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지인
나는 어제로 드디어 몇 달간 고통스럽게 고민하던 일 두 개를 끝냈다. 하나는 이사 갈 집의 계약을 마무리한 일이다. 또 하나는 다니던 교회를 옮기는 일이다. 집과 일하는 학교, 그리고 교회가 거의 동선의 대부분인 내 생활 패턴을 고려해보면 얼마나 삶을 바꾸는 선택을 한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MBTI가 나오기 전에 있던 수많은 성격유형테스트에서 나는 관계 중심과 과업 중심 중 단연 압도적으로 과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으로 나왔다. 어렵게 말했지만 그냥 사람보다 일이 중요한 성격이란 뜻이다. 즉, 나는 어떤 일이나 일정 따위의 프로젝트로 묶이지 않는 이상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인간 유형이다. 이 말이 결코 내 부족함으로 흘려보낸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면죄부나 핑계가 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냥 과거와 현재에 이렇게 생겨 먹은 인간이라 친구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가장 관계를 많이 맺는 사람들은 매일보는 회사 사람들과 못지 않게 자주 보는 교회 사람들이다. 회사는 대면하는 횟수로 보나 묶여 있는 과업 덕분에, 교회는 여러 예배들과 활동들 덕분에 최우선시 될 수 있는 관계들이었다. 특히 교회는 사적인 부분이기도 하고 종교의 테두리 밖에서 보면 나는 광신도에 가까울 정도의 기독교인이니 교회에서 교회 사람들과 같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보다 더 열심이 있었을 때에는 새벽기도에 수요기도, 금요철야 예배까지 하루의 시작과 끝, 일주일의 시작과 끝을 모두 교회에서 보냈다. 그만큼 많은 교류가 있던 교회를 떠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이었다.
교회 밖에선 CC는 캠퍼스커플이지만 교회 안에서 CC는 처치 커플로 통한다. 나는 n번의 연애 중에 절반은 전자의 CC였고 절반은 후자의 CC인 아주 골치 아픈 연애사를 가졌다. 자만추의 악질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직전의 연애는 후자의 CC였고, 꽤 오랜 시간을 교제했다. 신앙을 매게로 만난 두 사람이었지만, 헤어짐 또한 신앙과 교회 안에서의 문제로 결심했다. 둘의 마음을 정리하는 것만큼 더 큰 문제는 얽힌 시간과 관계들을 정리하는 문제였다. 우리였던 X와 나는 또 다른 우리였던 교회 공동체에게 피해를 없애기 위해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이별했다. 그 시간의 처음 목적은 헤어지지 않기 위한 혹은 경거망동하여 후회할 이별을 만들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우리의 이별로 닥쳐올 피해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유별날 것도 없던 어느 금요일이었다. 혼자 금요예배를 드리는 나를 기다리는 그를 두고 혼자 예배를 드리는데 유난히 외로웠다. 오전에 데이트를 하며 함께 보내서 더 아쉬웠던 것일까. 그가 간만에 내가 용기내어 청한 함께 드리는 예배를 매몰차고 이유 없이 거절해서 서운했을까. 그 날이 처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지금 따져도 하릴 없을 어떠한 이유로 그 날 나는 이별을 결심했다. 나조차도 영문을 제대로 몰랐는데 그는 혼자 집에 가겠다는 내게 단박에 ‘우리 헤어지는거야?’라고 물었다. 마음을 들켰으니 거짓말을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고 느껴서 그렇다고 답하고 그 길로 만나 숲에서 몇 시간이고 울며불며 이별을 고했다. 설득과 거절을 반복하다 신앙 안에서 이 관계를 시작했으니 정리도 그렇게 해보기로 한다. 그에게는 기회였지만 나에게는 오랜 연인과의 관계를 끊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면죄부였던 것 같다. 매일 같이 만나던 주중의 만남을 중단하고 같은 것을 읽고 생각해서 토요일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일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예배를 드리기를 6주쯤 한 것 같다. 그 안에 서로 남아 있을 모임과 예배를 정하고 동시에 떠날 모임과 에배도 정했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청년 모임을, 그는 함께 봉사하던 청소년부를 떠났다. 그렇게 나는 기간제 베프와 절교를 했다.
