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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다

주간 단상 - 골수검사, 전례력, 그리고 동물원

by 박 스테파노

1. 몸이 말하는 밤, 마음이 답하는 아침


지난주, 나는 여섯 번째 골수 검사를 해냈다. ‘해냈다’는 말에는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그 말 아래 감추어 둔 어떤 떨림과 체념과, 겨우 이어붙인 용기의 잔해가 함께 배어 있다. 몸으로 겪으며 기억해 버린 통증은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는 법이 없고, 오히려 반복될수록 더 또렷한 그림자를 남긴다. 그 기억의 출발은 여전히 2023년 12월 18일에 묶여 있다. 비대해진 비장이 위를 압박해 궤양이 생기고, 결국 위동맥이 파열되어 응급실로 실려 갔던 그날. 급하게 진행된 기초 검사 끝에 ‘백혈병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내 앞에 놓였다. 말은 짧았으나, 그 말은 내 삶의 구조를 뒤집을 만큼 충분히 날카로웠다.


중환자실에서 측정된 체중은 63kg이었다. 중학생 이후 다시 본 적 없던 숫자. 코로나를 지나며 생활이 무너졌지만, 나는 그저 살이 빠지는 줄만 알았다.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이상 징후를 외면하는 인간의 무지란 얼마나 깊고 완강한가. 스스로를 회피하고 있었던 시간들이 그날 침묵 없이 되돌아왔다. 처음 실려간 병원의 전공의들이 골수를 채취하려 애썼지만, 네 시간이 넘게 이어진 시도 끝에서도 결과를 얻지 못했다. 스무 군데가 넘는 골반 뼈의 천자 자국, 실패로 끝난 반복, 그리고 그 어딘가에서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그 기억은 아직도 내 몸 안에 박혀 있다.


결국 의료진은 난색을 표했고, 더 전문적인 혈액암 치료가 가능한 서울성모병원으로 전원이 결정되었다. 전원 과정 또한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작년 1월 다시 진행된 골수 검사는 40분 만에 채취되었다. 담당 의료진은 골수량과 압력 문제로 채취가 쉽지 않은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그곳에는 오직 골수 검사를 위해 훈련된 팀이 있었고, 체계적인 프로토콜이 있었다. 검사 이후 생긴 혈종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지만, 적어도 그때는 ‘가능성’이라는 단어 하나가 나를 지탱했다.


다행이다. 내 사진


그 후 치료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마다 골수 검사는 반복되었다. 항암이 실패할 때마다 다시 누워야 했고, 그때마다 지혈이 되지 않아 혈소판 수혈을 맞으며 버텨냈다. 나는 남다르게 고통을 잘 참는 편이라 믿어 왔다. 늑골 골절이나 자상 정도는 약도 없이 넘기곤 했다. 하지만 견딘다고 해서, 덜 아픈 것은 아니었다. 통증에 둔감한 것이 아니라, 그저 통증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학습은 결코 의지의 승리가 아니라 생존의 습관에 가까웠다. 그래서 골수검사 일정이 잡히면 며칠 전부터 잠은 얕아지고, 생각은 날카로워졌다. 다만 그런 불안을 내색하면 아내가 더 무너질까 봐, 나는 평온한 표정을 연기했다. 침묵도 때로는 사랑의 한 방식이 된다.


이번 검사는 이전보다 훨씬 수월했다. 전임의의 손길은 정확했고, 간호사는 말보다 온기로 나를 도닥였다. 혈소판 수치도 올라 지혈은 예상 시간 안에 멈추었다. 외래 진료실을 나오는 동안 주치의의 태도로 인해 마음 한켠이 살짝 찌그러지긴 했지만, 긴장과 두려움이 지나간 밤을 돌아보면 이번 검사는 분명 하나의 작은 승리였다. 그것은 단지 육체의 승리가 아니라, 다시금 삶을 선택한 내 쪽의 조용한 결단이기도 했다.


나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기도하고 메시지를 보내 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그러나 한국 의료 현실 안에서 마주하는 또 다른 난관, 즉 ‘전문성’을 곧 ‘권위’로 오해하는 의료인의 태도는 여전히 나를 피로하게 만든다. 그 부분은 언젠가 따로 이야기할 기회를 가지려 한다. 지금은 그 피로를 기록하는 대신, 다만 이렇게 적고 싶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음이 나를 미묘하게 흔들고 있다.



