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을 너와 나에게
대학을 마치고 막 사회로 들어선 무렵, 낭만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손닿지 않는 먼 것처럼 멀어졌다. 하루의 대부분이 전쟁처럼 흘러가고, 저녁이면 몸과 마음이 동시에 폐허처럼 가라앉았다. 학생 때 늘 곁에 두던 책들도, 틀어놓기만 해도 위안이 되던 음악도 서서히 멀어졌다. 일상의 파도에 휩쓸려 스스로를 놓치고 있음을 문득 자각했을 때, 이대로 살아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 질문이 삶의 균열이자 통로가 되어 새로운 숨을 들여오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회사의 사내 밴드 오디션을 보며 오래된 활력의 한 조각을 되찾았다.
회사 별칭이 ‘Big Blue’였기에 음악적 색을 덧입힌 밴드명은 자연스레 ‘Blue Note'가 되었다. 문제는 모여든 이들의 취향과 실력이 제각각이라 첫 곡을 고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결국엔 오래된 밴드들의 익숙한 넘버들을 카피하며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유난히 구원처럼 다가오는 곡들을 만났다. 그 곡들의 주인이 바로 ‘동물원’이었다. 연주 난도나 편곡의 간명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정체성이 ‘직장인 밴드’라는 사실이 우리의 상황과 절묘하게 겹쳐졌다. 마치 먼 곳에서 먼저 걸어간 이들이 남겨둔 작은 불빛 하나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전 글에서 김광석과 산울림의 김창완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원’의 노래들이 다시 떠올랐다. 지금은 세상에 부재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층위에 살아 있는 김광석을 있게 해준 팀이자, 실험과 실행의 기질을 지닌 김창완의 흔적이 미묘한 결을 이루며 남아 있는 그룹이기도 하다. 그런 ‘동물원’을 한 문장으로 가늠해 본다면 ‘잘 살아가는 직장인 밴드’라는 표현이 가장 가깝다. 학창 시절 결성된 팀이지만, 각자 다른 일을 치열하게 이어가면서도 공식적인 해체 없이 지금까지 음악적 생을 지속하는 이 오래된 밴드의 존재는 하나의 조용한 미학처럼 다가온다. 일상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노력,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노래를 붙잡으려는 의지가 담긴 오래된 울림의 형식.
그 시절 사내밴드의 합주실에서 만난 <널 사랑하겠어>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같은 곡들은 단순히 카피곡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틈을 되찾는 기술이었고, 삶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숨 같은 것이었다. 직장이라는 차가운 구조 속에서도 여전히 파란 기척을 잃지 않으려는, 그런 은밀한 연대가 우리를 조금씩 다른 자리로 이끌었다.
음악은 그렇게, 가장 바쁜 시절 가장 큰 그늘을 드리웠던 시간의 틈을 열어 젖히며 다시 들어오는 살아 있는 온도였다. ‘Blue Note'라는 이름 아래 모였던 우리에게 ‘동물원’의 노래들은 일상의 균열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감각이었고, 살아간다는 일의 무게를 잠시 놓아도 괜찮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 덕분에 우리는 조금씩 다시 숨을 배우고 있었다.
우연이 빚어낸 담백한 울림, ‘동물원’의 첫 숨
1988년, '동물원'은 ‘산울림’의 리더이자 ‘큰 형님’으로 불리던 김창완에 의해 발굴된 대학생 밴드로 출발했다. 학교도 전공도 달랐으나, 음악이라는 하나의 매개에 이끌려 카페 ‘무진기행’을 아지트 삼아 모여들던 청년들이었다. 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이야기하고, 직접 연주하며 시간을 소모하던 그들은 우연히 김창완의 눈과 귀에 닿게 된다. 김창기, 박기영, 박경찬, 유준열, 최형규, 김광석, 이성우로 구성된 1집 멤버들은 고등학교 친구와 대학 친구, 그리고 친구의 친구가 느슨하게 연결된, 그야말로 순수한 아마추어 공동체였다. 김광석과 기타리스트 이성우를 제외하면 전업 음악가의 꿈을 가진 이는 없었고, ‘기념 삼아 한 번 만들어보자’는 가벼운 제안이 김창완의 주도로 앨범 제작으로 이어졌다.
