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돈 쓰는 것을 싫어하셨고 음식 버리는 것을 싫어하셨다.
음식은 잡채와 옥수수를 좋아하셨고 해산물보다는 육고기를 좋아하셨다. 강원도 분이시니까 당연히 장아찌류를 좋아하셨고 두부도 좋아하셨다. 외식은 짜장면, 음료는 콜라와 사이다를 좋아하셨다.
생밤을 까서 우리에게 주는 걸 좋아하셨고 손주들이 먹다 남긴 과자를 먹는 걸 좋아하셨고 두유와 도넛도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명절이면 항상 생밤을 까서 나에게 먹으라고 주시곤 하셨는데 나는 그 생밤을 진짜 좋아했다. 어머니가 어두운 눈과 투박한 손으로 오래 걸려 깎았을 그 밤을 먹는 게 좀 미안했지만, 어머니는 다시 까면 된다면서 맘껏 먹으라고 밀어주셨다. 정작 어머니는 이가 안 좋아서 잘 드시지 않았지만 나와 아이는 제비 새끼처럼 쏙쏙 잘도 받아먹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항상 어마어마한 양의 과자류가 남았다. 강원도 풍습인지는 모르겠는데 시댁의 제사상에는 다식, 약과, 한과 등 내 집에서는 보지 못한 과자들이 가득 올라갔다. 조카들과 내 아이는 처음에는 호기심에 몇 개 먹기도 했지만 곧 그 과자들이 별로 맛이 없는 것을 깨닫고는 손을 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과자들을 꼭 나에게 집에 싸가 먹으라고 두 번, 세 번씩 말하곤 했고 형님은 동서 약식 좋아하니까 가져가 먹으라고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싸서 내게 주곤 하셨다. 급기야 나중에는 동서 가져가게 하려고 비싸고 좋은 걸로 샀다면서 누가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약과를 내놓기도 하셨다.
나는 나물류를 좋아하는데, 시댁에 가면 항상 각종 나물류가 있었다. 특히 시래기나물이나 취나물 등은 내 입맛에 꼭 맞아서, 형님들이 싸 가라고 싸 주면 진짜 기분 좋게 가져와 기분 좋게 하나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먹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맛대가리도 없는 그런 걸 뭐 하러 싸 가냐면서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조미김보다도 나물들을 홀대하셨는데, 강원도는 나물이 흔하고 나물뿐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는 가벼운 빵이나 과자들을 좋아했는데 당뇨 때문에 스스로 자제를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본인 기준에서 당뇨가 있으니 아주 달콤한 건 안된다고 판단하고 과자도 아이들이 남긴 건 아까우니까 먹지만 새 걸 뜯어서 먹지는 않는다거나, 그런 안타까운 조절도 하셨던 것 같다. 한 번은 아주 달콤하고 예쁜 푸딩을 사다 드린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본인은 단 거는 먹으면 안 된다며 거절하신 적도 있다. 항상 거절의 언어는 "안 먹어"가 아니라 "너 먹어"였다.
쓰다가 보니 어머니는 싫어했던 것보다 좋아했던 게 훨씬 많은 인생을 사셨던 것 같다.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고 귀하다 생각한 것은 나에게도 수십 번 수백 번 권하셨다.
어머니가 또 뭘 좋아하셨더라...
아,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좋아하셨다.
쓰고 보니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