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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Mar 14. 2021

공주에서 알밤 막걸리는 필수

공주여행 24시간

'공주'라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 본 적도 없거니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세종시에 사는 친구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공주로 자주 드라이브를 다닌다기에 '웬, 공주?'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역사책에서나 배웠음직한, 과거 백제의 수도였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낯선 도시 공주. 최근 들어 한옥 숙소나 한옥에서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공주 한옥마을'이라는 곳이 있다기에 살짝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지도에서 찾아보니 서울에서 가기에 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당황스러울 정도. 거창한 휴가는 아니더라도 그저 잠시 짬을 내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기에 적당한 거리다. 24시간, 1박 2일 일정으로 떠나는 공주여행을 계획했다. 


서울에서 공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KTX(요금 2만 5400원)를 타면 서울역에서 1시간 만에 공주역에 간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도 1시간 30분이면 공주에 닿을 수 있다. 공주 한옥마을, 공산성 등이 터미널과 가까웠고 가격도 버스가 더 합리적이다. 고민의 여지없이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일반버스는 8600원인데 1만 3500원짜리 프리미엄 버스를 타는 호사를 부리기로 했다. 숙소는 무조건 한옥으로 가기로 했다. 한옥마을에도 숙소가 있다고 했는데 검색 중 발견한 구도심에 위치한 한옥 게스트하우스로 숙소를 정했다. 숙박료는 2인 기준 평일 8만 원, 주말 10만 원 선이다.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만에 공주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숙소까지는 시내버스를 탈 수도 있고 택시로 이동하면 요금 5000원 정도 예상된다. 체크인 시간에 맞춰 숙소에 도착했다. 1960년에 건축된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곳이었다. 외부 창호와 벽체 등은 당시의 것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옥이 유행이다 보니 급하게 쌓아 올린 한옥이 아닌 오래된 것을 개조한 곳이라는 점이 믿음직스럽달까. 한옥의 낭만을 적당히 누리기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곳이다.  

1960년에 건축됐다고 한다. 한옥과 양옥의 형태가 공존했던 마지막 시기다. 1970년대 이후로는 한옥은 낙후된 것으로 취급됐고 양옥과 아파트만 지어지기 시작했다고.
크지 않지만 방마다 개별욕실이 딸려 있다. 따뜻한 방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뜨끈한 온돌방을 한없이 즐길 수 있다.

아직 봄이라기엔 여전히 코끝이 시린 날씨다. 뜨끈한 방바닥에 눌어붙어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기분이다. 등과 배를 번갈아 지지는 중 발견한 천장이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인다. 이런 걸 서까래라고 하는 거겠지. 이런 게 한옥의 맛이자 멋이겠지.  

몸과 방이 한 몸이 되려는 차에 적당히 배가 고파와서 근처 식당으로 갈 채비를 했다. 숙소에 비치된 안내문을 참고했다. 안내문의 서술 방식이 끈금없지만(?) 내 스타일이다. 경험과 사실에 입각한 단호하고 꾸밈없는 말투. 이 안내문만 있어도 공주여행은 문제가 없겠다.  

저녁으로 고른 식당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맛집이라는 점이 제일 맘에 들었다. 잠깐 사이 몹시 허기가 져서 최소한의 이동으로 닿을 수 있는 곳이면 했다. 가격도 저렴하단다. 생선구이(8000원)에 숯불돼지석쇠구이(1만5000원)를 추가하면 여기가 천국!이라는 설명에 망설이 필요가 없어졌다. 이곳으로 출동이다. 정말이지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위치해 있다. 일러준 데로 생선구이와 숯불돼지석쇠구이를 시키고, 알밤막걸리를 추가했다. 적당한 단맛을 품은 막걸리까지 한 잔 걸치고 보니 정말이지 이곳이 천국일세.  

저녁 식사 후 공주 구도심 산책을 나섰다. 곳곳에 숙소에서 일러준 대로 동네책방, 사진관, 소품숍 등이 눈에 띈다. 평일 저녁이어서 그런지 문이 닫힌 곳이 많아 아쉽다. 상점 주인으로 보이는 분들의 흑백사진이 길 따라 이어져 있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빌딩 숲을 떠나온 이곳에서 정적이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날씨가 좀 더 풀린 후 이곳을 찾게 된다면 자전거를 타고 금강 일대를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공주 금강과 구도심 야간 산책 후 공산성은 다음날 가기로 마음먹었는데 공산성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공주여행의 백미라는 사실을 다음날 알게 됐다. 이 사실은 안내문에 없었는데...! 


'까지껏 1시간 30분이면 오는데 또 오지 뭐.'  


또 한 번의 공주여행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으로는 흰 국물의 맑은 백순두부(8000원)와 두부집이라는 정체성과는 별개로 돈가스가 일품이라기에 돈가스(8500원)도 함께 골랐다. 계란찜 비주얼을 한 백순부두와 옛날식 돈가스와 일본식 돈가스의 중간쯤의 모습을 한 돈가스가 나왔다. 계란찜의 모습을 한 순두부는 부드러웠고 옛날의 나라면 여행지까지 와서 아점부터 웬 돈가스냐 했겠지만 느끼하지 않고 담백해 남김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이제 공산성을 보러 갈 차례다. 공산성을 오르기 전 커피 수급을 위해 들른 카페가 기대 이상이다. 너른 통창 앞으로 아직 녹지 않은 눈 쌓인 공산성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꽤 근사하다. 인테리어와 음악, 커피와 디저트까지 모든 게 완벽한 곳이다. 가격 역시 합리적인데 아메리카노와 브루윙 커피가 차별 없이 4000원, 직접 만들었다는 디저트 바나나 컵케이크(2000원), 마들렌(1000원)도 만족스럽다. 집 근처에 있었다면 매일처럼 들를 것 같다.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수식어가 붙은 백제의 성곽이라는 공산성은 30분~1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만한 정도의 규모다. 평소에는 성인 기준 1200원의 입장료가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무료입장 중이다. 공주시내와 금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오를 가치가 있는 곳이다. 


이만하면 공주여행 24시간을 꽉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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