팀명 ‘동물원’ 역시 깊은 철학이나 콘셉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스폰서이자 프로듀서였던 김창완은 이름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이들에게 ‘이대생을 위한 발라드’로 그냥 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농담인지 협박인지 모를 그 말에 황급히 고른 이름이 ‘동물원’이었다. 김창완은 “이화여대생들에게만 팔아도 1,000장은 팔 수 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희화화했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대중적 성공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었다는 고백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졸속처럼 보이던 그 이름은 오히려 묘하게 팀의 정체성과 맞아떨어졌다.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 속으로 본격 진입하기 전, 한때의 놀이와 숨결을 고스란히 품은 이름처럼 느껴졌다.
'동물원'의 성격은 철저히 아마추어적이었다. 김광석과 이성우를 제외하면 음악을 생업으로 삼을 생각이 거의 없었고, 실제로도 밴드 활동과는 별개로 각자의 전공을 살린 직업을 유지했다. 그런 까닭에 전업 음악인의 길을 택한 김광석과 이성우는 1집과 2집을 끝으로 팀을 떠나게 된다. 남겨진 구성원들은 여전히 ‘아마추어’라는 명찰을 달고 무대에 섰지만, 그것이 ‘동물원’의 색을 흐리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가진 고유한 질감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1집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먼저 ‘담백함’을 감지하게 된다. 기승전결의 구조나 화려한 편곡 없이, 노래는 있는 만큼만 만들어져 있었다. 김광석의 보컬은 빛났지만, 나머지 멤버들의 보컬이 뛰어난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절제된 상태에서 나온 음악은 불필요한 힘을 빼고, 소박한 정조로 귀에 안착했다.
여담처럼 들리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1집은 영어회화 테이프를 녹음하던 스튜디오에서 연습 삼아 녹음한 결과물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리버브’나 ‘에코’를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보정을 통해 음정을 넉넉하게 감싸주는 효과음들이 빠져버린 자리가 오히려 이들의 음악을 더 또렷하고 투명하게 드러냈다. 하필이면 그런 한계가 이들의 음악적 결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은, 위대함이 때로는 우연의 손길로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우연은 신이 인간의 세계에 남겨둔 가장 정교한 묘수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더욱 놀라운 점은, 음악적 잠재력이 풍부한 이들이 ‘아마추어’라는 이름 아래 모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은 곡들이 그들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김창기와 유준열은 송라이터로서의 안정된 감각을 이미 갖추고 있었고, 기타리스트 이성우는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 《시간이 흐르고 나면…》을 발표하며 음악사에 단단한 흔적을 남긴 인물이다. 여기에 설명이 필요 없는 보컬리스트 김광석까지 더해졌으니, 기술적 환경과 녹음의 질이 열악했음에도 1집이 ‘잠재력’ 하나로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이유가 분명해진다.
어디에도 힘주지 않은 초창기의 노래들은 지금도 들을 때마다 기묘한 따뜻함을 남긴다. 막 사회로 나가기 전 마지막 골목에서 나누던 숨 같은 음악, 어설프지만 진심이었던 어떤 목소리들, 그 모든 것이 '동물원'의 첫 숨을 이루고 있었다. 담백함은 결핍이 아니라 결로서 존재했고, 그 결이 세월 속에서 여전히 잔잔한 파문을 만들고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에 더 또렷했던 울림
'동물원'의 음악이 들려오던 시절을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 부르곤 한다. 1980년대의 냉전과 독재의 장막은 서서히 거두어졌지만, 그 너머에 도착할 미래는 아직 손안에 잡히지 않았다. 희망과 결실은 미루어졌고, 경쟁은 여전했으며, “먹고살 만하니 불만”이라는 말들이 청춘들의 가슴을 찔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견고한 것처럼 보였으나 이내 헐거워졌고, 어딘가에 던져진 듯한 고독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그때 소속감의 언저리에조차 닿지 못하던 젊은 영혼들에게 잠시 쉬어갈 자리를 내어준 밴드가 바로 '동물원'이었다.
요즘 세대론이 반복해서 등장하지만, 사실 청춘의 불안은 시대와 무관한 어떤 열병과도 같다. 늘 임계로 향해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모래 사태처럼 흔들리고 요동치는 시간들이다. 그 흔들림 속에서 들리던 목소리들이 있었다.
