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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Sep 27. 2016

가을에 걷는 런던과 파리 거리 #1

짧은 주말 동안의 나홀로 식도락 유럽 나들이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나는 사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여행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가족들도 그다지 여행을 가지 않는 편이었고, 전형적인 집돌이어서 계곡이나 바다를 가더라도 컴퓨터와 침대 그리고 책이 있는 집이 훨씬 편하였다. 잠시 즐기다가 사라지는 여행보다는 물질적으로 남는 전자제품이나 책 같은 것에 돈을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쪽이었다. 산과 바다에서는 이야기를 느끼기 힘들었지만 책과 글에는 이야기와 줄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여행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미국에 7년 전 처음 정착한 시카고라는 도시에서였다. 시카고는 여러모로 신선한 도시였다. 1871년 대화재로 인해서 도시 대부분이 불타고 나서 세계 각지의 건축가를 불러 모으고 그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의 건축물들로 도시를 재건하였다. 이는 시카고 건물들을 매우 특별하게 만들고 건물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게 되었다. 시카고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러한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길을 걷다 건물에 무작정 들어가서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그 건물과 관련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하였다.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 되었을 때 살아남아서 시카고의 상징 중 하나가 된 Water Tower


결혼 반지와 닮았다 해서 Wedding Band라는 별명이 있는 311 Wacker Dr.



시카고 근교 Oak Park에 있는 유기적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집과 스튜디오.


 이러한 이야기와 문화들을 눈앞에서 느꼈을 때 받은 충격은 책과 글로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마치 뮤지컬을 본 것처럼 생생하고 흥미로웠다. 어떤 사람은 휴양을, 어떤 사람은 랜드마크를, 어떤사람은 문화체험 중심으로 여행할 때에, 나는 한국에서 자라온 나의 생각과 다른 점을 찾고 비교하며, 그 배경과 이야기를 찾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 7년간 미국 40개 주를 돌며 각 여행지마다 역사와 문화, 관습을 살피고 느끼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불어 학창 시절 그렇게 싫어하던 경주와 안동을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로 꼽게 되었다.




런던과 파리로

    

아쉽게도 유럽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정규 휴가는 주로 한국에서 보내고, 언어도 통신도 불확실한 외국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불안하였기 때문에 대부분 미국 내에서 여행을 다녔다. 그러나 이번엔 어쩐 일인지 모든 상황이 유럽을 한번쯤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속삭이고 있었다. 신용카드 회사에선 파리 호텔을 거의 무료로 제공해주었고, 파리행 비행기는 매우 비싼 대신 런던행 새벽 비행기는 매우 저렴했다. 유럽 간 고속 기차인 유로스타도 마침 세일하고 업무와 환율 시장은 앞으로 올 일본 금리 정책 발표 전이라 조용하였다. 매니저에게 조심스럽게 유럽을 한 번도 못 가보았다고 하자 흔쾌히 이틀 쉬고 오라고 하셨다.


혼자서 여행을 하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의 목표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그저 도시를 느끼고 그 도시의 특징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음식과 고급 음식 모두를 먹고 오는 것으로 정하였다.




JFK의 3번 터미널에 도착하자 영국 항공의 게이트가 보였다. 영국 항공의 제복과 영국식 영어 발음을 들으니 벌써부터 런던에 온 기분 같아 묘하였다. 영국 동료들과 일을 해보았지만 영국 사람들에게 둘려 쌓이는 건 처음이었다. 뉴욕 - 런던 노선은 금융의 중심 노선답게 금융권에서 일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은 듯하였다. 내 왼쪽 자리에 앉은 여자는 CFA Level 3을 공부하고 있었고 오른쪽 여자는 정장을 빼입고서 노트북에서 재무제표를 훑고 있었다.


런던에 내리자마자 향한 곳은 숙소가 있었던 첼시(Chelsea) 근처였다. 날씨가 생각보다 추워서 가져간 반팔티나 셔츠는 하나도 입지 못 하였다.



뉴욕의 첼시나 웨스트 빌리지 느낌과 흡사했다. 영국 시내의 첫인상은 '정말 깨끗하다'였다. 첼시는 부촌에 속하는 편이라 뉴욕 소호나 Bleecker 길처럼 작고 예쁜 패션 매장들과 바들이 즐비해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런던은 뉴욕과 비슷하다고 했지만 오히려 여러 가지 다른 점을 찾는 것이 또 다른 재미였다.


