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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실존 부재

2025. 11. 12.

by 한상훈

실존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아는 사람은 오롯이 실존의 질문까지 도달한 사람들만이 겪은 고통에 해당한다.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에 누군가는 신이 죽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신은 삶의 목적, 사명, 이유, 옳고 그름의 기준, 선택의 근거 등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신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삶의 목적도, 사명도, 이유도, 정의의 기준도, 모든 선택의 근거가 무너진 공허하고 메마른 인간만 남게 된다. 실존의 위기는 참으로 가혹하고 그 무엇보다 영혼의 생기를 뽑아내는 것과 같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신이 살아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신은 설령 죽었을지라도 신의 흔적을 좇아 조금이나마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조그만 희망이라도 잡고자 하는 마음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안에 신의 흔적은 신을 알아갈수록 사라졌다. 이 세상에 대한 애정도 잿더미처럼 가루로 흩어져있다. 돈, 명예, 사랑 그 어떤 것도 공허하고 하찮다.


나는 종종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며 온몸을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기괴한 괴물들을 보곤 한다. 태국 왕 같은 존재들이다. 얼마나 많은 부와 권력을 가졌는지 대대손손 그러고 살고 있지만, 나는 그들로 살아가느니 지금 삶을 끝내 달라 부탁할 것이다. 그 거대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고작 한다는 것이 사람들이 자신 앞에 올 때 기어서 무릎 꿇게 만들고, 온몸을 금칠로 해서 자신의 썩어가는 육체를 가리는 행동이라면, 그 영혼에 얼마나 끔찍한 오물이 담겨있을지 상상이 되겠는가.


내 영혼은 비어있다. 텅 비어있어서 무엇도 대단해 보이지 않고, 무엇도 찬란하다 느끼지 못한다. 욕망은 눈이 녹아버린 것처럼 사그라졌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이 나에겐 의미를 잃었다. 모두 회색빛이 된 것만 같다. 나에게 남은 본성의 찌꺼기만이 배고픔과 피곤함 등을 채우려 애쓸 뿐. 나는 공허하고 텅 빈 인간이 되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매일매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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