'동물원'의 1집이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두었을 때, 정작 멤버들조차 놀랐다고 회상한다. 물론 김창기가 ‘작정하고 유명해지려고 만들었다’고 말한 <거리에서>는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은 곡이었다. 그러나 동물원의 정체성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곡을 고르라면 <잊히는 것>,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변해가네> 같은 노래들이 떠오른다. 당시 기준으로 어느 장르에도 깔끔히 편입되지 않는 노래들이었다. 포크의 전형적 비유도, 발라드의 서사적 고조도 따르지 않았고, 일상에서 건져 올린 비범한 순간들을 담담하고 덤덤한 보컬로 흘려보내는 방식이었다. 익숙한 장르의 울타리로 들어앉기보다 스스로 울타리를 세워 그 안에서 자연스레 살기 시작한 셈이었다. 그들의 ‘동물원’이 ‘갇힌 것’이 아니라 ‘속한 것’으로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집 이후 최형규가 팀을 떠나고, 한동안 5인조로의 체제가 이어졌다. 그러다 6집부터는 편곡을 돕던 배영길이 정식 멤버로 합류해 <널 사랑하겠어>라는 히트곡을 내놓는다. 가장 많은 곡을 만들었던 김창기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의 일과 병행하며 음악 활동을 지속했으나 탈진 증세로 인해 7집 이후 팀을 떠난다. 박경찬 역시 비슷한 이유로 동물원에서 물러났고, 현재의 밴드는 박기영, 유준열, 배영길 세 사람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동물원 3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유준열은 이렇게 말했다.
“한 직장을 30년 다닌 기분이에요, 그건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5년이 지나면 새로 생긴 직장 중 절반이 사라지는데 그걸 6번이나 버텨낸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희는 정말 복 받은 거죠.”
— 2017년 ‘동물원 30주년 기념 콘서트’, 유준열 인터뷰 중
이 고백은 밴드에 대한 은유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정체성이 여전히 ‘직장인 밴드’임을 확인시킨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유준열은 광학 회사의 대표가 되었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박기영은 가톨릭관동대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로 서 있으며, 건국대 사학과 출신의 배영길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한다. 세 사람 모두 음악 외에 각각의 ‘전업’을 갖고 있다. 밴드를 통해 생계를 꾸리겠다는 의지도 욕심도 없기에, 그들의 음악은 특정한 유행이나 시장의 문법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유준열의 말처럼, “먹고 살아야겠다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덕분”에 음악 활동은 여전히 즐거운 놀이로 남아 있다. 어쩌면 음악의 가장 원초적 기능은 ‘즐거움’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동물원''은 시대의 흐름을 비껴가면서도, 가장 정통적인 의미의 음악을 해온 셈이 된다.
어느 흐름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기에 오래도록 또렷하게 들려온 목소리들, 여전히 누군가의 고독한 저녁을 건너다주는 담백한 울림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파란 울타리 너머에서 부르는 노래
어린 시절의 나는 동물원을 유난히 좋아했다. 지금은 동물원의 존재 자체가 윤리적 질문에 휩싸여 있고,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는 유년의 기억을 밀봉한 채 남아 있는 하나의 풍경처럼 떠오른다. 모친과 형이 오래 집을 비운 어느 겹겹한 시절, 해외 근무 중 귀국한 부친과 단둘이 찾았던 창경원. 너덧 살쯤 되었을 나는 철창 너머의 생명들과 마주할 때마다 신기함과 두려움이 뒤섞였다. 무엇보다 부친의 손에서 뜯겨 나온 통닭의 향은 아직도 어둑한 기억 속에서 희미한 빛을 품고 있다. 그 냄새는 동물원의 공기와 섞여 한동안 어린 나를 따라다니던 미세한 온기였다.
시간이 흘러 직장의 거센 파도에 지쳐갈 무렵, 나는 어느 날 양복에 매무새만 다듬은 채 서울대공원으로 향한 적이 있었다. 초겨울의 찬 기운 속에서 해는 천천히 기울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오래 묵힌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를 찾듯 동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이 닿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들에게 잠시 말을 걸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풍선을 쫓아다니는 아이들, 하품으로 시간을 견디는 사자, 우리를 동그랗게 돌며 반복된 하루를 살아가는 원숭이들을 바라보며, 문득 내내 누군가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또 다른 ‘나’를 보았다. 그 일상의 쓸쓸한 결을 따라 공원 위로 파랗게 부푼 풍선 하나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동물원'의 음악은 기술적 완성도로만 평가한다면 어딘가 서툴러 보인다. 녹음은 투박했고, 연주는 삐걱거렸고, 보컬 또한 명징하게 빛나는 종류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40년 가까이 사람들 곁에서 다시 불리고, 다시 들리며, 다시 회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울타리 안에서 조용히 자신을 달래며 살아온 존재일지 모른다. 세렝게티의 광활함도, 보르네오 밀림의 숨결도, 백두대간의 깊이를 닮은 자유도 아닌, 누군가의 기준과 질서 속에 잠시 갇혀 있던 삶. 그 틈에 ‘서툼’이라는 이름의 노래들이 들어오고, 그것들이 우리 마음의 빈 칸을 채워 주었다.
