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 이야기 #6

참치 이야기

by Snoopyholic

소설가가 혼자서 우두커니 책으로 가득한 작업실에 앉아 하얀 바탕의 모니터의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한다. 두 손은 키보드 위에 놓여있지만 무얼 써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결국 두 손은 자판기에서 손을 떼어 담뱃갑을 찾아내더니, 그 안에서 잘 빠진 한 개비의 담배를 꺼내 입에 물리고는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인다. 담배로부터 빨아들인 니코틴은 즉시 소설가의 두뇌를 자극했지만 자극받은 두뇌는 그에게 오늘도 틀렸다고 말할 뿐이다. 힘없이 눈을 창으로 돌리니 바깥은 이미 캄캄하다. 배가 고프다. 그는 무겁게 담배와 컴퓨터를 끄고 단골 참치 레스토랑을 찾는다.

아까까지만 해도 새로운 소설의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주방장 앞에 앉자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평화로운 표정이 된다. 단골손님을 알아본 주방장은 그와 눈을 마주치고 빙그레 웃은 뒤 언제나처럼 그를 위해 사케를 주문한다. 이미 손으로는 날이 선 칼로 참치 덩어리를 꺼내어 잘라 초밥을 만드는 중이다.

소설가는 우선 사케 한잔을 쭉 들이킨다. 차가운 느낌이 혀를 착, 감싸는 게 청량하다. 곧 첫 번째 참치초밥이 나온다. 젓가락을 들어 간장종지의 모서리에 붙은 연두색의 와사비를 풀어놓는다. 이제 젓가락을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인 초밥으로 가져가는데 머릿속으로 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야기를 써주세요.’

그는 초밥을 하나 집어 간장에 찍은 뒤 입속에 넣고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나는 남겨진 0.00000003%의 참치영혼이에요. 내 삶에 대한 소설을 써주세요.’

그는 계속 우물우물 초밥을 씹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여기까지 썼다가, 머리를 흔들며 다 지웠다가, ctrl과 z키를 누르는 것을 반복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니 이미 반은 끝낸 거라고 생각했다가 이런 엉망진창의 시작은 애초에 싹부터 잘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하며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특히 어떻게 스토리를 전개해나가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사실 줄거리는 이미 정해졌다.

자신이 참치의 남겨진 0.00000003%의 영혼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에 대한 소설을 써달라는 이상한 목소리를 들은 소설가는 새로운 소설의 소재로 참치의 일생에 관해 다루기로 한다. 작은 알에서 태어나 여러 난관을 거쳐 거대한 참다랑어가 되어 대양을 자유로이 활보하던 참치가 어느 날 어망에 걸려 급속 냉동된다. 참치의 영혼이 미처 다 빠져나가지 못한 채로 함께 냉동되어 시장에 나오고 경매를 통해 고급 일식집으로 팔려나간다. 참치의 0.00000003% 영혼은 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실력 있는 주방장의 손을 거쳐 근사한 요리가 되어 배고픈 손님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는 순간 0.00000003%의 영혼이 비로소 소멸된다. 그동안 끈질기게 소설가의 영혼을 갉아먹었던 슬럼프가 끝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서 그렇게 힘차게 자라고 움직이던 참치의 육체를 죽이고 영혼을 소멸시킴으로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생존해갈 수 있다는 과정을 깊게 고찰해보고 싶었다. 츠키지 시장에서 냉동 참치의 얼음 눈과 마주한 순간에 참치의 영혼과 교감으로부터 느꼈던 세세한 감정을 표현해내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먹는 참치가 사실은 이런 삶을 살아왔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생동감 넘치게 바다를 유영하던 참치가 현대과학기술이 동원된 원양어업과의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벌이다가 끝내 바다에서의 생을 마감하고 여러 단계를 거친 후에야 사람들의 입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렇게 기본 뼈대는 잡았지만 아무리 여태까지 모아온 자료들을 보고 또 봐도 구체적인 소설의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다. 고질병처럼 이맘때면 내게 찾아오는, 어쩌면 내게는 소설가로서의 재능은 애초부터 없었는데 나 혼자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란 녀석이 내 주위를 기분 나쁘게 어슬렁거렸다.



to be continue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