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무애의 확장과 포용의 원림 경관

파주 화석정 원림

by 온형근

파주 화석정 원림 – 무경무애의 확장과 포용의 원림 경관


화석정 원림의 입지와 조망

화석정 원림은 한국정원문화의 독특한 미학을 펼친다. 확장과 포용의 원림 기법을 탐구하고 시사점을 모색한다. 파주 화석정(花石亭)은 서울과 개성을 거쳐 신의주로 가는 국도변 임진 나루터 길목의 우뚝 솟은 기암절벽에 자리한다. 이숙함(李淑瑊, 1429~?)¹⁾의 기문에는 “정자는 장단 쪽을 향했는데, 석벽이 병풍처럼 되었고, 임진강 상류를 임하여 지세가 매우 험하다. 난간에 기대서 바라보면, 한양 삼각산과 송도(松都) 오관산(五冠山)이 저 하늘 아득한 중에 머리카락만큼 약간 드러나는 바, 이것이 정자의 경치이다.”라고 화석정의 입지를 임진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국으로 표현한다. 화석정 이름은 “이숙함이 짓고 기문[楊原李公淑瑊。以花石扁之。而幷有記以侈之矣]하였다(파주목, 경기,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1권).”라고 기록한다. 이의석(李宜碩, 1440~1498)이 그의 동생 이의무를 보내 조부 강평공의 옛 별서에 중건한 정자의 이름과 기문을 아름답게 작성해달라 요청했다. 이에 이숙함이 당나라 이덕유(李德裕, 787~850)의 평천장기에서 ‘화석(花石)’이라는 이름을 따왔다.


<파주 화석정 전경> 파주 화석정은 조선의 선비들이 사랑한 누정이다. 사방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와 멀리 펼쳐진 산세가 어우러져 산 너머로는 달이, 강물은 만 리의 바람을 ...

그러면서 이숙함은 선조의 유업을 지키는 이의석의 효심을 추앙한다. 정자가 새로워지니 꽃과 돌도 함께 새로워졌다면서 “물질은 비록 앎이 없으나[物雖無知] 만남은 각자 때가 있으니[遇各有時] 어찌 우연한 일이리요[豈偶然歟]”라고 깨달음의 성찰을 남긴다. 화석정 원림의 돌과 나무, 산과 강 등의 자연물 자체는 의식이나 정신적 작용이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경관이 주는 감흥이나 인문의 체득은 인간과의 교감에서 ‘시’가 되는 순간을 만난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세계관을 펼친다. 예술의 원천은 정경교융(情景交融)에 있어서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의 합일에서 깊은 미학과 존재론의 통찰을 실현하는 합의를 엿본다.

화석정 원림의 입지와 조망을 연헌(蓮軒) 이의무(李宜茂, 1449~1507)의 「화석정부병서」에서 살핀다. “석벽이 경사를 이루며[斜界石壁] 아래로 강가 모래톱에 임한다[俯臨江汀]. 그 앞으로는 도로가 이어지며[前瞻官道] 뒤로는 역참이 내려다보인다[後瞰郵亭]. 여러 산들이 함께 모여들고[群山竝湊] 들판은 넓고 조수는 평온하다[野闊潮平]. 이는 참으로 등람하기 좋은 승경이며[茲實登覽之勝境] 천지가 조화롭게 만들어낸 것이다[天地之釀成也].”라고 화석정 원림의 경관을 묘사한다. ‘사계석벽’과 ‘부임강정’의 구조는 경관의 수직적 공간의 위계를 보인다. 상층부는 경사진 석벽이 자연스러운 경계를 형성하고 하층부에는 강가 모래톱이 수평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의 흐름으로 화석정 원림의 특징 중 하나인 ‘부감경(俯瞰景)’의 조망을 나타낸다.

<화석정 조망권> 화석정을 가운데 두고 상방 조망과 ‘하방 조망이 맞물린 조망 체계를 완성한다. 전후상하 조망권을 확보하여 근경과 중경, 원경의 층차적 경관을 구성한다

화석정을 가운데 두고 ‘전첨관도’의 전방 조망과 ‘후감우정’의 후방 조망이 위의 ‘사계석벽’의 상방 조망과 ‘부임강정’의 하방 조망과 맞물린 조망 체계를 완성한다. 전후상하 조망권을 확보하여 근경과 중경, 원경의 층차적 경관을 구성한다. 화석정이 ‘군산병주’의 산세를 포용하는 구심의 집중성을 지닌다. ‘야활조평’의 넓은 들판이 주는 원심의 확산성과 수면의 안정으로 고요한 균형을 안긴다. 이 모든 게 천지가 빚은 무성한 결실이어서 화석정에 올라 보는 모든 게 빼어난 경관이다.


