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바나나 두 개와 아몬드브리즈 1팩. 저녁은 엄마가 직접 갈아서 만들어준 콩물을 한 그릇 담아 먹었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무지출의 날이네요. (교통비는 기후동행카드로 퉁쳐봅니다.)
아, 그제도 성공했고, 어제도 딱 성공했고, 오늘도 이렇게 성공입니다.
몸도 가볍고 결제내역도 가벼워지는 날들입니다.
뿌듯함이 한쪽에 자라나는 가운데,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기름기 없고 짠맛 하나 없는 싱거운 숭늉을 들이켜는 느낌.
삶이란 원래 이런 걸까요? 그 정도가 담백함을 넘어섰습니다.
건조함. 밍밍함. 심심함. 허전함. 온갖 노잼 단어들이 연달아 떠오르는 저녁시간을 보냅니다.
색깔이 사라진 세상, 맛과 향이 사라진 식탁 같은 매일이 반복됩니다. 푹 젖은 걸레처럼 무거워진 몸뚱이로 집 한구석에 쓰러지는 매일. 그 자리에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움직이지 못합니다. 큰일입니다.
어서 와, 우리 오랜만이지?
그놈입니다. 돌아온 우울이 인사를 건넵니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 이 행보에 스스로 뛰어들었고, 영원히 지속할 것도 아닌데. 그걸 잘 아는데도 사람은 참 나약합니다.
새삼스럽게 소비와 탐욕이 주는 삶의 풍요를 실감해 봅니다.
지나가다가 눈에 띈 귀여운 머리 집게를 보고 가볍게 오천 원 지출. 인스타그램 광고 속 시원해 보이는 원피스가 예뻐 보여서 3만 원 지출. 오늘 주간회의에서 까였으니 가여운 나를 위해 탕수육세트 2만 5천 원 지출. 날이 너무 더우니까 데이트 겸 역전 할맥에서 살얼음 맥주 몇 잔에 짜파구리 가볍게 3만 원 지출.
따지고 보면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딱히 무겁지도 않었던 소비가 쌓여 잔고를 갉아먹고 살크업을 종용하는 사이. 그렇네요, 저는 행복했다고 말했더랍니다.
절약으로 시드머니를 모아 투자를 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습니다.
소비를 줄이고 절약하는 삶, 참 외롭고 힘들다고 말이죠.
처음엔 무슨 말인고 했어요.
나는 그렇게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물욕도 없고, 큰 지출을 즐기지도 않는데. 나 같은 사람이라면 이 길이 딱히 어렵지도 않겠다, 그렇게 가벼이 생각했단 말이지요.
그렇지만 이제 알겠어요. 진짜 어려운 것은 300만 원짜리 명품백 오픈런이나, 환상의 휴양지 나트랑행 항공권을 참는 것이 아니라, 만원 이만 원 소소한 결제와 배달음식의 즐거움을 끊는 것이라는 사실을.
맹물 같은 일상의 반복. 삶의 밍밍함이란 어찌나 외롭고 쓸쓸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진 않을 예정입니다.
현실이란 사람을 독하게 만듭니다.
잔금일이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마침내 그날이요. 등기까지 치고 나면 드디어 첫 번째 꿈을 이루게 됩니다.
맛없는 생수맛 일상의 끝에 내 명의의 집을 두고 맛있는 쏘맥을 말겠습니다.
그날이 되면 이 글에 다시 돌아와 맹물 타령하던 나에게 고생했다 말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