당연 처음 눈에 들어온 다른 점은 좌측 통행인 차량들.


마차 시대에 오른손으로 고삐를 쳐야 하기 때문에 인도에 있는 사람에게 덜 위험한 좌측통행을 택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러한 좌측통행에 익숙지 않은 관광객을 위하여 바닥에 우측을 조심하라는 표시가 많이 있었다.



런던의 도로 표식들은 뉴욕과 다르게 굉장히 정돈되고 통일되어 있었다. 규격화된 표지판과 도로 사인이 모던함과 깔끔함, 안정된 분위기를 주었다. 특히나 선과 폰트가 굉장히 굵은 미국의 도로 표식과 다르게 얇은 선과 얇은 폰트, 좁은 자간, 곡선과 지그재그선들이 모던 아티스틱함을 보여주었다. 미국식이 강하고 파워풀한 메시지 전달이 목적이라면, 영국식은 정중히 권하는 느낌이랄까.




하얀색 길 이름 표시나 지하철 표시도 멋진 모습이었다. 현대 미술의 메카인 런던이 추구하는 도시상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깔끔하고 특이하지만 일관된 모습. 게다가 이러한 도로 사인은 주로 벽돌 위에 부착되어있어서 더욱 통일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영국 국기의 색인 붉은색과 하얀색 그리고 약간의 파란색이 주된 테마였다.



거리를 감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 해가 지자 Yelp로 근처에 있는 적당한 바를 찍어서 갔다. 어디든 LTE와 구글지도, Yelp, 우버가 되는 테크 시대가 참 고마웠다.

 


Sophie's Steakhouse, Chelsea
311-313 Fulham Rd, London SW10 9QH, United Kingdom  
sophiessteakhouse.co.uk
£10 ~ £30


악명 높은 영국의 음식을 시식한다는 생각에 조금 긴장하였다. 피시 앤 칩스를 시키려다 스테이크 집인 만큼 참치 스테이크를 시켰다. Yelp에서 파운드 표식 3개짜리 식당이라 조금 걱정 했는데 그다지 비싸진 않았다.



큰 기대는 없었는데 꽤나 맛있었다. 개신교 문화권 음식들이 가지는 수수함이 전체적으로 양념과 간을 약하게 하여서 담백함을 주었다. 그리고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빈 맛을 과카몰리가 잡아주는 느낌. 무엇보다도 프로세코가 저렴했다. 한 잔에 3파운드!


프로세코를 마시며 첼시 길거리의 젊은이들을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편안히 누워서 회사 이메일을 체크하려 노트북을 켜려 했으나... 아뿔싸, 콘센트가 맞지 않았다. 유럽용 어댑터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어댑터를 구입하려고 편의점을 검색해보았지만 런던에는 편의점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나마 걸어서 20분 거리에 식료품 마트인 Tesco 24시가 있길래 거기라도 가보자는 생각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역시나 식료품 밖에 팔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숙소로 걸어오는데 뉴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Deli(한국식 슈퍼) 같은 느낌의 간판들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러한 Deli에 전자제품 부스가 항상 같이 있었다. 아마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한 가게인 것 같았다. 보통 영국 사람은 새벽에 일하지 않는데 아랍계나 인도계 사람들이 틈새시장으로 편의점처럼 운영하는 것 같았다.


들어가서 컨버터를 달라고 하자 그는 10파운드를 불렀다. 아차, 현금이 없다. ATM도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다길래 결국 나는 수중에 있던 15달러에 팔라고 딜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구글 환율로 현재 환율이 1.3:1이니까 네가 이익이라고 설명하면서 말이다. 마지못해 알겠다면서 달러를 불빛에 비추어서 가짜가 아닌지 확인한 뒤에야 나에게 컨버터를 넘겨주었다. 파란만장한 새벽을 보내고 나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제일 먼저 약간의 현금을 파운드로 바꾸었다. 어제 같은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직업상 매일매일 수천억치 파운드를 거래를 하는데도 실제 파운드화를 손으로 만져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나 브렉시트가 얼마 전이어서 더욱.