특히 난간에서의 탁월한 조망점을 제공한다. 지금은 난간이 없고 좌식보다는 입식 구조라 조망 행위의 변질을 초래한다. 사실 누정 원림에서의 난간이나 머름은 마루에 앉아 팔 올리고 기대앉을 수 있는 독특하고 유용한 장치이다. 난간에 기대어 앉아야만 시가 나오고 문장을 짓는 것은 왜일까. 난간에 기대어 시를 읊는 ‘빙란음시(憑欄吟詩)’는 누정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고전적인 풍류 행위이다. 현재의 화석정은 탁 트인 조망에서 시상이 떠오르는 개방된 풍류 공간의 특성을 보여준다.창작은 서먹서먹하지만 시 한 수 읊어야 마땅하다.


원림의 심장에 파고들다 – 파주 화석정 원림에서

온형근



훅 파고 들 듯 어제가 살얼음 디딜 때

물정 낯선 그대 미끄러져 꽈당 자빠지는 걸


먼 산은 매일처럼 달의 고독을 머금고

흘러들어와 머물 듯 튕겨 떠나보내는 강물은

만 리 바깥에서 몰고 온 바람에게 미안하다.


소나무와 전나무 사이에서 새의 날개 펼칠 듯

손가락 가리키는 화석정 원림의 심장에 파고든다.


고개 들어 아득한 우주에 거경궁리로 다가섰고

흰모래 지즐대는 물살의 간지럼을 머리맡에 품는다.


멧비둘기가 일궈 낸 숲그늘에서 꾀꼬리도 울고

진달래가 촉발한 만화방창이 원림 격식을 차린다.


숲정원은 감당할 수 없으니 사적지 정화로 일목요연 사진 박으면 그뿐

디지털에 가둔 원림을 끄집어 내 임진나루로 나선다.

황포돛대 한 척 얻어 타고 동파의 적벽가를 듣자꾸나

하루하루가 살얼음 언 이른 아침이다. 사는 게 매번 첫 발을 디디는 순간에 놓인다. 미끄러질 듯한 아슬함에 몸이 움찔울찔 작아진다. 이 떨림이 물정 모르는 나그네의 첫 발처럼 조심스럽게 화석정 원림 안으로 이끈다.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머물다 가는 물의 성정이 묘하다. 바람이 만 리 길을 달려와 이곳에서 쉬어간다. 그 바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왔다가 떠난 모든 것은 사물이다.


소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따라 걷는다. 새들이 날갯짓하려는 듯 움츠린다. 그곳에 화석정 원림의 심장이 뛴다. 서슴없이 파고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 본다. 우주의 광활함 앞에서 거경궁리, 경을 공경하며 이치를 궁구한다는 성리학적 태도가 나를 이끈다. 내려보니 모래가 물결에 씻기면서 찰랑댄다. 잠결에도 찾아와 함께 듣는다. 새가 합창을 시작한다. 멧비둘기가 만든 그늘에서 꾀꼬리까지 가세한다. 진달래가 피어나니 온 세상이 꽃으로 가득하다. 만화방창, 만물이 꽃피우며 번창하는 숲정원이다. 이 아름다운 원림의 진짜 풍경을 알려면 거닐어야 한다. 임진나루로 나선다. 상상은 꿈틀대며 황포돛대에 몸을 맡기고 동파의 적벽가를 듣는다.


화석정 원림의 변천을 걷는다

화석정 원림의 타임라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처음 건립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5대 조부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 1368~1435)으로, 1443년(세종 25)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건립 연대는 고증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이명신이 ‘지돈녕부사’가 된 시기인 1449년(세종 31) 전후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명신은 그의 별장 북쪽 임진강 상류의 바위 절벽에 정자를 세운다.

한편, 화석정 터가 고려 말 문신 길재(吉再, 1353~1419)의 유지였다는 주장은 1937년에 발행된『경기 지방의 명승 사적(京畿地方の名勝史蹟)』이라는 책에서 비롯한다. 이는 당시 구전에 근거한 것으로 길재의 연보나 다른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지리적 혼동도 가미되었다. 길재가 은거하며 살았던 ‘율곡원전(栗谷園田)’은 경상도 선산과 구미 지역에 있는 곳이다. 파주의 율곡과는 지명이 같아 혼동된 것이다. 화석정의 건립 및 중수 관련 조선시대 문헌들은 율곡의 5대 조부인 강평공 이명신이 정자를 처음 건립했음을 명확히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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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경가 ■시집 : 천년의 숲에 서 있었네 외 5권 ■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 ■월간 조경헤리티지 ■조경수목 문화콘텐츠(2019) ■시경으로 본 한국정원문화(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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