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실리테이터의 태도
신뢰와 참여를 만드는 사람 - 철학과 상황을 잇는 존재론적 실천
퍼실리테이션의 실체는 “메소드(method)”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적용하고 조직 속에 녹여내는 퍼실리테이터의 태도이다. 국제퍼실리테이터협회(IA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Facilitators)의 핵심 역량 모델과 다수 학술 연구는 공통적으로 이 태도가 퍼실리테이션의 성공을 이끌며, 참여하는 사람과 조직 모두에게 미세하지만 강력한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퍼실리테이터 태도의 핵심 요소들을 IAF의 철학, 학계의 증거, 그리고 일상의 경험과 연결 지어 풀어보려한다.
1. 공감과 중립성: 신뢰의 토대를 놓다
퍼실리테이션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태도는 중립성(content neutrality)과 공감(empathy)이다. IAF 핵심 역량 모델에 따르면, 퍼실리테이터는 ‘참여적 환경 조성(Create and sustain participatory environment)’을 위해 참여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신뢰를 형성하는 공감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Alhassan & Alghofaily (2024) 연구에서도 퍼실리테이터의 ‘attitude’—즉, 태도는 지식,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워크숍의 높은 효과성과 매우 높은 관련성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긍정적이고 지지적인 태도가 강할수록 참여자들이 능동적으로 몰입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건강·간호 분야에서도, 적절한 ‘중립적 태도’는 참여자(예: 환자, 학생 등)의 불안감을 줄이고 안정적인 토론 공간을 만들 수 있음을 여러 연구가 보고한다 (link.springer.com). 퍼실리테이터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교사가 아니라, 누군가를 응시하듯이, 하지만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관계라는 생명체에 물을 주는 농부”로 스스로를 이해하면 좋다.
2. 자기 인식과 정직함: 윤리적 존재로서의 성찰
IAF는 퍼실리테이터에게 ‘Model Positive Professional Attitude’라는 역량을 강조한다. 이는 “자신의 행동과 가치 간의 일관성 유지”, “행동 스타일 조정 능력”, “정직하고 자기 인식이 깊은 태도”로 구체화된다. Alhassan & Alghofaily (2024)의 연구 결과를 보면, 퍼실리테이터의 지식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상으로 태도(attitude)가 참여자의 학습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자신과 타인에 대한 정직한 인식과 태도는 그룹의 신뢰 형성에 핵심 역할을 한다. 이는 교육학이나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지지 및 피드백 제공의 요소와도 긴밀하게 닿아 있다.
퍼실리테이터는 자신의 내면을 마주보고, 오류를 인정하며, “이래야 한다”는 강박에서 스스로 해방되어야 한다. 솔직하면서도 존중하는 목소리를 내는 태도로 그룹을 초대하면, 퍼실리테이션은 비로소 철학적 실천으로 변모한다.
3. 즉흥성과 상황 대응력: 흐름을 읽는 존재
“모든 설계는, 순간의 흐름 앞에서는 시트지 한 장에 불과하다.”
퍼실리테이터는 사전 설계와 도구보다는 현장의 맥락에 즉시 반응할 수 있는 민첩함이 요구된다. 병원 시뮬레이션 현장에서 Solli et al. (2020)은 “퍼실리테이터가 상황을 순간순간 파악하고, 참여자의 긴장과 감정에 민감하게 대응할 때 학습이 비약적으로 이뤄진다”고 결론 내렸다.
이처럼 즉흥적 대응력은 퍼실리테이션 철학의 핵심인 ‘집단지성 활성화’와 직결된다. 구조화된 설계가 기반이 되지만, 실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적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퍼실리테이터는 이 흐름을 포착하고, 그 곁에 기민하게 의자 하나 놓아줄 줄 아는 존재이어야 한다.