그렇게 정리를 애써 했어도 이별 후 같은 교회를 다니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X가 기간제 베프가 될 줄은 나도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도 몰랐던 것 같다. 재회를 권유하기도 하고 매정하다고 그 누구의 말인지 모르는 말을 전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받고 아파하며 너무 힘든 관계들은 끊어가며 살려고 1년을 발버둥쳤다. 그러다 보니 정말 그 교회를 다니는 것이 외로워졌고, 1년이면 잘 버텼지 하고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차차 내려놓는다고 했는데도 맡은 것이 수요예배 싱어 하나와 중고등부 찬양인도 봉사 2개가 있었다. 오래 고민한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알아서 아쉬워했지만 이달 말로 교회를 나왔다. 주일이면 아침부터 밤까지 찼던 작년 일정들은 올해 들어서면서 점심까지로 바뀌고 이제는 아예 없어졌다. 베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간제 베프라도 어디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근데 다시 머리 아픈 관계들을 애써 시작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친구가 없는 사람의 휴일은 어떤지 아는가. 금요일 밤에는 애써 몰아 두었던 일들을 한다. 그리고는 토요일 최대한 늦게까지 누워있는다. 그리곤 얼마 남지 않은 이 동네의 맛집들 중 포장이 용이한 것들을 생각해서 늦은 점심에 밖을 나선다. 그 전까지 인스타 피드를 올리며 멀리 있는 내 베프들에게 같이 가고 싶은 맛집들을 전송한다. 대체로 작은 언니나 학교 후배 몇몇과 현재와 허구, 그리고 친한 동료들의 단톡방이다. 그러나 실제로 같이 그런 맛집들을 가는 일은 드물다. 그저 계획 세우기로 계속 혼자는 아닐 거라며 자위하는 꼴이다. 음식을 양껏 포장하고 일정의 운동량을 채우기 위한 장소를 가서 돈다. 휴일에 산책은 숲길도 좋지만 백화점이 최고다. 걸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낼 수 있다. 그리곤 먹고 싶은 커피를 하나 테이크 아웃해서 헤드셋을 뒤집어쓰고 걷는다.
이 글을 읽는 내 지인의 다수는 ‘뭐야, 그럼 나랑 좀 만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내가 그렇게 못해서 제일 첫 문단의 자아비판을 그렇게 길게 길게 써둔 것이다. 딱히 여러 사람과 만나고 싶은 생각은 또 없다. 나는 딱 한 명이면 된다. 자주 만날 수 있는 베스트 프렌드 한 명. 근데 이 나이 먹고 그런 베프를 찾을 순 없고, 만날 길도 없는 것이다. 볼멘 소리 하는 사람들은 생각해봐라. 내가 매일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면 안 귀찮을지. 아니다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이 순간, 내가 귀찮아졌다. 나는 정말 인성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요즘 내가 내린 결론은 기간제 베프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때 ‘기간제 베프가 뭐람, 평생을 보고 신중하게 만나야지!’라며 훈장님 같은 말을 하고 있던 내 입을 꼬집고 싶다. 물론 지금도 가볍게 할 연애를 시작할 생각은 없다. 다시 그 힘든 만남과 알아감과 헤어짐 등등을 또 하라고 하면 ‘그냥 날 잡아 잡수쇼!’ 할 것 같다. 근데 사람 인[人]의 한자가 서로 기대어 있는 사람의 상형문자가 정말 맞다면, 그리고 그게 정말 인간의 속성이라면 나도 이제 사람 구실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내가 말하는 기간제 베프란 그동안 내가 관계 맺은 사람들을 생각해봤을 때 비단 연인 관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친분이 기간제이지 않나 하는 맥락으로 말하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베프이다. 나한테 삶의 한 절을 내어주고 나도 그처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몇 주가 되었건 몇 달이 되었건 그 사람이 그 시간에는 내게 가장 친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쏟은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만날 때 잠깐이라도 그 때의 애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일례로 교회와 밀접한 관계의 신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예전 인연들을 많이 만난다. 베트남에 있을 때 선교를 와서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동안 함께 있다가 간 사람들도 그 중에 있다. 