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의 유효함에 대하여
결혼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다. (고 첫 문장을 쓰고 나서 제목을 보고 들어온 분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폭탄과 결혼과 김장하가 대체 무슨 관계인지? 어쨌든 이왕 들어오셨으니 조금만 읽으면 나올 것…이라 약속드린다) 그래서 첫 결혼기념일로 여행을 떠났다. 10년 만에 경주에 왔다. 날씨는 맑고 우리 가족은 모두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결혼기념일이니 케이크에 초라도 꽂아야겠다 싶어 케이크로 유명한 제과점을 찾았다. 4월인데도 한낮 기온이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더웠다.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찾아서 다시 경주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그 길이 유난히 좁았다.
나와 배우자와 강아지는 그 좁은 길을 간신히 걸어가고 있었다. 양쪽에서 차가 지나가고 인도가 없는 그런 거리였다. 차가 계속 오니 더이상은 걸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해 강아지를 건물 쪽으로 붙이고 차를 피하려는 찰나 거리를 지나가던 어느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우리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길이) 복잡한데 개까지 끌고 와가지고... 마 폭탄 터뜨리가(터트려서) 다 죽이뿌끼(죽여버릴라)"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들었다. 그냥 우리를 보고 고함을 지르길래 또 강아지에게 뭐라고 하는구나 싶어서 몸을 최대한 건물 쪽으로 웅숭그리고 비켜서 있었다. 그리고 배우자에게는 “(시비 걸리니까) 대꾸를 하지마”라고 부탁했다. 정확히 무어라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말투만 들어도 대답했다가는 큰 싸움이 번질 것이라 예상이 가능했다. 게다가 지금은 강아지가 같이 있다.
대답을 않고서 택시를 피해 인도가 있는 큰 도로로 나왔다. 그리고선 배우자에게 택시 기사가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를 전해들었다. 듣자마자 맥이 탁 풀렸다.
그저 개를 데리고 좁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벌건 대낮에 폭탄을 터트려서 죽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호명되는 일이란 누구에게도 반갑지 않을 것이었다. “음….” 큰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시비 걸리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폭탄까지 들먹이면서 죽이고 싶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혼기념일 맞아서 온 여행인데….” 나도 배우자도 순간 할 말을 잠시 잃었다. ”아니, 폭탄이라는 말은 진짜 참신하네?“ 들은 말을 가볍게 만드는 농담도 한동안은 잘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면서 차가 주차돼있는 곳까지 조용히 걸었다. 기념일을 기념하려고 산 딸기케이크가 조금은 무거웠다. 차를 타고 배우자가 무심결에 그렇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장하 선생님은 무어라 말씀하셨을까?”
“뭐?” 하고 나는 웃었다. 그러고는 몇 초 지나고서 그 대답의 진가를 깨달았다. 우리는 며칠 전에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를 같이 보았다.
“그거구나. 김주완 기자님이 말한 좋은 소식을 알리는 것의 쓸모라는 것이 바로 그거였어.“ 내가 말했다.
김장하 선생을 인터뷰 해야 하는 이유
영화 ‘어른 김장하’에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오랜시간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그렇게 번 돈으로 재단을 세워 온갖 이들의 후원자가 되어준 김장하 선생이 나온다. 김장하 선생은 자신에 대해 칭찬하는 이야기라면 입을 다물고 열지 않기 때문에 인터뷰가 아주 어렵기로 정평이 나있다.
최근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으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이 영화는 다시금 뭇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베테랑 기자면서 역시 다른 기자들에게 존경의 대상이기도 한 김주완 기자 역시 입을 도무지 열지 않는 김장하 선생 앞에서 곤란을 자주 겪는다. 이 영화의 초반의 재미 요소는 과연 입을 열지 않는 김장하 선생을 김주완 기자가 인터뷰 할 수 있을까? 에도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또 다른 흥미진진함과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자주 인터뷰어가 되어 인터뷰이를 설득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나 또한 바로 그 지점에서 작은 스릴을 느끼면서 영화를 계속 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말 영화 끝까지 김장하 선생님은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실 건가?”
그런데 희한한 점은 김주완 기자가 김장하 선생이 워낙 입을 열지 않으니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는데 주변인들 역시 김장하 선생에 대해 칭찬 일색이더라는 것. 누구나 너무나 흔쾌하게 김장하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 김주완 기자에게는 의외의 요소이기도 했다.
그간 베테랑 기자답게 김주완 기자는 현장에서 많은 취재를 경험하며 사회를 비판해왔다. 그러나 ‘어른 김장하’에서 화자로 나선 그는 열심히 일했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김장하 선생을 알게 되고 인터뷰를 위해 오랜 시간을 그의 곁에 머물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김장하 선생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일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또 다른 각도로 보자면 김주완 기자의 취재기이기도 하다.
보통 언론사 기자들이 쓰는 기사는 좋지 않은 소식을 다룬다. 세상에는 여전히 비판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사에서는 때로는 미담과 같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일컬어 “굿뉴스”라고 말한다. 그 “굿뉴스”를 통칭할 수 있는 이유는 “굿뉴스”라 할 만한 기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한 인터넷신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아예 한 섹션을 “굿뉴스”로 운영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것은 굿뉴스가 없기 때문일까?
김장하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어떻게 그런 질문을 떠올렸어?” 내가 물었다. “우릴 길거리에서 모욕하는 상대에게 같이 욕을 해주면 속이 후련했을까? 그게 상황을 나아지게 했을까? 그러다 최근 본 사람 중 가장 어른스러운 김장하 선생의 태도가 생각났어.“ 배우자는 대답했다.
김주완 기자의 문제의식이 불현듯 배우자의 말 끝에서 스쳐지나갔다. 김장하 선생은 내가 그렇게까지 되기는 참 어렵겠으나 분명 그럼에도 지향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김장하 선생은 영화에서 장학 사업만이 아니라 형평운동부터 시작해 여성운동이나 환경운동에도 관심을 갖고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손이 귀한 지역 사회에서 기꺼이 이러한 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동료가 된다. 당연히 그의 행보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라 영화에도 짧게 김장하 선생이 난처한 전화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김장하 선생은 “빨갱이” 운운하는 폭언이 담긴 전화를 받는다. 그는 그 전화를 바로 끊지 않고 조금 들어주다가 “끊겠다”고 말하고나서야 끊는다. 아마도 배우자는 김장하 선생의 존경스러운 삶과 더불어 이 장면을 떠올린 것 같다.
반면 나는 그의 물음이 못내 반가웠다. 김장하 선생을 닮을 수는 없어도 김장하 선생이라면 어떻게 할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일은 결국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삶을 좇아야 하는지를 계속 묻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물음을 간직한 이들이 하나둘씩 생기다가 더 많아지게 되면 정말 세상이 바뀔지도 모른다. 김장하를 닮아가는 방향으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좋은 질문인데? 한 번 생각해보자. 김장하 선생님이라면 무어라 했을까?“
그는 말했다. “글쎄, 그때 빨갱이라고 비방하는 전화를 받았을 때처럼 (우리도) ’가겠습니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 그랬을 수도 있어.”
김장하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질문을 쥐고 우리는 몇십 분을 달려 숙소에 어느새 다다랐다. 그 질문은 내내 우리를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