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날드 리피트(Ronald Lippitt)에게 듣다
"변화 프로젝트의 80%가 실패한다"는 맥킨지의 오래된 통계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는 변화를 시작하는 방법에만 몰두했지, 끝내는 방법에는 서툴기 때문이다.
조직개발(OD)의 역사에서 Ronald Lippitt의 이름은 흔히 Kurt Lewin의 제자로 언급된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거인의 뒤를 따르는 인물이 아니었다. Lippitt는 변화의 과정을 구조화하고, 변화를 돕는 사람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했으며, 무엇보다 변화가 어떻게 마무리되고 지속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오늘날 디지털 전환, AI 기반 혁신, ESG·DEI 프로그램 같은 대규모 변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조직이 비슷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프로젝트는 화려하게 시작되지만, 어느새 흐지부지 사라지고, "끝맺음 없는 변화"의 흔적만 남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Lippitt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Kurt Lewin의 3단계 모형(해빙–변화–재동결)은 변화이론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Lippitt는 이를 확장해 7단계 변화모형을 제시했다: 문제 진단 → 변화 동기와 역량 평가 → 변화 관리자의 자원과 동기 평가 → 점진적 변화 목표 선택 → 변화 관리자 역할 명확화 → 변화 유지 → 관계 종료
Lippitt의 모델이 혁신적인 이유는 변화를 단순한 "실행 이벤트"가 아니라 끝까지 관리해야 하는 여정으로 정의했다는 점이다.
현재 HR과 조직문화 담당자들이 가장 많이 겪는 딜레마를 생각해보자. 리더십 교육, 디지털 스킬업, 조직문화 혁신 프로그램들이 쏟아지지만, 정작 "그래서 이 프로그램이 언제 끝나고, 어떻게 평가되며, 이후 어떻게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Lippitt의 통찰: "변화는 마무리까지 설계되지 않으면, 애초에 시작되지 않은 것과 같다."
Lippitt는 변화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변화 관리자(change agent)를 꼽았다. 그런데 그가 정의한 변화 관리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문가"나 "컨설턴트"와는 다르다. 그는 변화 관리자를 신뢰를 형성하고 참여자의 역량을 키워내는 촉진자로 정의했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오늘날 조직개발 이슈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흔히 부딪히는 어려움은 "외부 컨설턴트 의존 증후군"이다. 컨설턴트가 떠난 뒤 조직은 다시 원래의 습관으로 돌아가곤 한다. Lippitt는 이런 함정을 70년 전에 예견했다.
그의 접근법은 도발적이다. 변화 관리자는 조직이 스스로 변화를 유지할 힘을 기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리더나 퍼실리테이터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떠난 뒤에도 조직은 변화를 지속할 수 있는가?"
Lippitt는 권위적 리더십이 아닌 민주적, 참여적 리더십을 강조하며 Lewin과 흐름을 같이했다. 변화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선택하고, 책임질 때 지속된다.
이 원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님을 보여주는 현대 사례가 있다. ING(네덜란드)는 2015년 대대적인 애자일 전환을 단행했다. 전통적 금융기관의 위계질서를 과감히 버리고, '스쿼드'와 '트라이브'라는 자율적 팀 구조를 도입했다. 직원들은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합의한 목표와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였다.
결과는? ING는 디지털 혁신 속도를 높이고, 고객 맞춤형 서비스 개발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외부 컨설턴트 없이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ING는 2015년 6월 애자일 도입 당시 특별한 재정적 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변화하는 소비자 행동과 기대에 대응하기 위해 사전적으로 변화를 결정했다.
현재 많은 조직의 리더들이 여전히 "답을 주려는 유혹"에 사로잡혀 있고, 참여는 형식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Lippitt의 교훈은 단호하다. 민주적 과정 없이는 변화도 없다.(아니 어려울 것이다)
Lippitt는 연구실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그는 청소년 리더십 프로그램, 지역사회 개발 프로젝트 등 현장에서 직접 연구를 실행했다. 이는 Lewin의 말 "행동 없는 연구는 죽은 것이고, 연구 없는 행동은 맹목적이다" 를 실천한 것이기도 했다.
현대의 ESG 전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Danone은 'One Planet, One Health'라는 비전을 내세우며 탄소 감축을 시작했는데 단순히 선언에만 그치지 않았다. 성과급과 리더십 평가에 ESG 지표를 연동하는 Positive Incentive Loans(PILs) 구조를 도입해 직원들이 일상적 의사결정에서 ESG를 고려하도록 내재화했다. 2018년 20억 유로 규모의 PIL을 통해 Sustainalytics와 Vigeo-Eiris의 ESG 평가에 따라 금융비용이 조정되는 혁신적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이처럼 연구·전략과 실행·문화가 선순환할 때, 변화는 조직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된다.
많은 컨설턴트와 조직개발 전문가들이 마주하는 어려움이 "보고서에만 머무르는 전략"이지 않을까 싶다. Lippitt는 말한다. "실천 없는 전략은 공허하다. 현장 없는 연구는 무력하다."
Lippitt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종료 단계(termination phase)'였다. 변화는 전문가가 떠난 이후에도 조직이 스스로 유지·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Kellogg's는 ESG 전략 'Better Days Promise'를 실행하면서 단발적 캠페인에 그치지 않았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9억 8,900만 명에게 영양가 있는 식품을 제공하고, 2억 5,200만 명의 기아 문제를 지원하는 등 구체적 수치로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했다. 또한 이를 브랜드 성장 전략과 직접 연결하여 2030년까지 30억 명에게 더 나은 날들을 제공한다는 장기적 비전을 수립했다 (Kellogg Company, 2023). 이는 "변화가 사라지지 않고 문화로 뿌리내리는 방식"의 사례다.
조직개발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경험하는 좌절 중에 "좋은 프로젝트였는데, 결국 원래대로 돌아갔다"라는 피드백이 있다. Lippitt의 교훈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난다. 끝맺음을 설계하지 않은 변화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Ronald Lippitt는 변화의 시작보다 끝맺음과 지속성에 주목한 사람이었다. AI와 자동화가 인간의 업무를 재구성하는 지금, 리더와 컨설턴트에게 그의 질문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당신의 개입은 조직이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었는가?" "당신이 떠난 뒤에도 변화는 살아남을 것인가?"
조직개발 전문가들에게 이는 단순한 이론적 사유가 아니다. 우리 직업의 윤리이자 존재 이유다.
[ Lippitt의 다섯가지 유산 ]
변화는 단계적 과정이다 ― 시작만큼 끝맺음도 설계하라
변화 관리자는 촉진자다 ― 구세주가 되려 하지 말라
민주적 리더십이 변화를 지속시킨다 ― 집단지성을 신뢰하라
이론은 실천과 만날 때 살아난다 ― 현장에서 검증하라
끝맺음을 설계해야 변화가 살아남는다 ― 지속가능성이 핵심이다
"우리는 도착하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스스로를 만들어간다."
오늘의 리더와 조직개발 전문가에게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의 조직은, 당신의 변화는, 길 위에서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 참고문헌 ]
Lippitt, R., Watson, J., & Westley, B. (1958). The Dynamics of Planned Change.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McKinsey & Company. (2017). ING's agile transformation. McKinsey Quarterly.
BNP Paribas. (2023). Danone's Positive Incentive Financing Strategy.
Kellogg Company. (2023). Kellogg's Better Days® Promise has created Better Days for over 1.8 billion people since 2015. Press Release.
Brightline Initiative. (2018). ING Group: Agile Transformation Case 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