좋은 노래의 기준을 묻는 질문이 다시 떠오를 때마다 나는 '동물원'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 노래들은 완성도의 근거로 사랑받기보다, 어설픔과 성실함 사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감싸 안았다. 마치 우리 모두의 일상에 걸어져 있던 울타리를 잠시 걷어내 주는 다독임처럼. 그래서일까. 세상 한편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울타리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기분이 생긴다.
잊혀지는 것
숨 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무감한 발걸음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빛바랜 사진만 남아
이제는 소식조차 알 수 없는 타인이 됐지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태엽이 끝까지 감긴 장난감처럼 움직인다. 기계적 걸음과 무표정한 하루에 익숙해지고, 그 틈에서 스스로를 위로할 여지도 잃어 간다. 시간이 흘러가며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장면들은 희미해지고, 결국 낡은 사진 몇 장만이 한때 서로의 안부를 건네던 시간의 증거가 된다. 그렇게 가까웠던 사람도 어느새 연락처 속 이름 하나로만 남고, 시간이 더 흐르면 아예 소식조차 알 수 없는 타인이 된다.
사랑한다고 말하던 순간들은 언제나 빛을 머금었지만, 그 빛은 오래지 않아 무거운 현실 앞에서 조금씩 흐려졌다. 바쁘다는 이유는 언제나 진심이면서도 변명처럼 들렸고, 그 틈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무심히 놓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 <잊혀지는 것>은 평범한 음정과 투박한 호흡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마음 깊은 곳에 닿는다. 화려한 기교 대신 일상의 사유가 조용히 스며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노래는 우리에게 묻는다. “잊힌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를 잊어버린 채 살아온 것인가.” 일상을 꾸려 가느라 서둘러 지나친 얼굴들, 한때 삶의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했던 이름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조차 잊혀 가는 감정의 잔향까지. 노래는 그 질문을 소리 내지 않고 던지며, 오래된 기억과 현재의 마음 사이에 숨은 틈을 천천히 밝혀 준다.
그래서 이 노래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잊히는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되비추는 조용한 거울에 가깝다. 바쁘다는 말에 불려나온 빈 자리들, 소리 없이 사라져 간 관계들, 그리고 무심히 흘린 감정의 파편들을 다시 한 번 손끝에 올려 보게 하는 노래. 일상의 소음에 묻혀 살던 ‘우리’가 잠시 멈춰 설 수 있게 만드는 성찰의 순간이 그 안에 숨겨져 있다.
변해가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했지
느낀 대로 말을 내뱉고, 생각한 길을 곧장 걸어가며,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만 향하던 시절이 있었다. 노래 <변해가네>는 바로 그 자의식의 단단함을 출발점 삼아,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흔들리고 기울어 가는 마음의 변모를 은근한 리듬 속에 담아 둔 노래다.
제목이 지닌 울림은 단순한 개인의 변덕을 넘어 사회적 감각까지 스친다. 어쩌면 ‘봄여름가을겨울’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라는 오래된 여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래가 품고 있는 정조는 그와 다르다. 유준열의 약간 쑥스러운 음색, 마치 숨을 조금 더 내쉬며 부르는 듯한 리듬의 열기가 노래를 감싸며 말한다. 변한다는 것은, 때로는 사랑이 스며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은은한 기적이라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자신만을 위해 쌓아 두었던 원칙이 조용히 흔들린다. 고집이 무너지고, 서둘러 쟁취하려 했던 욕망이 한 발 물러난다.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던 것들 속에서 ‘너를 위해서라면’이라는 문장이 조용히 태어난다. 변모라는 말은 종종 배신이나 거리두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 노래는 그 반대편을 보여 준다. 사랑으로 인해 변한다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넓어지는 일이고, 기울어짐이 아니라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 가는 움직임에 가깝다.
