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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n 11. 2018

아무것도 안 해서 좋더라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39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의도치 않게 나이를 공개해 버렸다. 태어나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다는 것에 디테일을 더하기 위해 나이 공개를 서슴지 않았다. 지난 5월 27일 제주도로 혼자 떠났다. 왠지 굉장히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해외여행도 아니고 제주도다. 일정을 들으면 더 깜짝 놀랄 것이다. 고작 1박 2일이다. 일요일에 떠나서 월요일에 다시 돌아오는 일정. 결국 잠만 자고 돌아오는 곳을 비행기 타고 떠났다. 하지만 아무 목적 없이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북바이북에서 진행하는 저자 강연회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듣고 싶은 강연회의 주인공은 김애란 작가. 26, 27일 이틀 동안 다른 작가들의 강연 일정도 있었지만 티켓을 구하지 못해 27일에 떠나야 했고 김애란 작가님의 강연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강연에 대한 이야기로도 글을 쓰고 싶지만 이번은 혼자 여행이 주제다. 


캐리어는 뭔가 거창해 보여서 숄더백 하나에 짐을 몰아넣기로 했다. 숄더백도 중간 크기라 짐을 줄이는 게 적잖이 곤욕스러웠지만 어찌 되었건 가방 하나에 1박 2일 동안 필요한 물건을 모두 담았다. 세면도구는 모두 숙소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챙기지 않았고 스킨로션도 화장품 사고받아 모아 둔 1회용 샘플로 담았다. 잘 때 입을 원피스 티셔츠 하나와 속옷 그리고 양말을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에는 책을 3권 챙겼다. 정말 가방이 터질 것 같았다. 한 권은 내가 읽고 있는 소설, 한 권은 김애란 작가님께 드릴 내 책 <문장 수집 생활>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은 김애란 작가님께 사인을 받기 위한 단편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버스 터미널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시간이 빠듯하여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버스 출발 직전에 도착했고 공간이 넉넉한 리무진 버스 1인 창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분이 상승되는 걸 느꼈다. 아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붕붕 뜨는 것 같지?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입고리는 누가 위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버스가 출발했다. 시원스럽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책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부족한 잠을 좀 잘까 하고 눈을 감았지만 눈을 감고 입은 웃고 있는 걸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눈을 뜨고 있기로 했다. 가방에서 이어폰을 찾아 휴대폰에 꽂고 팟캐스트를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부터 나는 생각을 굳혔다. 아, 주기적으로 가져야겠구나. 반드시 챙겨야겠구나.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겪을수록 진지해지고 절실해졌다. 사실 이런 시간이 나와 남편에게 너무 필요했다. 우리는 늘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함께 있었다. 함께 있을 땐 늘 아이가 있으니 아이를 돌봐야 했다. 계속 아이를 챙긴다는 건 아이가 있어서 좋고 행복함을 떠나 지치는 일이었다. 이런 흥분 거리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공항에 도착한 나는 시간이 남아 카페에서 라테와 토스트 하나를 시켜놓고 사진 하나를 찍어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속속들이 나의 이 짧은 여행을 응원하는 댓글이 달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금의 떠남이 중독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혼자 여행을 떠나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부러 알려주지 않아도 나는 몸소 느끼고 있었다. 정말 중독되고 있음을. 집에 돌아가면 남편과 마주 앉아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룻밤을 지샐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도심의 호텔이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깔끔한 모텔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 제주도는 여러 번 갔다. 못해도 6번 이상은 간듯하다. 다만 늘 가족이나 친척과 함께였다. 그렇다 보니 이 여행의 목적지가 제주도여서 좋은 게 아니었다. 나는 내 옆에 아무도 없음이 행복했다. 더불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됨이 설렜다. 해외가 아니라 긴장하지 않아도 됐고 가깝다고 할 수 없으니 벗어난 기분이 들어 좋았다. 


겪어본 후 알게 되었다. 생각만으로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구체적으로 그게 어떤 느낌인지 몸소 느껴보니 얼마나 필요했던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 기분을 전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날마다 혼자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다고 떠들고 있지만 결국 우린 부부고 난 결코 혼자 한 게 아니었으며 한 아이의 아빠인 그도 이런 자유가 필요하단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 동안 읽었던 책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이다


숙소에 도착해선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온 후 허기를 좀 느껴 뭔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침대에 대자로 벌렁 누워버렸다. 도착했으니 짐 적당히 풀고 몇 시까지 로비에서 만나자는 사람도 없었고 밥은 어느 맛집으로 가야 하나, 의견을 내고 가기 싫은데도 따라나서야 하는 부담감도 없었다.  


난 그냥 내키는 대로 하면 됐다.  


밥 대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숙소 안에 있는 카페로 갔다. 작가의 강연이 시작되려면 30분 정도 여유 있었다. 주문한 카페라테가 나왔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여행 가서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의외로 책을 읽을 여유가 없을뿐더러 일행은 책 읽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왜 여기까지 와서 책을 읽느냐. 그럴 거면 집에서 책 읽지 왜 왔느냐. 이런 말 때문에 일부러 책을 꺼내지 않을 때도 많았다. 독서는 아이까지 씻겨 재운 후 침대맡에서 20분 정도 피곤에 지쳐 잠들기 전 읽는 게 전부였다. 


잠시 후 한 시간 반 남짓한 강연을 듣고 저녁으로 우육탕면 한 그릇을 사 먹었다. 방에 들어와 또 침대에 벌러덩 누워 곧장 책을 펼쳤다. 인스타그램도 하고 페이스북도 마음껏 하고. 제대로 쉬어야겠단 생각에 씻고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한 편 보고 또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책 읽다 스르르 잠든 게 얼마만인지. 아이를 재우지 않고 내 의지대로 잠을 잔 게 얼마 만인지. 자고 싶을 때 잔 게 얼마만인지. 감격스러워 자다가 울뻔했다. 아침은 또 어떻고. 비행기 시간이 있어 늑장을 부리진 못했지만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밥 달라며 7시부터 깨우지 않는다는 게 낯설기까지 했다. 잠이 깨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떼를 써서 억지로 일어나는 기상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정신을 깨운 뒤 천천히 일으키는 몸은 개운하기만 했다.  


짧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짧게 느껴진 혼자 여행 1탄.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부담스러우니 앞으론 ‘내키는 대로 쉬기’이라고 써야겠다. 아니 좀 더 그럴듯한 이름을 찾아봐야지. 허기사 이름이 무슨 의미겠는가. 나는 다음번 ‘내키는 대로 쉬기 2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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