그들은 만나면 정말 몇 년을 같이 일했던 사람들 만큼이나 반갑고 좋다. 마찬가지로 촬영장에서 고생하며 시간을 쌓은 선후배들은 언제 봐도 그때의 전우애 같은 것이 느껴져 금새 속 얘기를 풀어내곤 한다. 함께 보냈던 그 짧은 기간의 힘은 엄청나다. 지금의 필명이자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쓰던 옛 이름인 ‘지인’은 아는 사람이란 뜻의 ‘지인’과 동음이다. 예전에 이나영이 나왔던 영화 ‘아는 여자’의 뉘앙스처럼 아는 사람은 뭔가 특별함이 결여된 것 같아서 내 이름이 싫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는 사람이란 느낌이 좋아졌다. 낯선 곳에서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나는 반가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같은 말로 마음과 시간을 공유한 사람들을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은 기쁨이다. 그래서 나는 헤어짐의 순간에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모습으로 꼭 다시 만나요!’라고 한다. 함께 작업을 같이 한 사이라면 ‘우리 더 좋은 촬영장에서 만나자.’라고 인사한다. 교회를 떠날 때에도 ‘우리 더 좋은 예배의 자리에서 또 만나자. 그게 천국이여도 좋아.’라고 말한다. 소망에 아쉬움을 담아 건네는 인사이기도 하지만 진짜 그럴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긴 인생 속에서 언젠가는 꼭 만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인사를 기억하며 지금이 더 좋은 곳인가 찾다가 발견한 ‘나음’에 감사할 것이다. 그럼 또 우리는 서로의 베스트로 있을 기간이 시작되는 거겠지.
그래서 나는 새로운 관계들이 설령 기간제여도 온 힘을 쏟아보기로 한 번 더 다짐한다. 살던 동네를 떠나고 함께 일상을 나누던 사람들과 이별을 고하면서 마음이 많이 움츠러든 것도 사실이었다. 이별을 경험하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이보다 더 좋은 사람들을 이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눈물겹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해봐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이 반복되는 기간제 관계들에 지치기도 한다. 쓸모 없는 짓은 아닐까 마음의 영점을 연거푸 맞추며 저울질 한다. 그러나 이제 이 모든 일련의 망설임을 거두기로 한다. 허락된 기간에 성의껏 마음을 쏟아부어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 그게 맞는 것 같다. 아끼다가 전하지 못할 바에야. 언제나 모든 인연의 기간은 끝이 나게 되어있다. 그러니 허락된 이 시간에 사랑해야 한다. 예쁘다고 느낀 지금 예쁘다고 말하리라. 고마움을 느낀 지금의 고마움을 꼭 전하리라. 마음을 준비하고 기다려본다. 나의 베스트를. 오늘은 정말 기간제 베프라도 필요한 날이었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집계약을 잘 마쳤지만 말이다. 그리고 혼자서 외로움을 목전에 두고도 떠나야 할 때를 정해 예의 바른 인사를 막 마친 날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혼자라서 괜찮아서 이제는 정말 필요한 날이다. 이대로 혼자서 살기 딱 좋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 혼자서 살기 너무 괜찮아질 것 같아서 그렇다.
좋아하는 영화 ‘Eat Pray Love’의 말미에 여자 주인공이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두려움에 절규하며 외치는 ‘My Balance’와 같은 맥락이다. 이 삶의 균형이 완전해질 때 나는 이것을 포기하기 더 어려울 것이다. 내가 홀로 서기 위해 찾은 나만의 루틴과 평안은 점점 더 남을 내 삶에 들이기 위해 견뎌야 하는 무너짐에 예민하게 한다. 이러다 결국엔 나란 인간은 끝이 뭉툭한 퍼즐조각이 되어 어디에도 맞지 않게 될까 겁이 난다. 이 균형이 깨져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해줄 누군가의 친구로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란 내가 옳다고 믿던 것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접시에 코박고 바둥거리는 내 머리를 들게 해주기도 한다. 그런 존재와 건강하게 연합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딱 지금이다. 사랑하고 사귀자. 마치 한 번도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