히 공부보다는 쉬울 것 같다는 철없는 발상일까? 아님 정말 정말로 제 길인데, 내가 막고 있는 걸까?
비행기안에서 스티브연의 <성난 사람들>을 보면서 인상적인 대화 내용을 발견했다. 유명한 아티스트 아버지의 뒷 배경으로 미국에서 부유하게 살고 있는, 자신도 미술가인 무능력한 아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어린 딸을 보며, 자신의 어머니에게 딸의 그림 실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며 물을 때, 그의 어머니는 단언한다. “ 네 아버지가 늘 그랬쟎아. 재능이 아닌 취향의 문제라고“
이미 재능만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기엔 부족한 시대가 왔다. 그림을 있는 그대로 잘 그린다고, 노래 고음을 잘 지르고,가창실력만 우수하다고 사람들을 반하게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D가 과연 뛰어난 천부적인 음악재능을 가졌는가의 의문을 던질 때, 문득 내 어릴 적, 음악하려는 나에게 ‘너는 그렇게 월등히 잘 하는 축에 들진 않아’ ’음악 전공 안해도 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 ‘음악만 하면 만나는 세계가 편협하지만 다른 전공을 하면서 음악을 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어’ ‘음악하다가 실패하면 뭘 할꺼야? 음악 전공 안하고 다른 거 하면 선택지가 훨씬 많아’며 나의 음악을 막았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돌.아.돌.아. 다시 음악을 하였다. 그때 바로 음악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음악밖에 할 줄 모르고, 음악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더 성공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좋으면 그냥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최근 내 깨달음에 의하면 뭘해도 결과는 정해져있다.
그럼 GO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