아침 첫 일정으로 런던의 금융 중심가 Bank역 주변 지역을 가기 위해 전철을 타러 갔다. 런던의 전철역은 뉴욕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시설이 좋은 편이었다. 나는 일일 이용권을 5 파운드 쯤에 구입하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런던에 있는 전철은 Tube라고 하기도 하는데 타고나니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전철 모양이 꼭 튜브처럼 동글동글하였다. 보기엔 귀여웠지만 내부가 좁아서 꽤나 불편하였다. 우리나라나 뉴욕 전철 크기의 반 정도인 것 같았다. 키가 큰 사람은 허리를 숙여야 할 듯 싶다.



런던은 어딜 가나 굉장히 깨끗하였다. 뉴욕과 비슷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굉장히 딱딱하지만 정갈하고, 포맷과 질서를 중요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섬나라라서 그런지 일본의 느낌도 어느 정도 보였다.


분주한 리버풀 역


나는 도시마다 꼭 하는 버킷리스트가 하나 있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칵테일을 한잔 먹는 것이다. 보통 전망대가 있기 마련이지만 전망대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시카고에서도 윌리스 타워(구 시어스 타워) 전망대보다는 존 핸콕에 있는 바를 더 좋아했다. 가격차이도 나지 않는다.


런던에서도 마찬가지로 런던이 한눈에 보이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고 전날 여러 군데 전화하여서 예약하였다. 하지만 나는 영국이 보수적인 나라라는 것을 간과하였다. 전망이 있는 고급 라운지나 식당들은 정장이 아니면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하물며 반바지를 입고 있는 나는 물어볼 틈도 주지 않았다. ZARA에 가서 바지를 살까 하다가 꾹 참고 근처에 있는 Andaz 호텔 식당에서 연어 베이글로 아침을 때웠다. 계란과 연어는 워낙 좋아하는 것이라 맛있게 먹었지만 조금 짠 게 흠이었다.



Eastway
Andaz London Liverpool Street, Andaz London Liverpool St,
40 Liverpool St, London EC2M 7QN, United Kingdom  
eastwaybrasserie.co.uk  
£15~£20




런던의 금융 거리는 월스트리트나 여의도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마천루와 유리 건물들로 꽉 찬 다른 나라 금융 거리에 비해 낮지만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았다.



뱅크 스테이션 근처에 있는 런던 지사를 방문하였다. 뉴욕 본사에 비해 조그맣지만 수수하고 깔끔한 모습이 런던 도시의 가치를 사무실에 반영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런던 오피스에서 일한 지 6개월 된 신입사원 스테판이 오피스 안내를 해주었다.




사실 이틀은 런던의 랜드마크들을 보기에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랜드마크들 보다는 런던 거리를 거닐며 분위기를 느끼는데 집중하였다. 나는 오히려 뉴욕과 공통점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로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이 좋았다.


세인트 폴 대성당이나 런던의 모던아트 박물관인 테이트 모던도 들렀지만 궂은 날씨 탓에 그다지 좋은 사진을 얻을 순 없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과 템즈강


테이트 모던을 지나 템즈강을 따라 걷자 뉴욕의 소호 느낌이 나는 아티스틱한 거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굉장히 힙한 느낌이 나면서도 질서를 지키는 거리와 작품들이 '런던에서는 런던의 룰을 지켜라'라고 외치는 듯하였다. 무질서한 듯 보이면서도 규격과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영국의 상징과도 같은 빅 벤에 도착하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굉장히 특이한 양식으로 되어 있었다. 큰 그림으로는 깔끔함과 수수함을 추구하지만 미시적으로는 정밀함과 화려함 또한 간직한 영국 특유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건물 같았다. 빅 벤도 빅벤이지만 그 앞에 있는 코카콜라 광고를 단 버스도 인상적이다.




런던의 거리는 마치 연륜이 있는 UX 디자이너가 모던하게 디자인한 인터렉티브 웹사이트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곳곳에 있는 직관적이지만 감탄사를 나오게 하는 아름다운 시설들은 도시 전체가 삶의 터전임과 동시에 갤러리 같은 기분이 주었다.




