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리더가 정말 필요한가요?

Warren Bennis에게 듣다 ㅣ AI 시대, 존재의 리더십을 묻다

by 남서진

“인간의 삶은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 T.S. 엘리엇

Warren Bennis를 처음 읽었을 때, 그는 리더십을 기술이 아닌 존재에 관한 문제로 끌어올리는 듯했다. 그가 말하는 리더는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지시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떠안은 사람이었다.

오늘날 이 질문은 다른 맥락에서 부활한다. 기술은 초고도로 발달했고, AI는 분석과 판단, 심지어 창의적 과업까지 일부 대체하고 있다. 지식은 더 이상 힘이 아닐지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구글과 ChatGPT를 통해 전략, 리포트, 피드백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조직에 리더는 왜 필요한가?
이 질문은 단순한 효율성 논쟁이 아니다. 기술이 처리할 수 없는 인간의 ‘의미 찾기’, ‘정체성 회복’, ‘관계 형성’의 영역에서 리더의 존재 이유는 더 선명해진다. Bennis는 이에 대한 혜안을 가졌는지 일찌감치 리더십을 사람됨의 예술로 정의했다. 그리고 지금 이 전환기의 조직에서 그의 통찰은 오래된 미래처럼 다시 빛나고 있다.

Gemini_Generated_Image_yzuzinyzuzinyzuz.png

Becoming, 리더는 되어가는 존재다


Bennis는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Becoming a leader)”고 말했다. 여기서 ‘만들어진다’는 말은 단순히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형성된다는 뜻이 아니다. 많은 구루들이 짚어주기도 한 바 처럼, 그는 리더십의 핵심을 자기 인식(self-awareness)에 두었다. 리더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자신의 생애 곡선을 성찰하며, 상처와 실패를 껴안는 사람이다. 그는 직무의 권한보다 삶의 서사에 주목했고, 탁월한 리더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AI 에이전트들이 점점 더 많은 반복 업무를 처리하는 시대, 인간 리더에게 남겨진 역할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가 인간답게 존재하는 힘, 즉 자기 정체성을 탐색하고 관계 속에서 진정성을 드러내는 능력, 그것을 넘어서는 것 그 이상이 군더더기가 아닐까. 기술이 아닌 존재가 리더십의 본질이 된다는 그의 메시지는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다.


진정성은 새로운 통화다


“리더는 결코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선.” — Bennis

진정성(authenticity)은 Bennis 리더십의 정수다. 그는 리더십을 자기 자신이 되는 예술(the art of becoming oneself)로 해석한 것 같다. 위기를 마주했을 때, 성과 압박에 직면했을 때, 리더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대신 자신의 목소리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물어야 한다. 그 정직함은 결국 신뢰(trust)라는 형태로 조직 안에서 화폐처럼 작동한다.

오늘날 하이브리드 워크, 디지털 협업 툴, AI 기반 자동화로 업무의 익명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럴수록 리더의 존재감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중요해진다. 화면 너머로 연결된 구성원은 리더의 말 한마디, 메일 한 줄에서 그 진정성을 감지하게된다. 진정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조직문화의 공기를 바꾸는 리더십의 새로운 통화가 될 수 있다.


Gemini_Generated_Image_yt63nayt63nayt63.png

기계가 일할 때, 사람은 왜 이끄는가?


Bennis는 ‘관리자(managers)’와 ‘리더(leaders)’를 구분했다. 전자는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는 사람(do things right)”이며, 후자는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do the right thing)”이다. 이 말은 효율과 의미를 구분하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수치를 맞추고, 매뉴얼을 지키는 것으로는 ‘리딩’이 완성되지 않는다.

AI가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을 인간보다 더 잘 수행하게 된 지금, 리더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이 의미 있는 선택인지, 왜 그것을 선택하는지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알고리즘은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리더의 몫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방향이 ‘효율적’이냐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어디로 이끄는가이다. 이 시대의 리더십은 이제 “더 빠른 길”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혼돈의 시기에 말할 수 있는 사람


Bennis는 혼란의 시기에 리더십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그는 젊은 시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경험이 있으며, 그 이후 리더십은 생존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키는 기술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이 혼란할수록, 리더는 자기 이야기를 더 자주, 더 진솔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혼란과 혼돈, 그것도 몹시 빠르고 복잡한 변화 속에서 방향의 선언은 어쩌면 도박성 짙은 결단일수도 있다. 초점해야할 것은 혼란 속에서 발휘해야 할 리더의 지혜인 것 같다. 그는 리더가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혼돈 속에서도 침착하게 질문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리더가 마주한 ‘혼돈’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예측 불가능한 기술 변화, 모호한 상하관계, 경계가 흐려진 부서 협업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소속되는지, 누구를 믿을 수 있는지 혼란을 느낀다.

이런 때일수록 리더는 ‘이야기하는 사람(storyteller)’이 되어야 한다. 나의 실패, 우리의 시도, 지금 여기에 있는 감정을 말할 수 있는 리더. 이것이 신뢰와 의미를 회복시키는 첫걸음이고, 그래야 함께 혼란을 헤쳐나가는 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질문을 품은 리더가 남는다


Bennis는 진정한 리더는 계속해서 배움의 사람이라고 보았다. 리더는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품고 그 질문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호기심(curiosity), 경청(listening),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리더십의 핵심 요소로 보았고, “리더십은 단절된 삶을 통합하는 작업”이라 말했다.

이제 AI 에이전트는 정답을 알려준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우리는 조직에서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누구를 향해 열린 질문인가, 아니면 이미 답을 정해놓고 하는 형식적 질문인가?

OD 실천가로서 리더들을 만날 때면, 나는 그들이 던지는 질문을 성찰해보게 된다. 질문은 그 사람의 깊이와 리더십 수준도 들여다 보게 해준다. 좋은 리더는 늘 배우는 사람이다. 그리고 배우는 사람은 늘 질문하는 사람이다. Warren Bennis는 우리에게 리더십을 다시 정의하게 만든다. 그것은 위계가 아닌 관계이고, 스킬이 아닌 존재이며, 성과가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이제 AI가 우리의 업무 동료가 된 이 시점에서, 우리 각자에게 남겨진 리더십의 본질은 더욱 뚜렷해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오늘의 리더가 아닐까.



------------------


Reference

* Bennis, W. (1989). On Becoming a Leader. Addison-Wesley.

* Bennis, W., & Nanus, B. (1985). Leaders: The Strategies for Taking Charge. Harper & Row.

* Bennis, W., & Thomas, R. (2002). Geeks and Geezers: How Era, Values, and Defining Moments Shape Leaders.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직이 똑똑해질수록, 배움을 잃어버리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