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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erto Aysen

by 재거니

푸에르토 리오 트란퀼로에서 힘든 3박을 하고 코이아이케로 돌아왔다. 다행히 감기 걸리지는 않았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은 확실히 여유가 있다. 아니까 다 아니까. 지난번 코이아이케 숙소가 괜찮았지만 오늘 방이 없다.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호텔을 예약했다. 하루에 100불이 조금 넘는다. 더블침대가 두 개나 있는 아주 넓은 방이다. 그리고 따뜻한 작은 수영장과 사우나가 있다. 수영엔 별 관심 없지만 사우나는 관심이 너무 많다. 전기로 작동하는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아주 작은 사우나다. 체크인하자마자 사우나부터 찾았다. 3박 하는 동안 세 번은 해야지!


코이아이케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Suray란 버스 회사의 매표창구 앞에 섰다. 번역기를 돌려 "내일 토요일 10시 출발 Puerto Aysen 갔다가, 오후 3:40 출발해서 코이아이케 돌아오는 표 주세요. 이왕이면 창가 자리로."


Puerto Aysen은 Aysen주의 두 번째로 큰 도시다. 그래봤자 인구가 2만 정도라지만. 거리는 서쪽으로 68km 떨어져 있고, 전부 포장도로라 한 시간 남짓 걸린다. Puerto Aysen 유튜브 동영상을 보았다. 어느 칠레 유튜버가 코이아이케에서 Puerto Aysen 가는 길이 매우 아름답다고. 칠레의 많은 길을 가봤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길 쉽지 않다고. 그래서 얼마나 아름다운지 확인할 생각으로 토요일 하루를 투자했다.




토요일 아침 잠이 깨는데 왼손이 너무 아프다. 무슨 일이지? 만져보니 손이 아니고 손가락들이 아픈 것이다. 왜 아프지? 어제 호텔에 들어와서 빨래를 했다. 욕조도 있고 화장실이 넓어서. 양말 세 켤레, 셔츠 세 벌을 욕조에 물 받고 발로 밟아 빨았는데, 마지막 헹구며 쥐어짜느라 손가락에 무리한 힘을 쓴 거다. 그 정도에 이렇게 아프다니...


Suray 버스는 코이아이케와 Puerto Aysen만을 왕복한다. 'King Long'이란 중국버스다. 결국은 전 세계 버스 시장을 중국이 장악할 거란 생각이 든다. 안전벨트가 3 점식이다. 3 점식 안전벨트가 2 점식에 비해 효과가 좋다는 것은 입증되었지만, 비행기나 버스에는 장착 못할 줄 알았는데, 버스들은 점점 설치하는 추세다. 버스에 승객이 반도 차지 않았다. 코이아이케를 벗어나면서 고개를 넘는다. 높은 곳에서 돌아보는 코이아이케 전경이 아주 근사하다. 높은 바위산 자락 밑에 아기자기한 도시가 길쭉하게 펼쳐져 있다. 해 넘어가는 시간에 집집마다 불 들어오면 근사한 야경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이 경치를 보며 오늘 나들이가 근사할 것 같다는 생각에 흥분된다.


들판에는 보라색과 노란색 꽃들로 덮여 있다. 지금 여기는 늦은 봄이다. 칠레 파타고니아의 봄 색깔이 보라와 노랑이다. 들판을 달리더니 점점 내려간다. 이제는 큰 계곡인지 강인지를 따라서 달린다. 계곡 양쪽으로는 제법 높은 산들이 줄지어 서있다. 가끔 높은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보인다. 맑은 물 계곡, 높은 산과 간간이 폭포, 폭이 좁기는 하지만 시멘트 포장된 도로에 차가 많지 않다. 추월선이 있는 곳에선 덩치 큰 버스가 트럭을 추월한다. 운전기사는 걷는 것조차 부자연스러운 80대(?)다. 매일 몇 번씩 이 길을 왕복하겠지...


그렇게 한 시간 20분을 달려 Puerto Aysen에 도착했다. 바다로 흐르는 Aysen 강 하구에 자리 잡고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강 하구의 양쪽을 평범(?)한 현수교가 이어주고 있다. 도시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고 크기는 작아 끝까지 걸을만하다. 도시를 아니 마을을 큰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산들에 눈꽃이 잔뜩 피어 있는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환상적인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보려면 초겨울 첫눈 오는 계절에나 그것도 운이 아주 좋아야 볼 수 있겠지 싶다.


칠레는 완전한 주 5일 근무가 아닌 것 같다. 버스시간표가 주중, 토요일, 일요일과 휴일로 3분 되어 있다. Sabado인 토요일이 반 휴일이랄까? 식당들의 영업시간도 일요일은 아예 안 하고 토요일은 영업시간을 줄여서 문을 여는 곳이 많다. 어제 구글맵에서 확인했던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았다. 딱히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없는데 허기만 채우면 된다. 파타고니아 방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맥주와 와인이다. 맥주는 주로 'Austral' 브랜드의 칼라파테 에일을 마시고, 와인은 'Copa veno tinto'를 외치면 "카베르네 쇼비뇽, 카를로메네르, 메를로?" 중에서 선택하면 된다. 점심에는 맥주, 저녁에는 와인을 마신다. 그렇지만 오늘은 다시 버스 타고 가야 하니 점심에 와인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Aysen river 하구 끝까지 걸어갔다. 태평양으로 나가는 구불구불한 통로가 보인다. 전망 좋은 곳에 근사한 호텔과 집들이 서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저기 쓰나미 주의 표지판이 있다. 궁금하면 AI에게 물어보면 된다. 2007년에 지진에 이어 쓰나미가 발생해 최대 6미터의 파도가 쳤단다. 그리고 10명이 사망했단다. 이 근처의 집들은 언제 쓰나미에 쓸려나갈지 모르겠다. 거실 창으로 보는 경치는 정말 근사한데...


코이아이케로 돌아가는 킹롱 버스가 유난히 출렁거린다. 물침대 위에 앉아 가는 것 같다. 도로 폭도 좁은데 추월하려 차선을 변경할 때마다 좌우로 출렁거린다. 와인도 한잔 마셨겠다. 물침대 버스의 출렁거림에 졸다 깨보니 다시 코이아이케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다. 근사한 전경이다. 이렇게 토요일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