버킹엄 궁전과 트라팔가 광장을 둘러본 뒤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였다. 일반 버스임에도 굉장히 좋은 뷰를 보여주는 2층 버스는 관광의 필수 코스라고 한다. 버스 안이 너무 좋아서 시간만 있었으면 종점까지 그냥 쭉 타고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식당이 위치한 메이페어란 동네는 서쪽에는 하이드 팍, 동쪽에는 트렌드의 중심 웨스트엔드가 있어 고급문화의 중심지라고 한다. 분위기 자체는 뉴욕의 트라이베카를 연상케 하였다.



오후에는 영국에서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계신 사촌 누나께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셨다. 나는 영국의 고급 음식을 한번쯤 맛보고 싶어서 파인 다이닝 음식점 중에 괜찮은 곳으로 예약을 하였다. 우리가 간 곳은 The Connaught Hotel에 있는 Helene Darroze라는 셰프의 미슐랭 2 스타 식당이었다. 그녀는 프랑스 출신 셰프지만 각 지역의 특색과 계절에 맞는 음식을 추구한다고 한다.




Hélène Darroze at The Connaught
Carlos Pl, Mayfair, London W1K 2AL, UK  
http://www.the-connaught.co.uk/mayfair-restaurants/helene-darroze/
Lunch : £50 ~ 80 Dinner : £100 ~ 150





이 식당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 매번 다른 재료가 적혀있는 구슬을 주고서 원하는 수만큼 고르면 고른 재료에 맞춰서 코스를 짜주는 것이다. 고르는 구슬의 개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다양한 재료들이 있었지만 나는 무난한 Scallop(가리비)과 특이한 Grouse(꿩), 그리고 디저트인 바닐라를 골랐다. 서버의 추천으로 사촌 누나는 토마토와 초콜릿을 선택하였다.





메뉴를 고르는 동안 먼저 아뮤즈 부쉬(Amuse-Bouche)가 나왔다.



첫 번째 아뮤즈 부쉬는 피스타치오 크림을 얹은 비프 타르타르, 두 번째는 자몽 버블을 얹은 굴, 세 번째는 바질과 장어를 싼 만두 같은 것이었다. 아뮤즈 부쉬의 맛이 전반적으로 특이했는데, 개인적으로 비프 타르타르가 가장 맛있었다. 굴과 자몽은 신선한 조합이었으나 생각보다 비린 맛을 많이 잡아주지는 못한 것 같았다. 장어는 역시 한국식 살이 도톰한 장어 소금 구이가 최고라 생각한다.



식전 빵에 나오는 버터가 특이하다. 주황색은 가염 버터라 하여 짭짤한 맛이었다. 갓 구운 깜포뉴 빵과 함께 먹으면 굉장히 맛있었다. 아뮤즈 부쉬가 아쉬웠기 때문에 빵을 열심히 먹었다.




다음은 메인 디쉬인 스캘럽과 토마토가 나왔다. 스캘럽에는 버섯과 마늘, 그리고 아몬드와 아몬드 크림을 곁들였다. 무난한 선택이었던 만큼 무난한 맛이었다. 아몬드가 잡내를 잡아주었고 스캘럽의 쫄깃함이 살아있었다. 하지만 복병은 토마토였다. 모차렐라와 토마토만 보면 평범한 카프레제 샐러드를 연상케 하였지만 추가로 호박과 키위가 곁들여지면서 한국적인 느낌의 고소한 맛이 첨가되었다. 육류가 안 들어있는데도 정말 맛있어서 5번 넘게 감탄하였다. 특히나 신선한 토마토가 얼마나 질감이 좋은지 깨달았다.



마지막 메인 디쉬는 푸아그라를 감싼 꿩고기를 웰링턴 스타일로 조리한 요리이다. 웰링턴이란 음식도 사실 처음 들어본 것이었는데,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을 물리친 뒤에 먹었다는 영국 전통 음식이다. 소고기를 빠떼 드 푸아그라로 싸고 그것을 다시 퍼프 페스츄리로 덮어서 익힌 요리라고 한다. 소고기 대신에 꿩으로 조리한 것이라 보면 된다. 서버가 와서 직접 썰어주었는데 맛은 조금 느끼하고 강렬했다. 페스츄리 자체도 느끼한 편이었는데다 푸아그라가 곁들여지니 느끼함이 배가 된 느낌. 다행히 꿩고기 자체는 쫄깃하고 맛있어서 느끼함이 중화되었다. 특이한 영국식 요리를 도전해 보려고 하였는데 역시나 쉽지 않은 것 같다.



