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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Oct 16. 2019

베를린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가장 완벽한 방법 2

GERMANY

I love you, Berlin


 사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가’ 혹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에 임하는가’에 관해 배우고 싶어서다. 그래서 나는 여정의 대부분을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는 데 보내곤 한다. 일종의 사람을 여행하는 셈인데,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베를린은 ‘사람 여행’하기에 아주 적합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각기 다른 인종이 한데 섞여 내뿜는 자유분방한 에너지와 더불어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가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제2의 뉴욕으로 불릴 만큼 190여 개국의 다인종이 살고 있어 서로의 울타리를 존중한다. 타 인종에 관한 편견, 차별이라곤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 도시는 누구나 자신의 개성을 지키면서도 사회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여행자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목적지의 낯선 느낌을 완전히 지워내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적어도 이방인으로서의 고독감은 덜 느끼게 된다. 모두가 이방인이고, 모두가 이방인이 아니라고 할까. 무엇이 이들을 자유케 하는가. 이곳 사람들은 다채로운 외양만큼이나 삶의 모습도 저마다의 결을 지니고 있다. 다들 어쩜 그렇게 다르게 사는지 참 놀랍다. 특히, 취최몇(취미 최대 몇 개)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다들 여가를 즐기는 방법을 매우 잘 알고 있다. 본업만큼이나 여가 생활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덕분일까?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찾기가 힘들 만큼 ‘취향의 세분화’가 무척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간 내 안에서 다양성으로 정의 내려왔던 것들이 계속해서 확장되는 것을 시시각각 느꼈다.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베를린,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Freitag, Friday


1. 하우스 슈바르첸베르그(Haus Schwarzenberg)

베를린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다 보면 키노(Kino)라고 쓰인 간판을 한 번쯤은 보게 될 것이다. 독일의 영화관은 모두 키노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불리는데, 우리나라의 멀티플렉스 영화관과는 다르게 하늘 아래 같은 키노는 없었다. 그중 하우스 슈바르첸베르그(Haus Schwarzenberg)에는 극장과 더불어 카페, 갤러리, 박물관까지 한데 모여있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거리를 지나 입구로 들어서니 난데없이 작고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미로 같은 건물 구조가 여행자의 모험심을 마구 불러일으킨다. 이외에도 베를린에는 프라이루프트키노(Freiluftkino), 즉 오픈 에어 시네마가 도심 곳곳에 위치해있다. 자막은 영어인 경우가 대다수라고 하니, 선선한 여름밤 공기를 쐬며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2. 박물관 섬 그리고 베를린 돔(Museumsinsel and Berliner Dom)

S반 하케셔 마르크트(Hackescher Markt) 역에서 마켓 반대방향으로 걷다 보면 저 멀리 푸르스름한 돔이 보인다. 시선을 빼앗는 고고한 자태에 분명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일 거라 생각했는데, 베를린 돔(Berliner Dom)이었다. 우아한 금장 십자가와 오묘한 녹빛 돔의 조화를 보고, 마음속으로 환희의 비명을 내질렀다. 천사가 오르간 연주에 맞춰 축복의 언어를 속삭일 것만 같다. 이 아름다운 성당의 내부는 더욱 볼만하다고 하는데, 박물관 섬을 찬찬히 둘러보려면 체력을 비축하기를 바란다. 프리드리히 다리를 건너면 박물관 섬에 닿게 되고, 이곳엔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박물관이 여럿 존재한다. 구 국립미술관부터 신 박물관까지. 지친 다리를 쉬게 만들 세련된 정원도 함께 있으니, 맘껏 둘러보시라.


3. 몽비주 다리(Monbijou Bridge)
만일 베를린에서의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내가 선택할 장소는 바로 이곳이다. 베를린의 마법 같은 장소, 몽비주 다리(Monbijou Bridge). 몽비주 공원에서 강가 방향으로 걸으면 나오는데, 여름 시즌이 되면 작은 무대에서 살사 댄스파티가 열린다. 살사 삼매경에 빠진 댄서들 주위로는 노천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금요일의 오후를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고, 제 몫의 일을 다 해낸 태양도 점점 기울어간다. 노을 아래 백발의 할아버지가 안경 낀 수줍은 아가씨와 격정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이 도시가 가능하게 만드는 삶의 모습은 어디까지일까. 과연 그 한계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는 순간이었다. (살사에 참여하고 싶다면? https://www.theater-museumsinsel.de)