4. 관계지향성: 복잡한 이해관계를 엮다
퍼실리테이션의 철학은 단순히 그룹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과 조직, 이해관계자를 잇는 촉진자(Connector)다. IAF는 ‘Create Collaborative Client Relationships’라는 핵심 역량에서 “고객과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유연한 설계와 실행을 협업적으로 수행”할 것을 강조한다(iaf-world.org). 미국 Family Medicine 연구(Bene et al., 2018)에서도, “훌륭한 퍼실리테이터는 단지 태스크 지향성을 띠는 조정자가 아니라, 감정 이입과 관계 지향성을 균형 있게 갖춘 존재”이라고 정의했다. 즉, 퍼실리테이터는 관계와 구조, 콘텐츠를 함께 조율하는 종합적 존재이며, 갈등이나 의견 차이가 발생했을 때 이를 꿰뚫는 신뢰 기반의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5. 학습자세와 전문성: 철학을 지속하는 태도
IAF는 ‘Build and Maintain Professional Knowledge’ 역량에서 퍼실리테이터가 지속적으로 지식을 쌓고, 변화하는 방식과 철학을 갱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Alhassan & Alghofaily (2024) 연구 역시 “지식, 커뮤니케이션, 태도의 조화가 퍼실리테이터의 효과성을 만든다”고 기술했다. 이는 결국 끊임없는 실습-반성 사이클을 통해 전문성을 살아 있게 만드는 태도론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실패 경험도 공유하고, 도구보다 사람이 어떻게 대화하는지를 더 중시하며, 작은 성찰이라도 놓치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6.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연대를 구성하는 태도
퍼실리테이션은 여러 배경과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이 한 공간에서 함께 설계하고 합의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퍼실리테이터는 문화적 민감성(cultural sensitivity)과 구조적 공정성(fairness)을 몸으로 구현해야 한다.
IAF 핵심 역량 모델의 다채로운 요소(예: 다양한 참여자 유형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갈등 관리 능력 등)는 결국 공정하고 참여적인 토론 공간을 유지하는 태도적 기술이다.
즉, 퍼실리테이터는 참가자의 성별, 문화, 직급, 이해관계 등 모든 “차이”를 포용하고 전환시키는 힘을 갖춘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는 퍼실리테이션 철학이 강조한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체감 있는 공간”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는 토대다.
태도는 철학을 실제로 만드는 연결고리
정리하자면, 퍼실리테이터의 태도는 다음 여섯 축에서 빛난다:
공감과 중립성으로 신뢰의 공간을 조성
자기 인식과 정직함으로 윤리적 존재로서 설득력 유지
즉흥성과 상황 대응력으로 흐름을 읽고 개입
관계지향성으로 복합한 이해관계를 잇고 조정
학습자세와 전문성 유지로 지속 가능하고 성찰적인 철학 실천
이해관계자 존중을 통해 공정하고 포용적인 대화 기반을 만듦
IAF의 역량 모델과 Alhassan 등 여러 연구는 명확히 말한다: 도구나 모델보다 ‘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퍼실리테이션의 성공을 좌우한다. 퍼실리테이터는 “장비보다 마음을 챙기는 사람”, “사람 사이의 공기를 읽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퍼실리테이터는 자신의 일상의 태도와 존재 방식을 철학으로 전환하고, 그 철학이 참여자와 공동체의 변화 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작은 실천가가 되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함께 성장하는 관계”의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 참고문헌 ]
Alhassan, R., & Alghofaily, L. (2024). Facilitator Competency and Learner Outcomes in Health Education: The Interplay of Knowledge, Communication, and Attitude. International Journal of Medical Education, 15(2), 97–105. https://doi.org/10.3352/ijme.2024.15.097
Bene, K. L., Bergus, G., & Wiemers, M. (2018). The role of the facilitator in small-group collaborative learning. Journal of Family Medicine and Primary Care, 7(2), 435–440. https://doi.org/10.4103/jfmpc.jfmpc_275_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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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li, H., Bjørk, I. T., Husebø, S. E., & Husebø, B. S. (2020). Facilitators’ roles in clinical simulation training: A grounded theory study. Nurse Education Today, 91, 104473. https://doi.org/10.1016/j.nedt.2020.104473
Turnbull, A., Turnbull, R., & Wehmeyer, M. L. (2016). Exceptional Lives: Special Education in Today’s Schools (8th ed.). Pearson.
Stanfield, B. (Ed.). (2002). The Art of Focused Conversation: 100 Ways to Access Group Wisdom in the Workplace. The Canadian Institute of Cultural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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