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고 지내냐는 물음의 부담감.
꽤 오랜 기간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해오고 있다. 간간이 나를 찾아주는 연락들이 반갑고 고마웠지만 그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지만 '뭐하고 지내?'냐는 물음이 불편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뭐 하고 지내?
4학년을 마치고 나서부터였다. 당연하게도 주변 사람들은 취업 준비에 바빴고, 안타깝게도 나는 아티스트 비스무리한 것이 되고픈 사람이었다.
취업과 달리 아티스트라는 것이 공채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눈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취업 준비생들에 비해 나는 그냥 놈팡이처럼 느껴졌다. 더불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불안함이 생겼고 '내가 잘못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수천번은 더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의 '뭐하고 지내'냐는 물음이 '네 죄를 네가 알렸다'처럼 들렸고 나는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하는 죄인처럼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그냥 놀지 뭐...', 대답을 흐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주변을 보니 그 물음의 올바른 대답은 왠지 누구나 알아주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거나 최소한 열 중 다섯은 알만 한 회사의 인턴이라도 하고 있다고 말해야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누가 그래야 된다고 정해준 것도 아닌데, 지금 내 나이에는 취업을 위한 활동만이 '나 열심히, 제대로 살고 있다'라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취업을 위한 활동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나는 내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취업은 그 조건을 전혀 충족시켜주지 않는 거 같아서 안 하려고. 그래서 대신 그림은 꾸준히 그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누가 보지도 않을 그림 한 두장 그리는 것보다 대중과 빠르게 소통할 수 있고 다방면으로 확장성도 갖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길게 봤을 때 좋을 거 같아서 웹툰을 준비 중이야. 당연히 다짜고짜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영화 시나리오 작성법 책들 찾아 읽고 유명한 소설책이랑 영화들을 나름 분석하며 보고 있어. 근데 하다 보니 글 쓰는 게 더 재밌네...?'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나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남들은 좋은 곳 취직하겠다고 스펙을 더 못 쌓아서 난리인데, 영어학원을 다녀도 모자랄 판에 소설, 영화라니? 내가 봐도 취업 못하는 루저가 정신 못 차리고 놀면서 변명하나는 거창하다는 평을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취업 준비생들 못지않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그들보다 바빠야 했다.
남들에게
잘 지낸다 대답하기 위해
그 이후로는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수다 떨기'같은 것은 해선 안될 범죄 행위처럼 느껴졌다. '나 힘들다, 술 한잔 할래?'라는 친구의 말을 '나 바쁘다'며 피했고 오랜만에 보고 싶다는 형들의 연락도 같은 이유를 대며 피했다. 이런 행동들은 적어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 않다는 믿음을 주었다. 실제로도 바쁘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바빴다.
바쁘긴 바빴는데 무엇을 위해 바빴는지 전혀 알지 못 했다. 취업이 아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필요한 작업은 뒷전이고 혹시나 모를 취업에 도움이 될만한 일들을 찾아했다.
나는 내 꿈을 위해 온전히 노력하기보단 사람들의 '뭐하고 지내'냐는 물음에 '나 OO 취업했어'라고 대답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이다.
참 머저리 같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면, 그다음은 어쩔 건데?
'잘 지내? 뭐 하고 지내?'
나는 잘 지내지도 않았고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도 몰라 어떤 물음에도 대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람도 잃고 나도 잃었다.
이제는 당당히
어쩌다가 나의 작업이 취업과 연관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 폄하하고 피했을까.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내 잘못이다. 지금도 피해의식을 완전히 걷어내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방황의 원인이 피해의식 때문임을 이제라도 인지하게 된 것에 의미를 둔다.
대학교 4학년. 먹고살기 위해서는 취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또래는 '뭐하고 지내?'냐는 물음에 'OO 취업했어', 또는 '뭐 그냥 회사 다니지'라고 대답하기보단 '요즘 사진 찍는 거에 빠졌어'라든지 '요즘 작가 OOO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라는 종류의 대답을 했으면 좋겠다.
삶에 있어서 자신이 소속된 곳 혹은 소속되고자 하는 곳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와 같은 종류의 피해의식을 갖는 사람도 없을 테고 주변도 조금 더 낭만적이게 변하지 않을까?
진짜, 솔직히, 톡 까놓고 말해서 20대는 충분히 그래도 되는 나이 아닌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