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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어떻게 성장하는가:시스템 사고에서 찾은 5가지

Peter Senge에게 배우는 조직의 성숙

by 남서진
"우리가 만든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세계를 책임질 수 없다."
— Peter Senge, 학습하는 조직(The Fifth Discipline)


2025년 여름, 한국의 기업 현장은 냉각된 경기와 기술 중심의 재편 속에서 다시 인간과 조직의 본질을 돌아보게 되는 지점에 와 있다. 인공지능, ESG, 디지털 전환, 세대 간 갈등, 그리고 점점 더 자율과 의미를 요구하는 구성원들.
이러한 복잡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조직을 단순한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하는 존재’로 보는 시선을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그리고 그 관점을 최초로 본격화한 인물이 바로 Peter Senge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시스템 과학을 연구한 그는 1990년 ‘The Fifth Discipline’, 한국어 제목 ‘학습하는 조직’을 출간하며 경영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는 전 세계의 기업, 교육, 정부 조직에 시스템 사고와 집단 학습의 프레임을 확산시켜왔다.
그는 조직을 생명체처럼 생각했고, 진정한 변화는 개인과 집단이 스스로 배우고 변화하려는 내면의 역량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오늘날 조직의 지속가능성과 성숙을 고민하는 리더와 조직개발(OD) 전문가들에게 Senge는 여전히 묻고있다.
"당신의 조직은 정말로 배우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에게서 얻을 수 있는 다섯 가지 통찰을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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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는 눈앞에 있지 않다: 시스템 사고의 힘

Senge는 조직 내의 문제를 '단일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오늘의 문제는 어제의 해법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순한 역설이 아니다. 조직이 현재 겪는 문제는 그간의 의사결정과 관행이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라는 뜻이다.

그가 말한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는 서로 얽혀 있는 변수 간의 상호작용과 피드백 루프를 읽는 능력이다. 그는 이를 ‘학습하는 조직’에서 다섯 가지 핵심 역량 중 '다섯 번째 규율(the fifth discipline)'로 제시했다.
조직 내 갈등, 반복되는 오류, 리더십 교체의 반복, 사일로 문제... 이 모든 것이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적 패턴일 수 있다면,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

현재 빠른 전환과 기술 도입 속에서 생기는 혼란 역시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조직의 구조와 사고 방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기인할 수 있다. Senge의 시스템적 관점은, '무엇을 바꿀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재설계하라고 요청한다.


2. 리더십은 자기 안에서 시작된다: 개인 숙련

Peter Senge가 강조한 두 번째 학습 규율은 ‘개인 숙련(self-mastery)’다. 그는 이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삶의 태도”라고 정의한다. 이 개념은 단순한 성과 중심 자기계발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적 진정성과 자기 성장의 긴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역량이다.

요즈음을 사는 리더는 기술 변화보다 더 복잡한 인간 문제와 감정의 불확실성을 필수불가결하게 다루고 있다. 구성원들은 이제 리더에게 단순히 ‘열심히 하겠습니다’보다 ‘이 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묻고 이다. 리더 역시 마찬가지다.
Senge는 “조직을 이끄는 진정한 힘은 리더가 자기 내면에서 분명한 비전을 품고 그것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며 살아갈 때 생긴다”고 말한다.

이는 리더가 먼저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구성원과의 진정한 연결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 숙련은 조직문화의 토대이자, 리더십의 가장 인간적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3. 함께 바라는 미래가 조직을 움직인다: 공유 비전

‘학습하는 조직’에서 Senge는 세 번째 규율로 공유 비전(shared vision)을 제시했다. 그는 단호히 말한다. “비전은 상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 개개인의 열망이 모여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서 비전은 여전히 포스터나 연간 워크숍용 문구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Senge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언어로 조직의 미래를 말하고, 그것이 공동의 열망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자발성과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가 일어난다고 본다.

근래 특히 MZ세대와의 협업이나 젊은 리더십 이양이 이슈인 조직에서는 비전의 공동 설계와 정서적 참여가 조직 역동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Senge는 이를 30년 전부터 예고한 셈이다. 진정한 비전은 위에서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함께 그리는’ 것이다.


4. 진짜 팀은 함께 학습한다: 대화와 집단 지성

네 번째 규율인 팀 학습(team learning)은 단순한 협업의 차원을 넘는다. Senge는 여기서 대화(dialogue)의 힘을 강조한다. 이때의 대화란, 단순한 토론(debate)이 아니라 편견을 유보하고 서로의 생각을 열어놓는 태도를 의미한다. ‘내 말을 하는 것’에서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을 전제하여 좀 더 연습해야할 수도 있다.

그는 물리학자 David Bohm의 개념을 인용하며 “대화는 진리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스스로 드러나도록 자리를 여는 행위”라고 말한다.
조직은 그런 공간을 만들고 있는가? 빠른 결정과 실행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한국 조직에서, 팀이 서로를 경청하고 사고를 공유하는 대화의 시간이, 마음의 여유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디지털 협업 도구와 원격근무가 늘어난 지금, ‘진짜 대화’의 부재는 팀의 학습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조직이 살아 있으려면, 팀은 단지 일만 하는 단위가 아니라 함께 사고하는 단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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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생각의 프레임을 보는 힘: 정신 모델의 재구성

마지막 규율은 정신 모델(mental models)이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무의식적 틀이다.
Senge는 “조직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외부가 아니라, 구성원 내부에 자리 잡은 보이지 않는 전제”라고 말한다.

예컨대 ‘현장 직원은 전략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리더의 전제는, 구성원을 진정한 참여자로 대하는 시도를 차단한다. 또는 ‘실패하면 안 된다’는 문화는 시도와 학습의 가능성을 갉아먹는다. 현대 조직이 당면한 복잡한 환경에서 이러한 전제는 ‘검증된 노하우’보다 ‘은근한 독’이 될 수도 있다.

정신 모델은 도전받지 않으면 갱신되지 않는다. Senge는 조직이 자기 성찰과 피드백을 통해 이 틀을 ‘의식화’하고, 새롭게 구성할 수 있어야 진짜 학습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리더와 변화 관리자는 자신의 관점이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모델’임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새로워질 수 있다.

다시, 학습하는 조직을 꿈꾸며

Peter Senge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조직은 학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성과를 내는 방법보다는 깊이 생각하는 방식, 더 잘 듣는 방법, 스스로 성장하려는 존재로서의 조직을 이야기한다.

조직은 단순히 관리되어야 할 기계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고 변화를 감내하며, 배움을 통해 진화하는 유기체다. 그리고 그것은 제도나 구조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시스템을 보는 눈, 내면을 비추는 용기, 진짜 대화와 공유된 열망, 그리고 관점을 전복할 수 있는 인식의 힘이 필요하다.

그의 관점은 AI기술의 시대에 더욱 선명해지는 듯하다. 디지털과 자동화가 아무리 발전해도, 시스템을 해석하고 연결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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