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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ug 25. 2016

오만을 벗고 만난 건축

스리랑카 건축여행기 #11


바와라는 사람을 아세요? 


제프리 바와를 아시나요?

사실 저는 스리랑카를 가기 전까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의 건축을 보고 반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의 건축이라고 전부 다 좋은 것은 아니에요. 이건 정말 별로라고 생각되는 건물도 있거든요. 그는 상당히 많은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한마디로 다작을 한 건축가거든요. 제 생각에는 닥치는대로 건물을 지었던 것 같아요.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 1919 - 2003)


저는 사실 스리랑카에 건축을 가르치러 갔습니다. 그래도 잘 산다고 알려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파견되어 못 산다고 알려진 인도 밑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2년을 지낼 기회를 얻었거든요. 무슨 저개발국가에 훌륭한 건축이 있겠어..라고 저는 생각했더랬죠. 제가 가진 지식으로 현지인에게 건축과 관련된 신지식을 알려주러 온 셈이었습니다. 



참 오만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죠. 그러나 바와를 만나고 전 깨닫게 됩니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곳의 건축이 얼마나 오만함의 극치였던가를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단정지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사니까 모든 것이 나을 거라고 말이죠. 바와의 건축물 안에서 전 이제까지 배워왔던 건축적 지식을 의심했습니다. 이렇게 작고 못사는 나라에 우리가 원하던 그런 건축을 발견했기 때문이죠.


오만을 벗고 오지의 건축을 만나게 한,
제프리 바와를 소개합니다.



그래요,

당신이 맞았어요.


그의 작품 중에는 별로이거나 쓸모를 잃어버리고 망가진채 버려진 작품도 많죠. 혹은 훌륭한 건물이 맞지만 새로운 자본에 의해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헐린 건물도 있고요. 그러나 몇 작품은 정말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고 사람을 설득시키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려는 메세지는 간결합니다. 쉽게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나 그 간결함은 참 매혹적입니다. 나는 제프리 바와의 건축에 쉽게 동화되어, 그의 의견에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렇지...맞아, 당신이 맞아!"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내뱉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건물을 

사랑해요


바와, 당신의 건물로 가는 오솔길을 사랑합니다. 당신에 대한 기대를 져버리게 만들거든요. 그 작고 형편없는 길을 걷는 동안, 허허벌판이 등장하고 작은 곤충을 만나고 열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을 만나요. 그리고 스리랑카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도 마주치게 되죠. 때로는 그저 수없이 많은 나무들만 지루하게 지나쳐가게 만들기도 하죠.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템플 트리의 정신없는 나뭇가지들도 좋아요. 그 나무를 그저 한동안 말없이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뭐랄까? 내 머릿속 오만가지 사념들이 뻗어나온 줄기들을 바라보는 것만 같이 느껴져요.

 



당신이 만들어 놓은 허물어져 가는 담장과 철재 문도 좋아요. 이젠 당신이 만들었다면 다 좋아지는 지경에 도달했나 봅니다.




그 날의 하늘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수영장에 가득한 물은 정말 아름답더군요. 자연이라는 벌판에 거대한 거울을 놓아 둔 것처럼 하늘이 땅으로 스며드는 환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좋았어요.




쓸모 있는 공간보다 쓸모가 없는 공간이 더 많은 카페가 좋아요. 그 쓸모 없는 공간이 주는 여유에 시선을 빼앗기기 때문이죠. 사실 그 쓸모 없는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거 같네요.




성모 마리아 상과 부처 상이 공존하는 거실이 독특해요. 뭐랄까...종교를 그저 하나의 예술품으로 취급해버리는 당신의 종교관이 좋아요. 




건물의 안에 있으면서도 자꾸 밖으로 향하게 만드는 당신의 능력, 그게 진짜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당신의 요구사항인 것을 압니다. 맑은 하늘을 담은 호수, 나무를 향한 거실, 마당에 심어진 나무들... 이 모든 것에서 따스함을 느껴져요.




오지 건축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잃어버린 가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바와의 건축


제가 가지고 있었던 오지 건축에 대한 편견을 제프리 바와는 보기 좋게 깨뜨려 주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선진 건축에 대한 헛헛함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배울 점은 그 오지라는 곳에서도 존재함을 깨달았습니다. 오만한 현대의 건축가들이 배울점이죠.


현대 건축은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또한 잃어버린 가치들도 그 양에 비례할 만큼 많습니다. 

제프리 바와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 순수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정확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알쏭달쏭한 힌트를 하나 건진 것에 불과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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