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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문연 Aug 09. 2018

두 번째 계약금을 토해내다.

자기 중심을 잡는 것 VS 고집을 부리는 것

출판 에이전시를 통한 원고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저자인 나와 출판사는 에이전시 에디터를 통해 대리(?) 소통을 해야 했고 에이전시 에디터는 나와 출판사 양측의 입장을 책 출간의 선로에서 이탈하지 않게끔 다듬어(?) 전달하기에 바빴다. 어렵게 얻은 기회였기에 가급적 출판사 쪽의 요구를 들어주고자 야금야금 들어왔던 수정 요구를 더 이상은 못하겠다 마음 먹었던 것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원고를 모두 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듣고나서였다.


처음에는 원고의 구성을 바꿔 1장에 들어가는 ‘스타일은 나다움이다’에 대한 10꼭지를 다른 챕터에 나눠 넣는 것으로 내용을 좀 가볍게 하자는 거였다. 그래 처음부터 글만 구구절절 들어가는 것이 기존의 스타일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성이라 이해는 갔다. 책출간에 대한 모든 비용은 출판사에서 지불하는 것 아니던가. 그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스타일링 팁과 연예인 이미지를 더 많이 넣자고 했다. 


그 동안 블로그에 썼던 스타일링 팁을 넣어야 20대 독자들을 잡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계약할 당시에 분명히 주요 타겟층이 30대 여성이라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독자층은 점점 어려지고 있었다. 게다가 30대 여성들을 위한 멋스러우면서도 실용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계약 당시의 대화는 나만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남성 독자까지 염두해 원고를 추가했으면 좋겠다고 목차 재구성본을 보내왔다. 


에이전시 에디터는 출판사에서 잡은 컨셉 원고가 ‘멋남’이라는 쇼핑몰CEO가 출간한 스타일북이라고 했는데 이미지가 많고 트렌디한 아이템을 소개하는 책으로 내가 내려고 하는 책과는 거리가 좀 있는 책이었다.


자기 중심을 잡는 것과
고집을 부리는 것.


이 두 가지의 명확한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 처음 계약할 당시에 출판사 쪽에서 책의 컨셉이 저렇게 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면 나는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2시간의 소개팅에서도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는데 20분도 이야기 나눠보지 않은 채 덜컥 계약을 한 것이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이랄까. 계약한지 한 달만에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버렸다. 


한 일주일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스스로도 많이 생각해봤다. 어떤 분은 첫 책은 그냥 내고 두 번째 책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출간하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내가 마냥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인가. 이런 기회를 걷어차 버리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길을 걸어가면서, 밥을 먹으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첫 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면,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이 아니라면 책을 내더라도 즐겁지 않겠다 생각했다. 나에게 책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공유하는 것으로 독자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도구이자 스타일 코치라는 사람을 알리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아니더라도 쓸 수 있는 책을 내는 것은 장기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고 나만이 쓸 수 있는 책을 내고자


다시 한 번
계약을 파기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출판사에 의견을 전달했고 계약금을 반납하기로 했다. 그런 다음 출판사 에이전시 대표한테 이 사실을 전했는데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계약서를 찾아보니 마지막 페이지에 계약을 파기할 경우 에이전시에 출판사 계약금보다 더 많은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조항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젠장. 젠장젠장젠장!!! 


나의 고집이 비용으로 치환된다면 나는 부자가 되었을 터인데. 많이 화딱지는 났지만 역시 나는 나의 권리 운운하면서 위약금을 안 주고(계약할 당시와 다른 수정 요청 사항은 계약 파기 요인이 출판사에도 있음을 주장해보는 바) 버틸 논리적 능력이 없으므로 또 다시 ‘에라이 먹고 떨어져라’. 


나는 다시금 망망대해 독고다이 섬이 되었다.      


초보 저자의 한 줄 생각


저자의 성향은 책 출간 여부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나만 그런가? 쳇, 흥, 칫, 뿡.) 어떤 이에게 첫 책은 두 번째 책을 위한 가벼운 에피타이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첫 책은 메인 디쉬였다. 나는 입맛도 저렴한데 내 입맛에 맞는 선택은 왜 이렇게 까다로운 건지 모르겠다.



* 이 매거진의 글은 2013년 출간한 ‘스타일, 인문학을 입다’란 책의 3년간의 출간 과정을 담은 에세이(2015년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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