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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칸다 포에버 Sep 09. 2024

작은 숲 속 같은 열차 안

노동요 - 철도 인생

한여름의 열차는 정말이지 작은 숲 속을 거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수풀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어느샌가 들어온 출신을 알 수 없는 벌레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전철차장의 업무 특성상 역에 도착하면 창을 열어 승객의 승하차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 틈을 타서 벌레가 들어오는 건지, 사람의 시선으로는 찾아볼 수 없는 작은 구멍을 통해서 들어오는 건지. 아무튼 이들의 무임승차를 막을 방법은 없다.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벌레들 때문에 놀라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눈앞에 정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그나마 다행인데 사각(死角)에서 나타나면 속수무책이다. 눈을 찡그리거나 뛰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배꼽 잡으며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벌레들은 도망도 잘 안 간다. 이런 생활이 익숙하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천적을 만날 수 있는 자연환경보다 열차 안이 안전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인 걸까? 마치 자신과 놀아달라는 듯이, 너의 품으로 날아갈 테니 안아달라는 듯이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을 보면 이를 품어줄 만한 아량이 부족하고 개방적이지 못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러브버그’라 불리는, 정식 명칭으로 ‘우단털파리속’이라는 친구들은 정말 사랑이 고픈 녀석들이다. 짝과 붙어 다니는 것도 모자라 단독으로 혹은 서로 붙은 채로 나를 향해 오는데 이게 사람을 약 올리는 것 같아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나는 짝이 없는데 너희는 짝이 있다고 내게 자랑하는구나.


예전 같으면 잔혹한 장면을 많이 만들었을 나지만 이제는 생명 중시 사상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이게 되어 다시 자연으로 보내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 녀석들도 어딘지 모르는 곳에 갇혔을지도 모르는데 생의 마감을 내가 선택해도 되겠나?’ 이런 생각으로 살며시 창을 열고 부드러운 손짓으로 이들을 창밖으로 유도한다. 그 손놀림은 거짓말 보태서 고급 백화점 입구에서 차를 가지고 오는 손님들을 안전하게 유도하는 분들의 손과 같다. 그들을 날려 보내며 아차 싶을 때가 있는데 내가 강제 이주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다. 분명 이들을 최초로 만난 지점은 인천인데 내가 그들을 하차시킨 곳은 양주이기 때문이다. 고향이 아닌 곳으로 보낸 불찰을 저지르다니. 더 공기 맑은 곳으로 안내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여름에는 역마다 CCTV 모니터에서 크고 작은 거미들이 지은 집을 감상하라며 나를 반긴다. 섬세하게 지은 집을 보며 그 디자인과 나름의 튼튼함에 감탄한다. 내 집 마련이 참 어려운데 이들은 평수도 큰 집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어떤 친구들은 자신의 집에 붙잡힌 이들을 전시하기도 하는데 나보다 더 부유하게 지내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다. 자주 왕래하는 역이면 그들의 몸집 크기 변화가 대수롭지 않지만 오랜만에 지나는 역이라면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의 크기로 훌쩍 자라 놀라기도 한다. 아기였던 친척 동생을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웬 아저씨를 만나는 느낌이랄까? 거미도 친척 동생도 말 걸기도 불편할 정도로 커진 모습은 정말 어색하다. 거미는 너무 커지면 걱정되는 것이 해당 역의 청소하시는 분들이 집을 강제 철거하기도 해 나중에 다시 찾아가면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늘 마지막 인사 같은 인사를 하곤 한다.


철도의 여름 풍경은 갑작스러운 곤충의 습격에 소름 끼치기도 하지만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어린 시절 뛰놀던 시골집의 모습 같아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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