그래서 <변해가네>는 어쩌면 사랑의 순간마다 조금씩 새겨지는 ‘아름다운 조정’의 기록이다. 한 사람 때문에 달라지는 표정, 습관, 걸음의 속도까지. 예전의 나로는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마음이 흐를 때 비로소 안다. 변하는 일은 두려움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열리는 가장 인간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이 노래는 말없이 다독인다. 변해 가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변화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닿아 간다고, 그 조용한 변모가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고.
별빛 가득한 밤에
어릴 적 보고 팠던 그런 세상을
잃어버린 나의 세상을
이 밤 다시 볼 수 있다면
이 밤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이내 작은 노래를 부르리
내 소중한 꿈 하나 그리리
이내 작은 노래를 부르리
별빛 가득한 이 밤에
어린 날의 손끝에서 반짝이던 세계가 있었다. 만지면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 같아 조심스레 파헤치던 흙냄새, 어두워지기 직전 하늘 위로 첫 별이 뜰 때 느껴지던 막연한 설렘,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희망들이 무수히 건너다보이던 그 세계. 노래 <별빛 가득한 밤에>는 그 사라진 풍경을 다시 불러내는 작은 주문처럼 흘러온다.
동물원의 수많은 곡들 가운데 이 노래가 유독 마음을 오래 붙드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발라드의 정석에 가까운 선율과 묵직하게 울리는 보컬이, 잊었다고 생각한 감정의 잔향을 천천히 일깨우기 때문이다.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흐름을 치밀하게 견인하는 리듬은, 듣는 이를 어느새 ‘그때의 밤’으로 데려간다. 그래서 별이 보이는 저녁이면 자연스레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와 함께 떠오르는 노래가 된다. 두 곡은 서로 다른 감성을 지녔지만, 잃어버린 것을 응시하는 시선의 깊이가 묘하게 닮아 있다.
어린 시절엔 누구나 한 번쯤 자신만의 동화를 마음속에 숨겨 둔다. 훗날 펼쳐보면 어설프고 천진한 이야기일지라도, 그때의 꿈은 우리의 첫 세계를 지탱해 준 토대였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그 세계를 잊는다. 어른이 된다는 명분 아래 꿈을 접어 두고, 현실이라는 이름의 의무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그러다 문득, 별빛이 쏟아지는 밤을 마주하면 묻는다. 나는 언제부터 꿈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직도 그 꿈은 돌아올 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별빛 가득한 밤에>는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이 밤 다시 볼 수 있다면, 이 밤 다시 찾을 수 있다면 — 그 가능성을 향해 작은 노래를 부르겠다고. 잊힌 꿈을 꾸어 보겠다고.
그리고 그 약속은 노래를 듣는 이의 마음에도 은근한 파문을 일으킨다. 별빛 아래에서라면, 어쩌면 정말로 그 세계가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믿음. 다시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던 어린 날의 숨결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며 돌아오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오래 잊고 지냈을 뿐. 그래서 이 노래는 말 없는 위로처럼 남는다. 별빛이 가득한 밤이면, 꿈도 다시 숨을 고르며 돌아올 수 있다고.
혜화동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혜화동>은 김창기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조용히 복기하듯 적어 내려간 노래다. 마치 오래 묵힌 일기장을 다시 펼치는 순간처럼, 노랫말은 어느 골목의 빛과 바람, 오래전 친구의 목소리를 아주 자연스레 불러낸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라는 첫 구절만으로도,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던 어떤 작은 문이 스르르 열리는 느낌이 든다. 오래 연락하지 않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소식, 그리고 내일이면 멀리 떠난다는 한 마디는 시간이 얼마나 무심히 흘렀는지를 깊이 실감하게 한다.
어린 날의 풍경은 대개 공간의 기억으로 남는다. 누구에게나 있다. 해가 지면 금세 어둑해지던 골목, 저녁밥 냄새가 집집마다 스며 나오던 시간, 공처럼 가볍고 빨랐던 발걸음. <혜화동>은 그 시간을 특정한 사건이나 화려한 감정 없이, ‘그 골목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단순한 움직임으로 되살린다. 그래서 더 사실적이고 더 절제된 울림을 가진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전철의 흔들림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살아온 감정의 결까지 함께 흔들어 깨우는 듯하다.
