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 생각의 시창작
진리가 있다면 말은 닿지 못한다
언어는 언제나 그 앞에서 멈춘다
그래서일까,
불국사 강당에 새겨진 무설전(無說殿)
말이 없는 법당,
그러나 가장 깊은 가르침이 머무는 자리
가을빛이 낮게 깔리던 날,
나는 그곳에 오래 서 있었다
바람이 지나가며 설법을 대신했고,
낙엽은 제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날 이후 내 안에도 작은 무설전이 생겼다
항암의 계절, 입가가 헐고
입안이 쩍쩍 갈라진다
포진은 잊은 기억과 달리 제 자리를 잊지 않는다
면역이 약해질 때마다 그곳에서 다시 피어난다
나는 그 고통을 통해,
욕망이 얼마나 얇은 막 아래 숨어 있는지 깨닫는다
지우려 할수록,
그 자리에 되살아나는 것들은 언제나 있다
말을 숨기고 생각한다
남겨야 할 가을인가, 흘려보내야 할 가을인가
변한 듯 제자리로 돌아오는 욕심이 더 완고한 법,
그 더러운 고름을 안으로 삼킨 채
나는 오늘도 내 안의 균형을 궁리한다
면역과 결핍이 한 몸이듯,
빛과 그늘도 서로의 근거다
나는 이제 말보다 고요를 택한다
넘치던 말들이 가신 자리,
마음의 입술이 서서히 아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