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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숙 Jul 19. 2016

약자 혐오와 약자의 원한, 그 한계를 넘기 위해

우리가 소수민족의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 <황하에서 천산까지>


 최규석의 '송곳'은 우리 사회 약자와 강자의 구도를 섬세하게 그렸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우리가 '약한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혐오를 느낀다는 것이었다.
약한 것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나약하고, 패배하고, 뒤쳐지는 것들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 불쾌해질 수 있다.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혹여 부담스러운 부탁을 받게 되진 않을까.
무엇보다 약자와 함께라는 사실이 나의 지위나 '격'을 떨어트리지는 않을까. 생각이 복잡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혐오라는 정서는 단순한 미움이나 거부와 달라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눈앞의 약자들을 보려하지 않으려는 마음,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여 없는 셈 치고 싶은 마음은
한국인의 정서에 본능처럼 깔려 있다.

 약자에 대한 혐오는 약자가 가진 원한과 분노의 감정을 왜곡시킨다. '과장된 피해 의식'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약자는 자신보다 약자인 누군가에게 더욱 잔인해진다.
무엇보다 약자가 강자의 위치로 올라섰을 때 그들은 현기증을 걱정하는지 발밑을 보지 않으려 한다.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자신의 약점은 결함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거기에서 생기는 차별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강점에서 오는 이로움이나 명예는 그대로 누리면서 차별을 인정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김진석 교수의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에 따르면 '약자의 원한'이란 창조적 결실을 맺은 뒤에는
어김없이 타락하고 만다는 점에서 약자에 대한 혐오만큼이나 강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약한 자를 혐오하고, 또 그들의 원한은 더욱 강하게 혐오한다.

 이처럼 '약자의 이야기'라면 긍정, 부정을 떠나 과민하게 반응하는 우리들에겐
강자의 역사보단 약자의 역사를 배우고, 공감할 기회가 더 많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치거나, 강박적으로 중립을 견지하는 태도 모두를 경계하며
역사적으로 소수이거나, 약자이거나, 패배한 경험이 있는 이들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기도 학술서도 아닌 '역사 에세이'의 형식을 빌어 차분하게 쓰여진
한 권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본능적으로 약자를 혐오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에
감성적으로 이입하기 좋아하는 내 분별력의 한계를 이 책이 일깨워줬다.  

"우리는 곧잘 강한 자와 강한 민족의 역사에 매료된다. 위인과 영웅의 생애를 즐겨 읽는 것은 어쩌면 우리 내면에 '권력에의 의지'가 꿈틀거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세계제국을 건설하고 지배했던 파라오나 시저 혹은 칭기스칸을 읽고 싶어한다. 그러나 진정한 강자는 약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약하고 짓눌려 온 민족들의 비가를 들려 주고 그들이 소중하게 간직하려 햇던 신앙의 자취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것을 듣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단지 오늘날의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한다는 차원을 넘어, 우리 민족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이 시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참된 마음의 넓이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 김호동의 역사 에세이 <황하에서 천산까지> 머리말

이 글은 제목이 말해주득 황하를 따라 천산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살고 있는 네 개의 민족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 인도 다람살라에서 프리티벳 운동


1장에서는 달라이 라마들이 겪은 영욕의 역사와 티베트 민족의 고난을 2장에서는 몇 세대를 걸쳐 순교의 피를 흘린 회족들의 세계를 3장에서는 정복자의 자리에서 서서히 쇠락해 간 몽골인들의 역사를 분단이라는 비극의 결과까지 그렸고 4장에서는 이슬람을 신봉하는 위그르 민족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펼친 지난한 노력들을 담아냈다.

 저자는 한족, 티베트인, 몽골인, 회족, 위그르 민족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간 중국의 역사가 한족의 시각에 치우쳐온 만큼 소수민족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약자'가 아닌 '인간에 대한 공감'을 끌어낸다. 한쪽을 편든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들의 복잡하고 오랜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강자와 약자, 그리고 그들의 욕망과 원한, 분노. 어느 것 하나 없었던 셈 치지 않고 담아내려는 그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그런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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