어릴 적에는 넓디넓다고 믿었던 골목이 어른이 되어 돌아가면 놀랄 만큼 좁아 보인다. 그러나 그 좁은 공간이 불러오는 기억은 오히려 넓다. 계절의 냄새, 돌계단의 차가운 감촉, 한 번 부르면 금세 달려오던 친구의 숨결까지. 노래 속에서 “다정한 옛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라는 장면은 단순한 재회 이상의 감정을 품는다. 그 달려오는 움직임 안에는 멀어진 시간들이 한순간에 이어지는 기이한 경험이 담겨 있다.
추억은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곳에서 스스로 복원되는 풍경이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기억을 찾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기억이 먼저 우리를 찾아온다. 오래전 혜화동의 골목 역시 그렇게 김창기에게 되돌아온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노래를 듣는 우리에게도 각자의 ‘혜화동’이 있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영영 사라지지 않는 어떤 장소, 어떤 이름, 어떤 시간.
<혜화동>은 결국 ‘작별’의 노래라기보다 ‘돌아봄’의 노래에 가깝다. 멀리 떠나가는 친구를 배웅하면서, 그는 어쩌면 자신의 어린 날을 함께 배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골목을 걸어 들어오는 순간, 잊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다시 살아난다. 공간이 시간을 초월해준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어떤 골목은 사람을 그 자리로 되돌려놓는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가 가끔씩 돌아봐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그 과거가 만들어 준 우리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살아가는 얘기 변한 이야기
지루했던 날씨 이야기
밀려오는 추억으로 우린 쉽게 지쳐갔지
그렇듯 더디던 시간이
우리를 스쳐 지난 지금
너는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
나의 생활을 물었을 땐
나는 허탈한 어깻짓으로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했지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
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했지
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그날의 노래는
우리 귀에 아직 아련한데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를 떠올리면, 언제나 사람들 사이를 미세하게 흔들리며 지나가는 어떤 공기의 감촉이 먼저 다가온다. 지하철역이라는 장소는 늘 바쁘고, 늘 어딘가로 향하며, 멈추지 않는 발걸음의 소음으로 가득하지만, 이 노래는 그 소란 속에서 오히려 오래된 침묵을 불러낸다. “살아가는 얘기, 변한 이야기, 지루했던 날씨 이야기”라는 무심한 문장들 속에는 어쩌면 서로에게 건네지 못한 마음들이 은근하게 스며 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알고 있다. 예기치 못한 마주침 앞에서 설렘이 조용히 흔들리고, 동시에 두려움이 아주 얇은 막처럼 깔리는 순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얼굴에 세월의 자취가 고요히 드러날 때, 누구든 말보다 먼저 침묵이 흐른다. 노랫말 속 그녀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 미소는 단단하게 굳힌 삶의 무게와 동시에 그 무게를 감내해온 시간이 비치는 미소다. 반면 화자는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는 다소 허탈한 고백을 내민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온 세월이 같은 플랫폼에 잠시 멈춰선다.
그러나 이 짧은 재회가 가진 힘은 그저 안부를 나누는 데 있지 않다.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 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 했지”라는 대목은, 청춘이 남겨둔 약속의 잔광이 여전히 마음 깊은 곳을 떠돌고 있음을 일깨운다. 현실은 지하철역처럼 늘 바쁘고,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경로로 굽이치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빛나는 무언가를 증명할 수 있으리라 말하던 시절의 호기로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더 깊이 숨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단순한 추억 회상이 아니라, 삶의 소음과 소란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더듬어 찾는 시간에 가깝다. 스쳐 지나가는 인파 속에서 문득 만난 얼굴 하나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했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여전히 붙들고 있는지 되묻게 한다. 지하의 플랫폼에서 들려오는 “아련한 노래”는 결국 과거에게서 온 메시지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조용히 깨우는 울림일지 모른다.
이 노래를 마지막 추천곡으로 고른 이유는 그래서 명확하다. 화려한 멜로디도 아니고, 노골적인 감정의 폭발도 없다. 그저 오래전의 약속과 지금의 현실이 만나는 그 미세한 틈을, 동물원은 누구보다 섬세하게 포착했다. 그리고 그 틈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며 자꾸 잊어버리는 ‘빛나는 열매’의 정확한 자리이기도 하다.
https://youtu.be/hiSkmo4xbvw?si=Q_YM0ri-hiHwM7Sc
※ 참고:
• 동물원 인터 뷰 - IZM 2004년 4월
• 대중음악 100대 명반; 21위 동물원 ‘동물원’ - 경향신문
• 서른 된 동물원 "한 직장 30년 다닌 기분 직장 안 망해 다행" - 더 중앙
• 그리고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