디저트는 라즈베리 머랭과 바닐라 크림, 그리고 다크 초콜릿과 초콜릿 크런치 칩이었다. 디저트는 아주 달지도 않고 맛있었다. 특히 라즈베리 머랭의 시큼하고 바삭한 맛과 바닐라의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이 입에서 굉장히 조화롭게 섞였다.


배불리 먹었는데도 런치라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국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도전하려 하였는데 역시나 정통 영국 음식은 한국인 입맛에는 조금 느끼한 것 같았다. 어느 정도 프랑스 식 조리법이 섞인 음식들은 정말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유로스타 시간까지 두세 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영국의 분위기를 주어진 시간에 비해 충분히 만끽한 뒤라 큰 아쉬움은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영국 최대의 백화점인 Harrods에 가서 Afternoon Tea를 한잔하고 킹스크로스 역으로 향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해로즈 백화점은 백화점이 아니라 마치 성이나 정부 기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뉴욕 메이시스보다 더 큰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순위 상으론 부산 신세계가 1위, 메이시스가 2위이니 아마 3등쯤 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게도 과거에 저택이나 성이었는지 매장은 방과 방으로 길게 이어져있었다. 마치 여러 개의 관이 연결되어있는 미술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맛 기행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Harrods에 있는 Afternoon Tea 가게인 The Tea Room을 방문하였다.



The Tea Room
Harrods, 87 Brompton Rd, London SW1X 7XL, United Kingdom
http://www.harrods.com/content/the-store/restaurants/the-tea-room
£ 5~15


원래 영국 귀족들은 점심을 가볍게 먹고 저녁의 음악회와 만찬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럴 때 중간에 허기져서 3시~5시 즈음에 Afternoon Tea라는 간식과 홍차 세트를 먹는게 일상이었다. 아래부터 샌드위치와 같은 식사류, 중간에는 스콘과 케이크와 같은 베이커리류, 맨 위에는 마카롱이나 머랭 같은 디저트류가 있어서 아래서부터 먹는 간식계의 코스요리 같은 느낌이다.


영국식 Afternoon Tea 세트


나는 배가 불렀기 때문에 Afternoon Tea 세트보다는 그냥 차 한 주전자만 시켰다. 우롱티를 좋아해서 대만식 우롱 밀크티를 시켰는데, 차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구나 싶었다.



맛있어서 한 주전자를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한 주전자로 아쉬워서 얼그레이도 하나 시켰다. 하지만 대만식 밀크 우롱티 만큼 맛있진 않았다. 그래도 영국의 차 맛만큼은 알아주어야 할 것 같다.



차를 다 마시고 나서 유로스타를 탈 수 있는 샌 팬크라스 역으로 향했다. 샌 팬크라스 역과 킹스 크로스 역은 마주 보고 있는데 해리포터 팬인 내가 킹스 크로스를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샌 팬크라스 역



킹스 크로스 역


 그랜드 센트럴 느낌의 고풍적인 역일 거라 생각한 킹스 크로스의 분위기는 예상과 정 반대였다. 굉장히 현대적이었다.



줄이 너무 길어서 마법학교 호그와트로 향하는 9와 3/4 플랫폼은 눈으로 본 것으로 만족하였다.


킹스 크로스역 앞 그네. 위험해서 길이를 줄였다고 한다



영국에서의 2일은 짧았지만 정말 즐거웠다. 첼시, 소호 등 지명도 비슷하고 언어와 음식도 비슷한 런던과 뉴욕이지만 보스턴 차 사건과 독립 전쟁으로 변화한 미국인들과 영국인들의 가치관 및 정서 차이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거기다 현실적이고 상업적인 아트의 중심지 뉴욕과 비교해 순수 현대 미술을 추구하는 런던의 예술 정신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서 파리로 향하는 유로스타에 향하였다. 입국 심사관이 벌써부터 봉쥬르로 인사한다. 기분이 참 묘하다. 꼭 다시 올거다. 잘 있어라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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