Samstag, Saturday


1. 카촌데오, 모토 서점, 코바 바(Cachondeo, Motto berlin)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U반 Schlesisches Tor역에는 그 유명한 버거(Burgermeister) 집이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야 할 곳은 정작 따로 있다. 바로 카촌데오(Cachondeo) 피자가게. 충격적으로 맛있었던 이 식당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맛 표현을 아무리 해도 모자라니 직접 경험하길 바란다. 이곳의 위대함은 혀로 느껴야 한다. 향긋한 루꼴라와 진한 치즈, 상큼한 토마토소스의 조합은 피자의 정석이다. 피자를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대충 꾸민듯한 인테리어에 웃음이 난다. 식당 본연의 목적에만 충실하겠다는 것인가. 사실 이곳의 피자 한판은 여자 혼자 먹기에 매우 과한 크기라, 1/3이나 남겼다. 그래도 합리적인 가격이기에 전혀 아깝지 않다. 바로 옆에는 모토 서점이 있다. 요즘 서울에 책방이 많이 생기고 있어 좋았는데, 모토 서점 분위기도 서울의 그곳들과 다를 바가 없다. 차분하고 적막한 공기가 그저 평화롭다.


2. 클럽 베억하인, 워터게이트, 킷캣(Berghain, Watergate, Kitkat)

가까운 유럽 나라에서 오로지 클럽을 위해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베를린은 클럽 문화까지 매우 발달해 있다. 그중 가장 명성이 높은 클럽은 바로 베억하인. 무려 4층이 넘는 거대한 규모인 데다 한 번에 입장하기가 쉽지 않다. 문지기의 기분에 따라 통과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구글에는 문지기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의 글이 넘쳐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의 착장을 하고, 혼자 줄을 서서, 독일말을 내뱉으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던데. 믿거나 말거나.


슈프레 강가에 위치한 워터게이트는 마치 크루즈를 탄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다. 통유리 밖으로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춤을 출 수 있고, 오픈 덱에서 강바람을 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킷캣의 드레스코드는 그 여느 클럽보다 재미있다. No dress, 말 그대로 전신 나체(?)도 환영한다는 이곳. 남성은 반드시 상의를 탈의해야 한다. 이러한 콘셉트 때문인지 살면서 가장 많은 게이 커플을 보았다. 내부 또한 매우 독특하다. 클럽 안에 수영장과 그 위로는 그네가 있다. 물이 더러워 보이니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는데, 여기서 만난 영국인 친구가 나를 잡아끄는 바람에 물에 빠지고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즐기기 위해 그네도 타보았다. 개구쟁이 아이처럼 놀든, 곡예단처럼 타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 곳 모두 테크노 음악을 틀고, 내부 촬영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사진을 남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내가 자유롭게 놀기 위해 그리고 타인의 사생활 존중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규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부에 있던 스티커 사진기로 사진을 찍은 것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경험한 베를린 클럽의 또 다른 공통점은 다수의 휴식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앉거나 눕거나, 원하는 대로 마음껏 쉬어갈 수 있는 곳이 꼭 있다. 지칠 틈조차 주지 않는 천국인 건가. 베를린의 주말은 이곳에 맡겨야겠다.


Sonntag, Sunday


1. 마우어 파크(Mauerpark)

볕이 유난히도 쨍하고 깊은 날이었다. 간밤의 숙취로 고생한 몸이 상쾌한 햇살에 치유를 받는 순간이었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마우어 파크(Mauerpark)까지 온 이유는, 오직 일요일에 큰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여느 유럽의 마켓답게 의류, 장신구, 소품, 먹거리가 즐비해있다. 나는 입맛을 당기는 신선한 과일주스와 터키 요리 쿰피르를 받아 들고, 잔디밭에 주저앉아 버스커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공원 주위로는 양질의 빈티지 가게가 굉장히 많으니, 온 김에 함께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2. 문화 양조장(Kulturbrauerei)

베를린에는 공간 활용의 좋은 예가 끝이 없다. 프렌즐라우어베어크(PrenzlaurerBerg)에 위치한 쿨투어 브라우어라이(Kulturbrauerei)는 본래 오래된 양조장이었으나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에 의해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 건물 외형은 유지하되, 현대의 편의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요즘 베를리너 사이에서 핫하다는 장소답게,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때마침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가볍게 둘러보려고 들어갔는데, 동서독의 통일 당시를 담아낸 전시였다. 사진 속 무수한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통일 후에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어려있었다. 남의 일 같지 않는 이야기에, 사진 한 장 한 장을 쉽사리 지나치기 힘들었다. 베를린이 뿜어내는 자유의 분위기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겠지. 진정한 자유, 공존 그리고 사회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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