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반부터 알람시계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벌떡 일어나 후다닥 알람을 끄고 욕실로 뛰어 들어가 초고속으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했다. 블러쉬와 립글로스로 단장을 마무리하고는 스니커를 신고 호텔 방을 나섰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3시 45분. 작은 로비를 지나 건물 앞으로 나가니 케스케가 약속했던 대로 그의 귀엽게 생긴 하늘색 자동차 앞에 서 있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네, 좋은 아침! 잘 지냈어요?”
“그럼요. 좀 졸린 걸 제외하면 아주. 준비 됐어요?”
우리는 아직까지 주위를 맴도는 잠의 기운을 내쫓기 위해 우선 세븐일레븐에 들려 음료를 샀다. 차로 돌아온 나는 오렌지주스 한 병을, 케스케는 커피 한 캔을 ‘원샷’했다.
평소에는 무섭게 정체가 잦았던 도쿄의 도로가 참 한산했다. 빨간 신호에도 거의 걸리지 않고 순조롭게 츠키지 시장에 도착했다. 케스케가 주변에 주차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곳을 안다며 차를 주차시켰다. 약간은 과장되게 감동한 눈과 말투로 일본에 공짜도 있냐고, 역시 현지인은 다르다고 칭찬해주자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멋쩍게 웃었다.
츠키지시장의 규모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컸다. 언젠가 놀러갔던 부산에서 참 크다고 생각했던 자갈치 시장이 몇 개는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며 사진을 찍고 싶어서 천천히 걸었더니 이곳은 나중에 나오면서 보자며 케스케가 발길을 재촉했다. 그가 냉동 참치 거래 현장에 나 못지않은 흥미를 가지고 찾아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전시장에서 봤던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이곳까지 불러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어떤 느낌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구상하고 있자니 어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케스케를 따르는 발걸음의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숨을 몰아쉬며 도착해 보니 벌써 경매가 시작된 모양이다. 머리에는 흰 수건을 둘러메고 남색 작업복 바지에 장화를 신은 남자들이 수레에 거대한 냉동 참치를 싣고 왔다 갔다 했다. 어디서 나오나 하고 봤더니 커다란 창고 비슷한 곳이다. 관계자 외에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몇 개의 다른 언어로 붙은 창고 문 주위로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 몇 몇 서양인들이 감탄한 표정으로 자기네들끼리 무어라 이야기 주고받으며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잽싸게 그들 틈새로 파고들어 활짝 열린 문 안을 들여다봤더니 정말 대단했다. 몇 마린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냉동 참치들이 나란히 누워 팔려나가길 기다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본 사람조차 알아들을 수 없다는, 장사꾼들만의 언어와 수신호를 동원한 경매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정신없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물건을 낙찰 받은 사람들은 커다란 냉동 참치를 수레에 싣고 재빨리 시장을 빠져나갔다.
내 눈에는 이 과정이 그들의 매일을 여는 신성한 의식절차의 진행으로 보였다. 이 현장에서 파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단지 구경꾼일 뿐이다. 나는 최대한 훼방꾼이 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모든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이제 저 참치들의 몸은 다시 분해되어 팔려 누군가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요리로 재탄생되겠지. 판매상의 보관 방식과 요리하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의 비싼 참치요리가 될 수도, 슈퍼마켓의 마지막 반값 세일품목으로 남았다가 어느 가정의 조촐한 저녁 식탁에 올라갈 수도 있다.
“그래서, 사진은 좀 찍었어요?”
“네?”
“여기 온 이유가 근사한 사진을 보고 그런 사진을 찍고 싶어서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카메라도 세 개나 가져왔잖아요. 차에서 필름까지 다 끼기에 많이 찍으려나보다 했는데 아까부터 지켜보니 사진은 하나도 안 찍는 것 같아서요. 이러다 경매 다 끝나요. 디지털 카메라는 이리 줘요. 내가 찍어줄 테니.”
현장을 보느라 잠시 잃었던 넋을 소환해서 열심히 셔터를 누르기로 했다. 확실히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는 현장의 느낌은 달랐다. 아무래도 사각의 프레임으로 한정되기에 아주 큰 그림으로 압도되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특정 느낌을 분해하듯 강조해서 담을 수는 있다. 아까는 눈여겨보지 못했던 참치를 나르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 하나, 팔린 물건을 실어 나르느라 흐트러진 냉동 참치의 대열, 얼마나 오래 이 일상을 반복했을 지를 나타내주는 수레의 낡은 정도, 차 안에서 물건을 골라오는 동료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든 사람 같은 현장의 세세한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카메라의 프레임이 혼자 덩그러니 대열에서 떨어진 냉동 참치 한 마리로 향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입은 벌린 채로 꽁꽁 얼어 눈은 얼음으로 차있고 아가미 부분이 잘려나가 몸체에 반달모양의 구멍이 난 냉동 참치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알에서 태어나 다른 참치들과 자라나고 자유롭게 드넓은 바다를 헤엄쳐 다니던 은빛 참치의 영상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머릿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내가 마치 참치라도 된 듯 피부로 시원한 바닷물의 느낌이 전해졌다. 그렇게 힘이 넘치던 참치가 어망에 잡혀 급속 냉동되어 활기를 잃어버린 채 얼음 눈을 하고 이곳에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제 어디론가 팔려나가면 요리가 되어 누군가의 식탁 위에 올라갈 것이다. 그 순간 어이없게도 이 참치에게 아직 영혼이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갑자기 이 홀로 놓인 냉동 참치를 보며 생생하게 바다에서 헤엄치는 참치가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이 녀석이 바다에서 잡힌 뒤로 급속 냉동되기까지의 과정에 이르기까지가 너무 신속했기에 그 영혼도 함께 급속냉동 된 것이 아닐까. 판매를 기다리는 동안 조금씩 해동되면서 깨어나게 된 이 참치의 영혼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이 아닐까. 뭔가 전기 같은 것이 말초신경까지 찌르르 퍼져나갔다.
나는 이걸 영감의 순간이라 부른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