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언어를 가지고 싶다.
브루디외의 ‘아비투스’, 그람시의 ‘헤게모니’, 들뢰즈의 ‘리좀’ 처럼 내 세계를 한 마디로 대변하는 단어를 갖고 싶다.
정체성을 위해서는 우리만의 용어가 필요하다. 굳이 신조어일 필요는 없다. 일반용어라도 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내 생각을 이해시킬 수만 있으면 족하다.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곧 나의 세계의 한계’라고 하였다. 종종 뭔가 떠오르는 데,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게 있다. 주저리 주저리 남발하지 않고 깔끔한 한 단어로 요약해 ‘이런거야!’ 라며, 세상에 던져 주고 싶은데 쉽지 않다. 남들이 다 쓰는 통속적인 언어 말고, 모든걸 집약한 개념의 내 언어는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일단 생각이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글로써 풀어 증명해야 할 것이다. 말은 공중에 사라져도 문자는 남는다. 일찍이 데리다는 그의 저서 <그라마톨로지>에서 음성 언어의 위상에 비해, 문자 언어를 부차적인 역할로 종속시켜온 서구 형이상학 전통을 문제 삼고 반박하였다.
음성기술의 도약으로 향후 1세기안에 대부분의 인간은 글쓰기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직립보행하는 한, 생각하는 뇌가 살아 있는 한, 어떠한 형태로든 글쓰기는 계속 될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학교 오가는 지하철에서 나를 증명하는 나만의 언어를 찾기 위해, 끄적거리는 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나는 ‘음악’이라는 언어 하날 더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저 축복받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