2. 끝에서 열린 왕국, 기다림의 문턱


지난 일요일은 교회의 시간 안에서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연중의 보통 날들이 서서히 닫히고,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의 문턱이 열리는 시점. 이 축일은 언제나 한 해의 마지막 자리 끝에 조용히 놓여 있다. 달력의 페이지가 마지막 숨을 고르듯 접혀갈 때, 마치 늦가을 가지 끝에서 마지막 잎이 떨고 있는 순간처럼,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의미는 화려한 왕관이 아니라 초라한 가시관과 함께, 힘의 광휘가 아니라 침묵의 권능으로 다가온다.


이 날은 승리의 절정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려 조롱받는 한 사람 안에서 드러나는 통치의 역설을 더 깊이 기억하게 만든다. 해가 기울어 갈수록 이 축일은 일종의 수렴점이자, 동시에 새로운 기다림의 호흡을 건네는 시작점으로 작동한다. 끝과 시작의 경계에 스며 있는 통치, 그것이 이 축일의 본질에 가까운 감각이다.


신학적으로 이 축일은 권력의 의미를 재배치하고, 지배의 개념을 다시 묻는 날이다. 예수가 말한 ‘나라’는 권력 투쟁이나 제도적 승리, 혹은 통제의 체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 나라는 억눌린 자가 얼굴을 들고, 잊힌 이름이 다시 소환되고, 상처가 한 존재의 모든 정의를 결정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루카 복음에서 십자가 위 강도에게 건넨 짧은 응답—“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그 한 문장은 왕권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서늘하고도 정확하게 드러낸다. 그곳에는 거래가 없고, 조건이 없으며, 단죄의 언어 대신 초대의 목소리만 남는다. 그러므로 이 왕권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이고, 명령이 아니라 아낌이며, 통제의 논리가 아니라 가까움의 방식이다.


문학적 시선에서 이 축일은 역설적 이미지들의 미학을 드러낸다. 왕관 대신 가시관, 왕좌 대신 거친 목재의 십자가, 환호 대신 조롱과 침묵. 이 이미지들은 거꾸로 뒤집힌 상징성을 품고 있어, 자연스레 질문을 불러온다. ‘왕이라면 왜 무력한가.’ 그러나 질문이 한 겹 더 깊어지면,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난다. ‘무력해 보이는 이 앞에서 나의 영혼이 느끼는 이 설명할 수 없는 경외는 무엇인가.’


여기서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단순한 교훈이나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드러내는 한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 통치는 강함의 언어로 정의되지 않으며, 성공의 기준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날은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탐욕, 과시, 인정 욕망의 그림자를 비추어 보여 주는 거울에 가깝다. 세속적 권력 상상력이 얼마나 촘촘하게 스며 있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얼마나 쉽게 신앙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체계를 정당화하는지 직면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축일은 외부의 권능을 선포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면의 욕망을 비우는 광야의 날에 가깝다.


그리스도 왕 천장그림, 플로렌스, 1300년경. 가톨릭신문(박유미) 제공


예수의 통치는 성취가 아니라 낮아짐 안에서, 정복이 아니라 품음 안에서, 통제 대신 자유를 허락하는 방식 안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역설의 구조는 도스또옙스끼의 『백치』에서 미쉬낀 공작이 보여 준 약함의 위엄과 닮았다. 그는 서툴고 미완의 존재이지만, 그가 보여준 백치적 자비는 사람들을 낯설게 만들고, 때로는 두렵게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랑은 계산되지 않고, 조건 없이 허락되며, 무엇보다 부서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질문은 다시 쓰인다. ‘누가 진짜 강한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강하다고 말하는 것들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었던 질서는 얼마나 쉽게 균열과 파열을 드러내는가. 그리고 침묵 속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또 다른 종류의 권능은, 어쩌면 우리의 가장 깊은 갈망—존재가 지워지지 않고, 이름이 존중받으며, 상처가 더 이상 생의 정의가 되지 않는 삶—에 응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축일은 ‘끝’이 아니라 질문의 문턱이다.


“나는 무엇에 무릎을 꿇고 살아가는가.
그리고 무엇 앞에서만 무릎을 꿇을 수 있는가.”


대림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서두르지 않는 시간이고, 기다림이라는 형식의 순례다. 기다린다는 행위는 무기력한 정지가 아니라, 다가올 생명을 향해 자신을 조용히 정리하는 결심에 가깝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우리를 그 선택의 자리 위에 세워놓는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방식으로.


