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일상
토요일에 사무실에서 푸닥거리를 했더니 심신이 노곤하다. 베이비들과 마무리는 잘 되었지만, 마지막에 한 가지 깨달았다. 가격을 너무 심하게 제안한 것 같다. 물론 나도 정신이 없고, 본사도 정신이 없고, 베이비들은 하기 바쁘고. 한편으로 한심하고, 한편으로 가능성이 올라갔다는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어쩔 수 없다. 그 때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진인사대천명이지.. 설마 눈까리를 혁명적으로 뜨고 불벼락을 내릴 일은 없을 것도 같은데.. 미래는 알 수가 없다. 새옹지마가 되면 참 좋겠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길 가다 본 저 삽질금지 심벌이 생각난다. 위에 벼락이 있는 걸 보면, 삽질하면 벼락 맞는다라는 경고인지 삶의 경구인지 그렇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 나서 밥 잘 먹고 주인님이 명하신 청소 대기를 했다. 피곤하다고 점심 먹고 하자더니 가을바람이 불어선가 다시 얼른 하라고 한다. 인생 타이밍이다. 주말에 말씀하시면 착착 들어야지, 호랭이 콧털 뽑으면 고난의 행군만 다가온다. 그럼 그럼. 주인님은 도와주시는 것이고, 나는 도움 받는 것이고 그렇지. 혹시라도 내다 버리거나 누굴 줘버리면 내 마음만 속상한 일이다.
뭔가 스멀스멀 많이도 나온다. 주인님이 플라스틱 박스를 5개 샀다. "아이고.. 택도 없네, 5개는 더 사야겠네"라는 깊은 한숨이 나오신다. 이럴 때 군말 없이 열심히 정리하는 게 장땡이지.
오~ 4888 잘 있었구먼! 노란 집도. 저걸 철 지나 구하려고 애를 썼던 거 같은데. 20년이 지나도 모델번호가 착착 기억이 나다니 그 시절에 열심히 하긴 했구나. ㅎㅎㅎㅎ
4404는 박스가 조금 찌그러기진했지만 상태 좋게 잘 살아있네. 만들고 나면 허약하지만 노란색 Range Rover. 명작 크리에이터 시리즈인데. 나머지도 어딘가에 있겠구나. 하여튼 열심히 정리하는 모습을..
빨간색 기차역은 구하기 어렵지만 노란색 기차역이라도 구한 게 어디냐 했던 기억이. 4403도 찾았다.
기차레일을 이렇게 사두었던가?? 기차가 어디에 있지??
12V는 집구석에만 두었는데 그다음에 나온 기찻길도 많이 있구나. 넓은 터에 기차 돌리면 참 좋을 텐데..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얼추 마무리하고, 정리해서 창고에 넣고, 빈 박스는 재활용에 갔다 두었다. 다음에 마나님이 박스를 또 사시면 정리를 해야겠다. 이렇게라도 해야 집구석에 있는 레고를 보며 '말 안 들으면 내다 버린다', '조용히 사라지면 내가 판 줄 알아라'이런 압박이 읎다. 요리조리 잘 정리해서 넣는 것을 보며 기가 막힌 지 '참나 박스 정리는 기가 막히게 하네'라는 탄식인지 탄성인지를 들었다. ㅎㅎㅎㅎ
일명 미스박 레고 저금통이 무지개색으로 나왔다. 이건 당근에 무료 나눔이라도 해야겠다. 주인님이 하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더니 "박스도 좀 닦고"라며 잔소리를 한다. 뜬금없이 쇼핑백을 하나 주네.
다 정리하고 돌아보니 30대는 아이들 생기고 레고하고 일하고, 40대는 애들은 크고 책일고 일하고, 50대는 글쎄다. 뭐 어떻게 되겠지. 힘들어서 삽질은 안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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