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뜨거운 여름이었다. 왼쪽 옆에서는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고, 오른쪽 옆에 한 사람은 코를 박고 노트북을 보고 있다.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는 것일까. 척추측만증이 올까 걱정된다. 보아하니 포토샵으로 사진을 수정하고 있었다. 아, 자세히 보니 한국 연예인이었다. 아, 연예인들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분이시구나. 팬일 수도 있고, 관련 업 종사자일수도 있겠지. 그런데 느낌이 아무래도(주관적인 판단임) '찍새'같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찍으러 해외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뇌피셜)
어찌 보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찍기) 해외를 누비는 그녀가 내심 부러웠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조금 더 멋지게 나오기 위해서 그녀는 사진을 이리저리 고쳤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면 목하나 정도야 줄 수 있다는 힘든 자세로 노트북에 몰입했다. 사진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기를 여러 번... 내가 곁눈질로 봤을 때는 다 똑같은데... 아직 부족한지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클릭을 이어간다. 정말 쉴 새 없이 마우스를 눌러댔다.
뭔가에 열심인 모습을 보면서 새삼 '좋아하는 것을 하는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장점이 많다. 첫 번째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옆에서 포토샵에 열중인 그녀는 내가 잠에 들 때부터 시작했으니 족히 2시간은 했다. 누가 시킨 일이거나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아마 비행기 타기 전에 끝냈거나, 출근하면 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모습이 참 멋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은 점 두 번째는 '인생을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표정이 좋다. 그녀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몇 시간이고 볼 수 있다. 표정이 나쁠 리가 없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계속 발사한다. 인간의 상태나 감정은 얼굴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힘들면 찡그리게 되고, 기분 좋으면 웃기 마련이다. 중년 이후에 본인 얼굴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세 번째는 '인생이 꽉 찬다' 지루할 틈이 없다. 하루가 모자란다. 연예인 일정표 따라 이동도 해야지. 새로운 앨범 사려면 돈도 열심히 모아야 한다. 자기가 하는 일도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남으면 유튜브나 텔레비전으로 그들의 일상이나 공연을 볼 것이고,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의견과 시간을 공유할 것이다. 조금은 부러운 인생이다. 어찌 보면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살면 되지 왜 나는 이렇게 살지 못하는 걸까? 내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부모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일까? 어쩌면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걸까? 혹은 알아도 돈이 안되거나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걸까? 이런 고민은 '용기'의 문제일까? '책임감'에 대한 영역일까? 혹은 나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의 영역일까?
자기만의 삶을 개척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인새를 만끽하는 사람도 많다. 그 사람들과 나의 차이는 뭘까? 나는 그저 인생을 숙제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해 보게 된다.
인생을 숙체처럼 산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고민해봐야 한다. 숙제는 언제 끝나는 것인가? 내가 끝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숙제하기 싫다고 밥벌이도 안 하면 안 된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한다. 그저 최소한의 책임도 안 하고 모든 걸 때려치우는 건 내 스타일과 맞지 않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 하지만, 내 발과 내 의지로 걸어간 곳에는 필시 천국이 있다. '남에게 잘 보이는 것'은 말 그 자체로 얼마나 허망한다. 얼마나 가벼운가. 그저 나의 삶에 집중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 된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간에 말이다. 대신, 내 마음이 시키는 곳으로 가야 한다. 세상에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힘들면 쉬면 된다. 내가 약한 게 아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말한다. 네가 이렇게 눈물 흘리고 있는 것은 네가 약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힘든 일이 더 많다. 강해져라. 하지만 내가 약한 게 아니다.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남의 인생을 살 것인가. 나의 인생을 살 것인가. 팔자보다 중요한 건 나의 마음가짐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 것인지 정해야 한다. 무슨 선택을 하든 중요한 건 태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몇십억 명의 사람 중에 그저 한 생명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저 숨이 붙어 있는 한 먹고, 자고, 사랑하고, 일하고, 쉬고, 웃으면 된다. 지구에서 봤을 때 나는 그저 하나의 점이다. 그리고 해외여행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어떻게든 인간은 산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게 되어 있다. 내가 느끼는 작은 고통도 지구에서 봤을 때는 하나의 정말 작은 하나의 진동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작은 진동을 크게 해석해서 상실에 빠져 있을 이유도 없다.
비행기에서 만난 거북목 귀인 덕분에 많은 걸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보면 많은 영감을 받는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귀인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