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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Mar 14. 2018

[책방창업 3] 우린 어디로 가야 할까, 재개발

갈 곳을 잃은 작은 가게 I

나는 도시를 사랑한다. 시골보다 도시가 좋다 이런 말이 아니라,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공간과 그곳의 생태를 사랑한다는 거다. 사람들이 어떤 길로 어떻게 걷고, 거기에 어떤 건물이 있고 어떤 상권이 생기며, 먹고 자고 쉬는 공간은 어떤 풍경을 가졌는지, 그 모든 생활의 축이 되는 거리 위의 요소들은 어떻게 구성되고 관리 받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재밌어하고 궁금해해서 자주 관찰하고 생각한다.

 

국어국문학을 공부한 나는 김애란 소설에 등장하는 반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아파트 공간을 중심으로 한 ‘기형적인 주거 공간’과 ‘재개발 문제’를 다루는 졸업논문을 썼었다. 핵심어를 나열하니 꽤 거창해 보이지만, 지금 와 읽어보면 논문이라기에는 한참 부족한 글이었다. 어쨌거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도시와 그곳의 건물들, 거기에 사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길 즐긴다.


그런 시선 때문이었을까. 책방 자리를 찾기 위해 상가를 뒤지고 다니는 사이나는 꽤나 상처를 받았고 좌절했으며 화가 났다그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광안동 골목. 나의 눈길은 낡았지만 오랜 이야기가 담긴 것들에 자꾸 머문다.


머릿속으로 그려본 책방은 낡고 허름해도 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작은 건물이었다. 번화가는 아니지만 조용한 골목 풍경이 있는, 이삼 층 내외의 작고 나지막한 건물로, 1층에 가게를 내면 좋겠지만 나이 많은 나무들이 가로수로 있다면 2층이나 3층도 나쁘지 않겠다, 하고 책방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워낙 오래된 풍경을 좋아하기에 거기 나의 공간이 생긴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았다.


그러나 공인중개사사무소를 통해 소개 받는 건 아무런 이야기도 멋도 갖지 못한 신식 건물들뿐. 도대체 저 오래되고 소담한 건물들은 왜 내놓은 자리가 하나도 없는 걸까 궁금해서 중개사 분에게 여쭸다.


“(허름한 2층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 저런 건물들은 매물이 하나도 없나요?”

“없어요, 저런 데는 다 재개발 예정이라 1년 안쪽으로 싹 다 허물어버릴걸요?” 


골목골목을 따라 자리 잡은 작고 낡은 건물들은 재개발 예정 지구로 묶여 매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허탈했다. 저기에 이 도시의 시간이 다 담겨 있는데, 저 질서 없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수많은 이야기가 묻어 있는데! 이 구역의 건물과 골목을 전부 헐어버리고, 오로지 돈, 돈, 돈 때문에 용적률 높은 빌딩과 아파트를 올리겠다고? 높은 임대료로 빌딩 소유주의 배를 채우고, 돈 가진 사람만 다시 돈을 버는 아파트 게임을 여기에서 또 시작한다고? 그럼 나 같은 젊은 창업가가 둥지를 틀 수 있는 자리는? 사박사박 조용히 걷고 수런거리며 골목의 이야기를 찾는 손님과 그들이 원하는 작은 가게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포털사이트 지도를 이용해 재개발 예정 구역을 확인할 수 있다. (회색 점선 안쪽이 재개발 예정)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뜻밖에 지점에서 나는 상처 받았고, 좌절했고, 화가 났다. “요즘 애들은 도전정신이 없어.”라는 말로 비아냥거리던 어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리는 정말 도전정신이 없어서 야망이 없어서 열정이 없어서 대기업 취직을 노래하고 철밥통 갖기를 꿈꾸며 살고 있는 걸까요? 당신들이 부동산 놀이로 선점해놓은 부(富)는, 오로지 당신들의 도전정신과 야망 그리고 열정의 결과물이었나요? 우리 세대를 함부로 평가하는 어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날 저녁, 책방을 열고 싶었던 자리들을 지도상에서 다시 한 번 훑어보며 재개발 예정 여부를 꼼꼼히 살펴봤다(이건 상가 계약 전에 반드시 살펴봐야 할 사항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내 나를 설레게 했던 거리와 골목, 건물 하나 이 세상에 남지 못하고 곧 허물어질 것임을 확인하고야 말았다.


낡고 허름하지만 멋스러운, 

상대적으로 낮은 세를 주고 작은 가게를 시작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몽땅 부셔 없앤다고,

거기에 고층빌딩을 짓고 아파트를 짓는다고, 

나는, 나처럼 가난한 젊은 창업가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거냐고,

남편에게 얘기하다가, 분을 못 이기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분을 삭이며 다시 가게 자리를 찾아 헤매며 알게 된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비단 재개발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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