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6박을 하고 오늘 푸에르토 몬트로 날아간다.
푸에르토 몬트는 칠레 파타고니아의 입구 격인 도시다. 파타고니아가 남위 40도 이남 지역을 통칭하는바, 푸에르토 몬트는 남위 41도다. 안데스 산맥 동쪽의 아르헨티나 바릴로체와 가깝다. 바릴로체 역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입구라 불린다. 그래서 남미 패키지 투어의 대부분이 푸에르토 몬트에서 바릴로체로 버스로 국경을 통과하여 이동한다.
파타고니아의 남쪽 끝인 푼타 아레나스(9박)와 푸에르토 나탈레스(6박)에서 북쪽 입구 격인 푸에르토 몬트행 저렴한 비행기표를 발견했다. 루트가 계획된 여행이 아닌 방랑이기에 괜찮은 이동수단이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푸에르토 몬트의 서남쪽에 칠로에(Isla Chiloe)란 제법 큰 섬이 있다. 남미 패키지투어에는 결코 포함되지 않는 섬인데, 브루스 채트윈의 'In Patagonia'에 칠로에란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브루스 채트윈이 파타고니아에서 만난 가우초(파타고니아 카우보이)나 목장 노동자 중에 칠로에섬 출신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래서 그 지명이 내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다가 푸에르토 몬트 가는 가성비 좋은 비행기표를 본 순간 클릭하고 말았다. 칠로에섬을 가보고 싶다고...
숙소에서 바람소리 아니 태풍소리에 잠이 깼다. 이렇게 새벽부터 강풍이 불기는 처음이다. 창문에 드리워진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담장 너머 나무들이 세차게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이런 강풍 속에서 '내가 탈 비행기는 안전하게 내리고 뜰까?' 하는 걱정이 든다. 설마 오늘 비행기가 안 뜨지는 않겠지...
푸에르토 나탈레스 공항은 북쪽 토레스 델 파이네 가는 길을 따라 9km 정도 떨어져 있다. 우버를 기다리며 매일 보며 거닐었던 항구를 바라보았다. 어제저녁에 있던 큰 페리선은 밤에 출발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푸에르토 몬트 가는 페리선(Navimag)이 있다고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출항하고 3박 4일(?)인가를 파타고니아 섬 사이를 돌고 돌아간다고 들었다. 호화유람선이 아닌 페리선에서 여러 밤을 자며 이동하는 것은 어떨까 궁금하다. '함 해볼까?' 파타고니아 서쪽의 피요르드 해안을 지겹게 보며 가는 것이다.
파타고니아 벌판에 있는 공항은 멀리서도 관제탑이 보인다. 탑승교도 없는 아주 작은 공항이다. 푼타 아레나스 공항은 탑승교도 여럿 있었는데. 당연히 오른쪽 창가에 앉았다. 안데스 산군을 다시 보려고. 운이 좋으면 지난번처럼 피츠로이를 하늘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표지가 밝고 아주 선명한 빨강인 여권을 손에 든 젊은 처자가 옆자리에 앉는다. 얼굴 생김은 남방 중국인(?) 같은데, 그리고 중국 여권이 붉은색(포도주색)이긴 하지만 저렇게 밝은 색은 아니었는데.... 물어보고 싶지만 어르신이 젊은 처자에게 말을 걸면 주책이라고 할까 봐 가만히 침묵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고도를 높이는 중에 토레스 델 파이네가 보인다. 트레킹과 투어를 통하여 땅 위에서 실컷 보았기에 하늘에서도 이제는 봉우리들이 구별이 된다. Horn 같이 생기 봉우리며, 타워 같이 생긴 봉우리들이 구별되며 마음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면 예전 같지 않다고.' 옆의 처자가 사진 찍고 싶어 할 것 같아 창문을 막고 있다 좀 양보했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더니 고맙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때가 기회다. 어디서 왔냐고? 싱가포르란다. 여권 표지색이 죽인다고 엄지 척했다.
모여 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 봉우리들은 잘 보였는데, 기대했던 피츠로이 연봉들은 두꺼운 흰구름이 완전히 덮고 있다. 푸에르토 몬트에 착륙을 위해 바다 쪽으로 선회할 때가 되어서야 구름층을 벗어났다. 칠로에 섬이 보인다. 푸에르토 몬트에서 2박을 하고 칠로에 섬의 중심도시 Castro를 갈 것이다. 해협을 페리선으로 버스를 실어서 옮겨주는 버스표를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푸에르토 몬트가 주도라 그렇겠지만 공항이 제법 크고 사람들로 붐빈다. 많은 여행객들이 산티아고에서 푸에르토 몬트로 비행기를 타고 온다. 장거리 버스로는 13시간 이상 소요되는 거리다. 공항에서 버스터미널 가는 버스표를 3,000페소에 팔고 있다. 칠레 공항은 어디나 시내까지의 'Official Airport Taxi'나 'Airport Bus'의 승차권을 청사 내의 창구에서 팔고 있다. 바가지요금의 택시를 보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터미널을 둘러봤다. 모레 이곳에서 칠로에섬으로 갈 것이라. 입구는 어디고 플랫폼은 어디인지 확인했다. 낯선 곳에서 어리버리하고 있으면 사기꾼이나 절도범의 표적이 되기 쉬우니...
버스터미널에 가면 여러 회사의 티켓판매 창구가 각각 있다. 창구에서 직접 사면 현금이나 신용카드 모두 결제가능하지만 온라인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이 편한 것은 버스의 전체시간표와 좌석현황을 보며 좌석을 지정할 수 있다. 이층 버스의 이층 제일 앞자리를 구매했다. 그런데 문제는 온라인 구매 시 계좌이체나 칠레에서 발행된 카드(신용 또는 체크)만 결제가 가능하다. 한국에서 발행된 카드는 안된다. 그렇지만 2003년 미국에서 이베이 쇼핑할 때 참 열심히 사용했던 'PayPal'이 가능하다.
10년 전 배낭여행 때 푸에르토 몬트에서 2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도착해서 하루를 온전히 오소르노 화산과 칼부코 화산 일대를 종일 투어하고 다음 날 아르헨티나의 바릴로체로 넘어갔다. 바닷가에서 조금은 흉측한 조형물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 조형물을 다시 보러 바닷가로 나갔다. 무엇인가 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 사진을 찾아보았다. 허름했던 해변공원이 정리되고, 조형물은 기단을 완전히 새로 만들고 칠레 연인에게도 완전히 색을 다시 입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푸에르토 몬트가 달라졌다. 큰 쇼핑몰과 'Novotel'이 들어섰고, 30층은 되어 보이는 건물이 공사가 중단되어 골조만이 흉물로 남아 있다.
팬데믹 때문에 공사가 중단된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