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Beckhard에게 듣다
“모든 위대한 변화는 한 사람의 결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움직이려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함께 흔들려야 한다.”
익명의 이 말은 조직개발의 본질을 정확히 찌른다. Richard Beckhard는 이 진리를 조직을 대상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MIT 슬론스쿨 교수이자, 조직개발(OD, Organization Development)이라는 용어를 학계와 실무에 정착시킨 개척자. 그가 제시한 ‘계획된 변화(Planned Change)’의 철학은, 변화가 우연이나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Beckhard, 1969).
조직개발(OD) 프로젝트의 초반, 가장 자주 부딪히는 벽은 ‘변화 필요성에 대한 무관심’이다.
워크숍에서 이런 말을 듣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도 괜찮은데, 굳이 바꿔야 하나요?”
Beckhard와 Reuben Harris는 이 난제를 하나의 공식으로 풀어냈다 (Beckhard & Harris, 1987).
D(dissatisfaction) × V(vision) × F(first steps) > R(resistance to change)
(불만족 × 비전 × 첫 단계 > 변화 저항)
그들에게 변화란 심리전이 아니라, 세 가지 변수를 곱해 저항보다 크게 만드는 설계 행위였다.
이 공식은 OD 전문가에게 ‘변화를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를 설계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 ‘왜 바꿔야 하는가’에서 멈추지 않고, 무엇을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로 시선을 옮기게 만드는 도구다.
이 공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는 현장 사례를 대입해보면 더 뚜렷해진다.
한 제조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사고 제로’라는 비전을 세웠다. 과거 사고 사례와 경쟁사 대비 낮은 안전지수를 데이터로 제시하며 불만족(D)을 분명히 하고, 모두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현장을 만들겠다는 비전(V)을 공유했다. 여기에 하루 5분 ‘안전 대화’와 ‘위험 발견 즉시 공유’라는 첫 단계(F)를 도입하자, 3개월 만에 위험 상황 보고 건수가 40% 증가하며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또 다른 금융그룹은 모바일 금융 전환이 늦어져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었다. 외부 조사에서 모바일 금융 이용률이 60% 이상 증가했다는 수치를 보여주며 위기의식(D)을 높이고, ‘고객이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퍼스트 은행’이라는 비전(V)을 제시했다. 그리고 전 지점에 ‘디지털 코치’를 지정해, 고객과 직원이 앱을 직접 써보도록 하는 첫 단계(F)를 실행했다. 6개월 만에 모바일 신규 가입자가 목표치의 150%를 달성하며, 저항(R)을 훌쩍 넘어서는 변화의 힘을 보여줬다.
OD 실무자가 자주 빠지는 함정은 ‘부서 단위의 미세조정’이다. 한 팀의 갈등을 풀어놓으면, 몇 달 뒤 다른 팀에서 같은 문제가 다시 터진다. Beckhard는 이를 두고 “부분을 바꾼다고 전체가 바뀌는 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변화 접근은 언제나 조직 전체를 무대로 한 계획적 변화였다 (Beckhard, 1969). 전략, 구조, 인재, 프로세스가 서로 어떻게 물리고 도는지를 보고, 개입도 그 연결성을 따라 설계했다. 이 시스템적 시야는 오늘날 디지털 전환, ESG 전략, 애자일 전환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다. 문제를 한 지점에서만 고치려 하면, 변화는 그 지점에서만 머물다 사라진다.
OD 전문가가 프로젝트 중반에 종종 느끼는 좌절은 ‘무관심한 참여자’다. 회의장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딴 데 가 있고, 아이디어를 꺼내는 손길은 더디다.
Beckhard는 변화의 성패를 “참여자의 소유감”으로 판단했다. ‘참여 설계(Participative Design)’라는 개념 자체는 Eric Trist와 Fred Emery 등 사회기술시스템(Socio-Technical Systems) 이론가들이 제시했지만(Emery & Trist, 1965), Beckhard는 이를 OD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해 변화 현장에 녹여냈다.
그에게 참여자는 단순히 회의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변화의 설계자이며, 성공했을 때 그 성과를 자부심으로 삼는 주인이다.
OD 프로젝트에서 가장 답답한 순간 중 하나는 좋은 전략이 있는데, 사람과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계획은 완벽해 보이지만, 적재적소의 인재와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변화는 공중에 뜬다.
Beckhard는 HR을 단순한 인사행정이 아닌 전략을 현실로 만드는 레버로 정의했다. 그의 전략적 인력계획(Strategic Human Resource Planning) 접근은 오늘날 HRBP(HR Business Partner)나 인재전략 수립의 원형에 가깝다(Beckhard, 1982). 인재 확보·육성·배치를 조직의 장기 목표와 정교하게 엮는 설계. 그는 이를 통해 “사람 없이 전략이 움직일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경영의 중심에 놓았다.
많은 OD 실무자는 변화를 ‘완성’이라는 시점으로 본다. 하지만 Beckhard는 변화를 끝나는 순간이 아니라, 배우는 과정으로 보았다.
변화 과정에서의 실패, 충돌, 조정, 우회로 찾기까지 모두가 조직의 학습자본이 된다. 그는 “변화를 통해 조직의 적응력과 자기혁신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진짜 목표”라고 강조했다 (Beckhard & Pritchard, 1992). 이 철학은 변화가 끝나더라도 조직이 계속해서 학습하는 구조를 설계하게 만든다.
오늘의 Beckhard, 내일의 우리
VUCA 시대, AI와 자동화, 세대와 문화의 경계가 흔들리는 오늘, OD 전문가들은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선다.
· 왜 사람들은 변화를 거부하는가?
· 어떻게 해야 변화가 조직 전체로 번져갈까?
· 변화 이후,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Beckhard는 정답을 주진 않았다. 대신, 변화를 설계하는 눈, 참여를 이끄는 손, 학습을 이어가는 마음을 남겼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여전히 단순하다.
“변화를 원한다면, 그 변화를 설계하라. 그리고 그 설계에 사람들을 참여시켜라.”
· Beckhard, R. (1969). Organization development: Strategies and models. Reading, MA: Addison-Wesley.
· Beckhard, R., & Harris, R. T. (1987). Organizational transitions: Managing complex change (2nd ed.). Reading, MA: Addison-Wesley.
· Beckhard, R., & Pritchard, W. (1992). Changing the essence: The art of creating and leading fundamental change in organizations. San Francisco, CA: Jossey-Bass.
· Beckhard, R., & Dyer, W. G. (1982). Strategic change in business. Boston, MA: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 Emery, F. E., & Trist, E. L. (1965). The causal texture of organizational environments. Human Relations, 18(1), 21–32. https://doi.org/10.1177/00187267650180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