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첫 편지를 쓰고 난 뒤, 저에게 새로운 생각의 습관이 생겼습니다.
‘다음 주엔 어떤 얘기를 전해드릴까?’라는 생각이 조용히 마음속에 싹을 틔운 거예요.
마치 연애를 시작한 사람처럼,
재미난 걸 보면 "이 얘기를 전해볼까?”,
맛있는 걸 먹으면 "이 음식을 추천해도 좋겠네.”
하는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무엇에도 쉽게 놀라지 않게 된 나이,
조금은 무료한 나날들이 이어지는 듯했는데,
이렇게 마음에 새싹이라도 돋아날 것 같은 틈이 생긴 건 이 편지를 읽어주시는 여러분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5년 6월의 한가운데,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창밖에는 옅고 부드러운 파란빛 속에 하얗고 적당한 양의 구름이 높이 떠 있습니다.
참 평화로워 보이는 하늘이에요.
저는 오늘 아침, 업무로 Zoom을 통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했습니다.
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학생들 앞에서 말하는 것과 어른들 앞에서 말하는 건 심장 박동수부터 다르더라고요.
하고자 했던 말을 미리 준비했음에도, 터질 듯한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 채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떨지 않으려고 일부러 아침밥도 챙겨 먹었는데,
크게 효과는 없었나 봐요.
하지만 식탁에 앉아 하늘을 보며 이렇게 생각해 봤습니다.
“아침밥을 먹었기에 이 정도였지,
안 그랬다면 심장이 터져 119에 실려 갔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안정이 되더군요.
제 사고방식이 참 단순하기도 하지요.
지난주 출근길에는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가와카미 히로미의 소설을 『고독한 미식가』로 유명한 다니구치 지로가 만화로 그린 『선생님의 가방』이었습니다.
얼마 전,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딸이
‘선생님’과 관련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거든요.
어떤 책이 좋을까 훑어보다가 이 책이 술술 읽혀서 끝까지 보게 되었지요.
제목과는 달리 연애소설이더라고요.
딸에게 권할 책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강렬한 감정의 물결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선생님과 연애를 하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인데,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마음을 깊이 담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런 감정을 떠올린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딱 한 번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책 대여점에서 조안 리의 에세이,
『스물세 살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을 빌려 읽었습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의 토요일 낮으로 기억합니다. 가족들은 집에 없었고, 아직 교복을 입은 채로 안방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글쓴이가 남편과 사별하는 장면을 마주하고 빈집에서 혼자 소리내어 펑펑 울었습니다.
(* 글쓴이의 남편은 신부님이셨는데, 그녀와의 결혼을 위해 사제직을 내려놓았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제가 사랑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그렇게 울었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지금,
그때보다 30년쯤 더 살아온 저는 사랑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지금의 저는, 그 시절보다는
사랑에 대해 더 생각할 기회도 많았고,
흔히들 사랑이라고 칭하는 경험도 더 많이 했으며,
사랑을 향하는 세상의 이야기들도 더 많이 읽고 들었습니다.
출근길에 읽은 또 한 권의 책은
체코의 국민 작가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입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자신의 삶에 관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합니다.
앞서 언급한 『선생님의 가방』에서 ‘가방’은
마쓰모토 하루쓰나 선생님이 여주인공 쓰키꼬에게 남긴 유품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쓰키꼬와의 사랑을 시작하지요.
『평범한 인생』에서 죽음을 앞두고 주인공이 쓴 ‘자서전’은, 어쩌면 『선생님의 가방』의 선생님의 '사랑’과 닮아 있습니다.
다음 주 주말,『평범한 인생』을 주제로 동네 독서 모임이 있는데
아직 다 읽고 정리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한 마디는,
다음 주엔 『평범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정리해서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해볼게요.
좀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해놓고, 어쩌면 서툴고 막막한 하루하루의 흔적만 전해드리는 건 아닐까 싶어 조금 미안한 마음도 함께 드립니다.
토요일 오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한 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