마음이 아직 고요에 닿지 못했지만, 그 고요를 기다리는 일이 이미 시작된 희망일 때가 있다. 그 기다림 안에서, 비로소 다음의 시간이 열린다.



3. 동물원에 가고 싶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먼 이야기로 밀려난 지 오래다. 한때는 길을 떠나는 일이 삶의 자연스러운 리듬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은 상상 속의 풍경이나 기도처럼만 남았다. 몸이 조금 더 회복된다면, 언젠가 다시 아내와 길 위에 서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가까이에서 아끼고 기도해 주는 분들도 가벼운 산책 정도라도 해 보라며 격려를 건넨다. 틀린 말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몸의 기력이 조금 남아 있을 때 나서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그 후회는 억울함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조용한 인정에 가깝다.


꽤 오래 전, 서울의 스물다섯 개 구를 모두 걸었다. 목적지는 재래시장, 오래된 골목, 오래된 간판 아래 흐릿하게 남은 시간의 냄새였다. 지하철 모든 노선을 타고 오르내리며, 거대한 도시가 품고 있는 숨결을 느꼈다. 그때 눈에 담았던 거리들을 언젠가 아내와 다시 걸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문득, 밴드 ‘동물원’의 음악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 했지.”


인생이라는 길 위에 남는 것은 실적이나 결과가 아니라, 지나온 자리마다 남겨진 흔적이라고 말하더라. 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 찾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멈추었지만, 정작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동물원’의 음악이 흐르던 시절은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불린다. 냉전과 독재의 질식 같은 무게를 간신히 헤쳐 나왔지만, 새 시대의 희망은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다. 먹고 살 만해진 시대라며 근심을 사치로 취급하는 이들이 있었고, 오히려 그 말이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헐거워졌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청춘들의 고독은 더 선명했다. 그때 동물원의 노래는 마치 작은 쉼터처럼 다가왔다. 그 음악에는 과장이 없었고, 분노도 지나친 영웅적 외침도 없었다. 오히려 ‘살아 있음’ 그 자체의 불안, 미완, 방향 없음을 있는 그대로 품어준 울림이 있었다.


지금 세대론이 어쩌니, MZ가 어떠니 하는 분석들은 종종 허망한 서사의 반복처럼 보인다. 젊음은 시대마다 다른 언어를 쓰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불안정과 충돌로 이루어진 사춘기적 존재 상태,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어른의 얼굴로 나아가려는 내밀한 의지가 있다는 점에서. 결국 젊음은 특별한 비극이 아니라, 누구나 지나온 생의 질량이었다.


어릴 적 나는 동물원을 참 좋아했다. 지금은 동물권과 생명 윤리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며 동물원 폐지 논의가 힘을 얻고 있고, 그 방향에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물원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어린 시절의 냄새를 품고 있다. 어머니와 형이 장기간 집을 비운 시기, 해외 근무 중이던 아버지가 휴가를 나와 나를 데리고 창경원에 갔던 날이 있다. 나이 겨우 다섯 살. 철망 너머의 동물들, 따뜻한 손길, 그리고 아버지가 발라 주던 통닭의 냄새. 그 장면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서 지워지지 않는 초상처럼 남아 있다.


Zoologischer Garten Ivon August Macke. 구스타프 미술관


직장 생활에 지쳐 있던 어느 늦가을, 양복과 구두 차림으로 서울대공원을 찾았다. 저물어가는 햇살 아래, 우리 안의 동물들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말을 잃었다. 그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테지만, 나는 무엇인가를 털어놓고 싶어 걸음을 멈췄다. 울분과 무력함,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던 순간. 우리 안에서 반복되는 원숭이의 동작, 하품하는 사자, 고무풍선에만 열중한 아이들,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나의 얼굴. 그 모든 것이 기묘하게 연결된 듯 느껴졌다.


그날 나는 길어진 그림자를 따라 걸으며 희미하게 떠오르던 하나의 이미지에 마음을 머물렀다. 아마도 아주 커다란 파란 풍선 하나가, 겨울 하늘 위를 홀로 떠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목적지 없이, 그러나 분명 떠나고 있는 존재처럼.


그건 어쩌면 지금의 나이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어디쯤 와 있고,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 그리고 아직도 찾지 못한 ‘그 무언가’는 정말 존재하는가.


그러나 멈춘 자리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기다림도 여전히 삶의 한 형식된다. 떠나지 못하는 시간도 여전히 여행이라면, 나는 지금도 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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