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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변화를 설계하는 사람에게

Kurt Lewin에게 듣다

by 남서진
“모든 것은 변화하지만, 변화 그 자체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 헤라클레이토스


변화가 낯설기보다는 너무 익숙해진 시대에 살고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변화를 말하지만, 정작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낡은 방식으로 생각한다. 나는 Kurt Lewin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는 변화란 ‘힘의 평형이 깨지는 사건’이며, 그것은 단지 사람 안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심리학자였다. 실험실에서 사람을 연구했고, 전쟁 중에는 선전과 설득을 통해 인식을 바꾸는 방법을 탐구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협동, 갈등, 민주적 리더십을 실험했다. 그는 변화의 물리학자였다. 행동을 분석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행동을 지탱하는 힘의 장을 설계하려 했다.


1. ‘해동 없이 변화 없다’ — 모든 변화는 심리적 해체에서 시작된다

그는 변화의 단계를 세 개로 나눴다. Unfreeze → Change → Refreeze.
이 단순한 모델은 지금까지도 조직변화 이론의 기초 뼈대로 인용된다. 하지만 나는 종종 ‘변화(Change)’만 이야기하고, ‘해동(Unfreeze)’을 건너뛰는 리더들을 본다. Lewin은 ‘지금까지 잘 작동해온 체계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자각’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익숙한 사고방식과 관계, 구조를 붙잡고 산다. 그것은 익숙함이자, 안정감이며, 정체성이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비전을 이야기해도, 구성원들은 변화보다 상실을 먼저 느낀다. 해동이란, 지금의 구조가 왜 더는 작동하지 않는지를 함께 보게 만드는 일이다. "왜 바꿔야 하죠?"에 대한 정직한 공감이 없다면, 그들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 사람이 아닌, 장을 보라 — 행동은 관계의 함수다

Lewin은 행동의 공식을 이렇게 남겼다: B = f(P,E)
행동은 개인(P)과 환경(E)의 함수이다. 나는 이 간단한 공식을 얼마나 자주 잊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문제를 사람에게서 찾는다. 성격, 자세, 마인드, 태도. 하지만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고, 때로는 강제하고 있다면? 어떤 팀은 말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침묵이 ‘안전’이기 때문이다. 말하면 일이 생기고, 일이 생기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침묵은 최적의 생존전략이 된다.


Lewin은 ‘힘의 장(Field)’이라는 개념으로 이런 조직의 역학을 설명했다. 어떤 행동이 유지되는 데는 항상 그 행동을 떠받치는 구조와 지지대들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보지 않으면, 우리는 문제를 개인의 의지 탓으로 환원하고 만다. 그리고는 헛된 동기부여만 반복하게 된다.


3. 저항은 반대가 아니라 신호다 — 긴장을 분석하라

그는 갈등과 저항을 병리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변화가 일어나기 전, 반드시 마주해야 할 에너지 구조로 보았다. 사람들은 늘 ‘지금 이대로 있자’는 힘과, ‘이대로는 안 된다’는 힘 사이에 서 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는 말했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추진력을 키우거나 저항을 줄이는 두 가지 전략이 있다.”

대부분의 조직은 추진력만 키우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저항의 근원을 이해하고 줄이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말은 내가 개입 초기에 가장 자주 떠올리는 말이다. 리더들은 새로운 지시와 캠페인을 도입하려 한다. 하지만 Lewin은 변화란 ‘힘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힘의 구조를 재조정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먼저 기존의 억제력, 즉 저항의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왜 안 하려 할까?”라는 질문보다 먼저, “지금 그들이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저항은 변화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현재의 균형이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몸짓이다.


4. 참여 없는 변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만든 변화에 더 잘 적응한다.”
이것이 Lewin이 남긴 말 중, 내가 현장에서 가장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그는 실험실에서 ‘지시를 받은 사람’과 ‘스스로 결정한 사람’의 행동 지속성을 비교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 스스로 결정한 집단이 더 오래 행동을 지속했다.

이런 통찰은 훗날 Action Research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Lewin은 문제를 외부에서 진단하는 대신, 당사자와 함께 탐색하고 실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변화란 외부에서 내려오는 설계가 아니라, 안에서 발견되는 통찰이라고 믿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조직개발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컨설턴트가 조직을 진단해서 솔루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스스로 질문을 하도록 돕는 것. 리더가 변화 방향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변화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아이디어를 실험하게 하는 것. 변화는 설득이 아니라, 공감의 축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참여라는 통로를 통해 이뤄진다.

T.S. Eliot의 말을 빌어보자면 이 문장과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탐색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모든 탐색의 끝에서야 비로소 출발했던 그곳에 도달하고, 그곳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Lewin의 철학과 나란히 놓고싶다. 조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종종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다만, 그 자리에 다시 선 우리가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성숙해졌기를 바랄 뿐이다.


5. 좋은 이론은 사람을 살핀다 — 실천으로 이어지는 학문의 윤리

Lewin은 실험실의 과학자였지만, 현장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There is nothing so practical as a good theory.”
이 말은 내게 오래된 실천가로서의 자부심이자, 경계심이다.

그는 조직을 실험실처럼 보았다.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개입하고, 반응을 추적한다. 그러나 결코 사람을 수단화하지 않았다. 그는 집단을 자율성과 학습의 장으로 보았다. 모든 변화는 강요보다, 이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변화는 빠르게 시작된다. 위기나 위압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쉽게 되돌아온다. Lewin이 말한 ‘재동결(refreezing)’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변화가 지속되려면 그것이 일시적 반응이 아니라, 집단의 규범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freezing은 고정이 아니라, 변화가 새로운 안정 상태로 통합되는 과정이다.

이 말은 조직에서 팀을 리드하는 사람에게, 또 팀과 팀을 연결하는 관리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신이 설계하지 않은 변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당신이 강요한 변화도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게 우리다’라고 말하게 된 변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문제를 바꾸려 한다. 그러나 Lewin은 문제를 ‘설계’하라고 말한다. 문제는 행동이 아니라, 장(場)의 구조에 있다. 그 구조를 새롭게 조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조직개발이고,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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