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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가씨’ 3개의 시선으로 담은 애증의 스릴러

-본 기사는 이야기의 일부 내용이 소개되지만 스포일러는 없음을 밝힙니다.     


어느 사이인가부터,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친절한 금자씨>로부터 박찬욱 감독은 그의 영화 가운데서 억울하게 죽어간 윤진서 혹은 배두나에게 빚진 것을 풀 아량 마냥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가씨> 역시 <스토커>에 이어 여성이 화자이자 주인공이 되는 스릴러로, 당분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안에서는 남성이 힘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가씨>는 12930년대 사기꾼에 관한 이야기다. 거액을 상속받을 귀족 히데코(김민희 분)와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백작인 체 하며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사기꾼(하정우 분), 그리고 사기꾼과 손을 잡고 히데코의 재산에 눈독을 들이는 하녀 숙희(김태리 분) 세 인물이 펼치는 애증과 서스펜스 스릴러가 <아가씨>의 구조를 전개하는 것.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마냥 박찬욱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3부에 걸쳐 이야기를 전개한다.      

1부의 이야기 구조로만 본다면 숙희는 히데코에게 사기를 쳐야 옳다. 히데코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 성공해야 히데코가 가지고 있던 거액의 재산 가운데 일부가 숙희의 수중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숙희는 히데코에 대한 감정이 이입되지 않아야 한다. 사기를 칠 대상이니 히데코에게 연민이나 동정과 같은 측연함이 느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숙희가 히데코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부터 발생한다.      


사기를 쳐야 할 대상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 사기는 어설퍼지거나 실패하기 쉽다. 한데 숙희는 사기를 쳐야 할 대상인 히데코에게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느끼고 히데코를 ‘대상화’하지 않는다. 히데코를 사기 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동정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백작과 숙희가 손잡은 사기 전선에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히데코가 백작과 결혼을 하게 되면 치르게 될 초야를 가르쳐주기 위해 숙희가 히데코와 벌이는 레즈비언 정사 장면은 숙희가 히데코에게 깊이 감정이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 빠질 수 없는 건 프로이트가 언급한 ‘타나토스(Thanatos)’의 세계관이다. 타나토스란 죽음 본능을 일컫는 용어로 박찬욱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핵심 요소다. <아가씨> 역시 타나토스를 빼놓으면 섭섭할 텐데, 히데코의 이모는 나무에 목매달고 자살한다. 한데 <아가씨> 1부 가운데에서는 <사울의 아들>처럼 판타지적 요소가 작용한다.     

<사울의 아들>을 유심히 보면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15~20초가량 주인공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판타지가 작용한다는 걸 관찰할 수 있게 된다. 현실에서라면 즉각 나치 군인들이 주인공이 느리게 움직인다고 구타가 작렬했겠지만 유태인 주인공은 느릿느릿 움직이면서도 그 어떠한 체벌도 받지 않는다.

     

다시 <아가씨>로 돌아가 보자. <아가씨>의 후반부 장면을 보면 이모가 목매달아 죽은 나무에 이모가 목매달아 죽은 흰 밧줄이 걸려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이모의 죽음을 목격한 히데코가, 이모가 목매달아 죽은 흰 밧줄을 보노라면 소스리차게 놀랄 터지만 히데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밧줄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걸 관찰할 수 있다. 이 밧줄의 이미지는 3부와 밀접하게 닿아있기 때문이다. 1부가 달의 앞면이라면, 2부와 3부는 달의 옆면과 뒷면처럼, 기존의 박찬욱 영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다양한 관점이 1~3부에 걸쳐 제시되는 영화가 <아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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