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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고향

2025. 12. 4.

by 한상훈

어제는 부모님 댁, 고향에 잠깐 다녀왔다. 왕복으로 4시간 이상 소요되지만 가야 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간단한 문제도 버거워하는 부모님이 계셨다. 연세에 비해 많은 걸 잘 다루시지만, 젊은 사람들에겐 간단해 보이는 것도 이제는 어렵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신 부모님. 언제부터였을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10년 동안은 그토록 나를 힘들게 했었지만,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시고, 암 수술을 받고 나신 후로는 모든 게 달라진 것 같았다.


오히려 바뀐 건 나였다. 부모님이 이전처럼 싸우지 않으니 나는 세상이 내 무대가 된 것처럼 즐겁게 살아갔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세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상한 얼굴을 가진 키 작은 청년. 남들 모두가 군대를 갈 때 군대에 가지 않고 시간을 보내던 날들.


서울로 다시 돌아와 구글 드라이브를 정리하면서 내가 얼마나 이상하게 생겼었는지 새삼 다시 볼 수 있었다. 고작 몇 년 전 내가 양악 수술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 멋진 각도를 찾아가며 찍었던 영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영상들을 쭉 보면서 이런 이상한 얼굴로도 어떻게 그렇게 살아왔었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 어쩌면 점점 더 심해진 얼굴 비대칭으로 인해 삶이 어려워졌던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니는 친구랑 같이 걷기도 싫은 법인데, 이상한 얼굴을 하고, 이상한 생각을 가진 친구랑 같이 다니는 것은 더 부끄러운 일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나를 키워준 부모님을 보면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관계는 가족 말고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가까이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 몇몇을 떠나보내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힘은 나만 쥐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나만 줄을 잡고 있었고, 그들은 오래전에 줄을 놓아버린 느낌. 형제라고 생각하며 힘들 때도 나눴던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은 나를 형제로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이 바란 건 그저 도파민을 위한 시간 낭비용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 다들 그런 식일 것이다. 진정성 있는 관계보다는 그저 서로에게 놀잇거리가 되는 효율적 관계. 인생을 나누는 벗이 아닌 도파민을 위한 도구.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인생의 벗은 필요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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