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유명한 영어학원에 레벨테스트를 보러 갔다.
어머니와 함께 도란도란 손잡고 갔었다. 그 어학원은 형이 이미 다니고 있었던 곳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그냥 해맑게 학원을 찾았다.
학원에 도착하니 레벨테스트실에서 실력 테스트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풀었다.
다행히 객관식이 많아서 어려운 건 과감하게 찍기도 했다.
테스르를 보고 나오고 채점을 해주셨다. 채점을 해준 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 낮은 반부터 시작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직원이 하는 말은 '아드님은 레벨이 너무 낮아서 우리 학원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고, 시간이 몇 초 지나고 나니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이 따라왔다.
'응? 내가 돈 내고 학원 가겠다는데 학원이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고?'
이게 무슨...?
어머니도 당황한 눈치였다. 형은 이미 그 학원에서 높은 반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시면 어머니는 나가자고 하셨다. 집에 가는 길에 나를 많이 위로해 주셨던 것 같다.
그날 하루는 참 슬프고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그날 이후로 영어를 미친 듯이 하지도 않았다.
벌써 레벨테스트를 본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 보면 충격이 많이 컸었나 보다.
학원이나 공부에는 레벨테스트가 있다. 사실 수능도 레벨테스트다.
우리나라 입시상 줄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의대와 스카이대학교는 정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중간, 기말고사로 테스트받고
학원에서도 매번 레벨테스트를 받아왔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레벨테스트에 익숙하다.
하지만 문제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우리 스스로 레벨테스트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졸업 후에 레벨테스트는 없어졌다. 애초에 레벨은 없다. 그냥 다양한 삶의 형태만 있을 뿐이지.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레벨을 테스트한다.
사는 집, 타고 다니는 차, 연봉 등으로 스스로 레벨테스트를 하고 상, 중, 하에서 중에 들어가면 편안함을 느낀다. 평생 '상'에 들어가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인생에서는 레벨 테스트가 없다. 단지 스스로 생각하는 레벨만 있을 뿐. 스스로 올리는 레벨만 있다. 남과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익숙한 레벨테스트에서 벗어나서 자기만의 속도와 자기만의 방향으로 살아야 한다.
이제 레벨테스트에서 벗어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