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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밍아빠 Oct 15. 2017

아내의 복수

 아빠는 아직 성장 중

얼마 전 아이의 유치원 운동회가 있었다.

학부모로 참여하는 첫 경험이자 가장 큰 행사였다. 집 근처 체육관에서 하는 행사에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입장하니 시끌벅적했다.


잘한 걸까? 잘못한 걸까?

분명 가정통신문에 간식이나 음료는 반입금지라고 쓰여있었다. 아이가 마실 물만 챙겨서 갔는데, 다른 가족들은 김밥, 과일, 샌드위치, 과자, 음료.. 소풍 온 것처럼 온갖 음식을 다 가지고 왔다.

"엄마, 아빠! 다른 친구들은 다 간식 가지고 왔잖아요"

과자를 가지고 가자는 아이를 애써서 설득시키고 왔는데, 그 민망함이란..


딸아이는 운동회 중간중간 친구들이 싸온 간식을 얻어먹었다. 친구들과 친구 부모님들이 잘 나눠준 덕분에 운동회 중반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쉬는 시간이었다.

모두 벤치로 돌아가서 간식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옆에 앉은 친구가 과자를 먹고 있었는데, 딸아이 입 앞에서 약을 올리고 나눠주지 않았다. 그 아이 부모도 그걸보고 웃기만 했다. 기분이 상한 아내는 매점으로 뛰어가서 똑같은 과자와 다른 간식들을 잔뜩 사서 돌아왔다.


딸아이는 환한 표정으로 과자를 뜯어서 '와작와작' 먹었다. '와작와작' 소리가 마음속 응어리를 박살 내는 기분이었다. 딸아이가 과자를 먹느라 관심을 가지지 않자 그 친구가 오히려 딸아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딸아이가 마시는 어린이 음료수에 관심을 가졌다.


복수의 시간이 온 것인가?

나는 미소를 머금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예상대로 친구는 음료수를 달라고 했고, 딸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과자를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 히죽거리고 있던 내 등짝을 한대 때리면서 아내가 말했다.


"뭘 좋아하고 있는 거야? 애들이랑 똑같아!"

"응? 뭐가? 쟤도 느껴봐야지"

"애들이 뭘 느껴?"

"친구야, 너도 음료수 먹고 싶지? 자 이거 마셔!"


아내는 새로운 음료수 한 병을 그 친구에게 건넸다. 그 아이는 천천히 음료수를 받아서 자기 부모에게 내밀었다. 그때 아내가 결정적인 한방을 날렸다.


"친구끼리 나눠먹고 그래야 하는 거야? 알겠지?"

"네에"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고, 그 음료수를 따주는 아이부모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내 얼굴은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여보, 당신이라는 사람 정말..



김미경 강사의 '결혼 전 명심할 것'강의를 보면 30살 이전에는 부모 밑에서 성장하고, 30살 이후에는 배우자가 성장시킨다고 했다. 이 강의를 보기 전에 결혼했지만, 다행히 나는 배우자를 잘 만난 것 같다. 나보다 성숙한 아내 밑에서 많이 배우기 때문이다.


※ 딸과 저는 아내에게 배우면서 함께 성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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