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조직이 침묵하는 이유

Edgar Schein에게 듣기

by 남서진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숫자도 아니고 명령도 아니다. 조직은 언제나 말하지 않은 것을 따른다. 나는 그것을 문화라 부른다는 사람을 만났다. Edgar Schein, 그 이름은 오래전부터 조직개발 책의 문장 속에 있었고, 나는 지금 그 문장의 빈자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는 ‘변화를 다룰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은 조직개발을 생업으로 삼는 내게 부끄러우면서도 위로가 됐다. 그는 ‘조직을 이해한다’는 태도 자체가 오만일 수 있다고, 아주 조용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1. 표어는 문화가 아니다 — 조직문화의 세 겹

그는 문화란 “집단이 생존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택한 해법이 굳어진 패턴”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문화는 오랜 시간 축적된 생존 전략이다. 우리는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정작 문화란 보이지도, 쉽게 말해지지도 않는 무언가에 가깝다.

샤인은 문화를 세 겹으로 설명한다:
(1) 눈에 보이는 구조와 행동들(artifacts),
(2) 구성원이 믿는다고 말하는 가치들(espoused values),
(3)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따르는 암묵적 전제들(basic assumptions).

조직의 표어나 슬로건은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첫 번째 층위에 불과하다. 진짜 문화는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여기선 그런 말 안 해’, ‘이런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같은 것이다. 나는 그 층위를 진단할 수 없을 때, 조직개입을 그만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2. 질문이 권위를 무너뜨릴 때 — 겸손한 질문의 힘

그는 말한다. “질문은 정보 수집이 아니다. 진짜 질문은 관계를 만든다.”
특히 수직적 구조 안에서 질문은 위계 그 자체다. ‘이건 왜 이래?’라고 묻는 상사의 말은 질문이 아니라 평가다. 그러나 “너라면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은, 듣겠다는 약속이다. 조직 안에서 이런 질문은 드물다. 아니, 두렵다.

그가 말한 ‘겸손한 질문(Humble Inquiry)’은 내가 잊고 있던 질문의 자세를 꺼내줬다. 전문가로서, 컨설턴트로서, 리더로서 우리는 너무 쉽게 ‘알고 있는 쪽’에 선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리더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답이 아니라 대화를 선택할 때 열린다.

나는 요즘 현장 리더들에게 이렇게 권한다.
“질문을 훈련하라. 명령처럼 하지 말고, 궁금해서 묻는 얼굴로.”


3. 의미 없는 조직은 무너진다 — 조직은 문제 해결 기계가 아니다

조직은 의사결정 구조이자 과업 수행 체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미 만들기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늘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통해 행동한다. 그 해석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냐고? 바로 조직문화다.

‘왜 이렇게 일해야 하지?’
‘여기선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야?’
‘이건 내 책임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조직이 보내는 신호가 모호하거나 일관되지 않다면, 구성원은 두 가지를 선택한다: 스스로 판단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둘 다 협업에는 치명적이다. 그는 이런 상태를 “의미 붕괴”라 부른다.

“가장 위험한 조직은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받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조직이다.”


4. 진단은 이미 개입이다 — 조직을 읽는 방식이 조직을 바꾼다

샤인은 행동과학자이지만, 동시에 매우 정서적인 언어를 쓴다. ‘진단이 곧 개입이다’라는 말은 차갑지만, 그 말이 던지는 울림은 뜨겁다. 조직을 ‘분석’한다는 말은 너무 쉬운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묻고, 무엇을 놓치는가가 이미 조직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프로젝트 초반 조직 진단 때, 리더들에게 이런 질문을 넣는다.
“이 조직은 어떤 감정을 장려합니까?”
“당신은 이곳에서 실수한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 질문만으로도 분위기가 바뀐다. 조직은 질문을 듣고 있고, 질문은 곧 신호이기 때문이다.


5. 답을 주지 말고 길을 같이 걸어라 — 변화는 발견의 여정이다

문화는 바꾸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문화변화란 결국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문화를 자각하고 다시 해석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변화관리자는 해결사가 아니라 동행자에 가깝다.

그 말은 나에게 유일한 처방이자 해방이었다. 우리는 흔히 조직의 문제를 ‘이것만 고치면 나아진다’고 단순화한다. 하지만 샤인은 말한다.
“사람들은 고쳐지지 않는다. 다만, 이해되면 조금 달라진다.”

어느 리더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서로 말을 안 듣죠?”
나는 그 말이 조직문화가 SOS를 보내는 방식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질문을 받아줄 준비가 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한 메모이기도 하고, 지금 리더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짧은 동행이기도 하다. 에드가 샤인은 철저히 학자였지만, 그 누구보다 조직 속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봤다. 그는 문화라는 말을 ‘함께 살아온 방식’이라고도 불렀다.


“사람들은 그대가 무엇을 하는지를 보지만, 나는 그대가 무엇을 견디는지를 본다.” - 셰익스피어 『햄릿』


조직은 늘 무엇을 하는지를 본다. 하지만 샤인은, 우리가 무엇을 견디며 일하는지를 보자고 말했다. 그것이 조직을 바꾸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