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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봄을 그린다

늦은 아침 생각의 시창착 17

by 박 스테파노

겨울이 오고

그 뒤에 봄이 서 있다

가을의 마지막 빛이 논바닥을 훑어,

벼는 베여 사라

밑동만이 남아 땅의 숨결을 드러낸다

햇살은 희미하,

먼지 섞인 공기가 가을의 끝을 지우고

나는 이 계절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봄을 그린다


광장에 비둘기들이 내려앉

떨어진 부리와 잘린 발로

그들은 날갯짓을 멈추지 않

나는 그들의 짧은 도약을 보며 생각한다

겨울을 견디는 일은 어쩌면,

다시 날기 위해

땅을 더 단단히 밟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바람이 매서워지고

맨살의 땅은 서서히 갈라진다

그 틈새마다 지난 계절의 시간이 스며든다

지구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자전하고

태양의 둘레를 따라 공전한다

그 회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계절을 선물한다


언젠가 이 땅은 다시 숨을 들이마시듯 물을 품는다

균열마다 새싹이 돋고

그 봄의 빛이 겨울의 어둠을 거슬러 피어난다

나는 그 약속을 믿으며

이 가을의 끝에서 봄을 그린다


° 오늘이 골반에 구멍을 내고 골수를 채취하는 날입니다. 검사와 진료 잘 받아 당일 퇴원을 목표해 봅니다. 모두에게 작은 성공들이 이루어지는 하루 되시길


밑둥까지 베인 가을. 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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