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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어디선가 보고 계셨으면 좋겠다

by Agnes

몇 년 전 엄마를 떠나보낸 친구가 말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성당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고. 종교를 갖지 않고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5월 첫날, 아주버님께서 산소에 다녀왔다면서 가족 단톡에 사진을 올렸다. 간단하게 과일과 생선포를 올려 어머니 아버지께 절도 드리고 산소 오르는 길에 풀이 나지 않게 제초제도 뿌렸다고 했다. 아마도 5월이 되니 나처럼 어머니가 생각났나 보다.


좀처럼 대중교통을 타지 않아 몰랐는데,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보니 역시 5월은 5월이었다. 다이소에도 역사 꽃집에도 여기저기 카네이션이 보인다. 나는 특히 조화 카네이션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생화를 간수할 여력이 없으시고 밤늦게 들어와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 나는 생화를 살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어머니를 뵈러 가기 일주일 전 인터넷으로 플라스틱 카네이션 중 마땅한 걸 골라 미리 주문했었다. 그럼 어머니는 항상 아주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옷 한쪽에 옷핀으로 가지런히 꽃을 달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예쁜 미소를 지어 주셨다. 한 번도 어머니를 사진 찍는 우리를 타박하시지도, 사진 찍는 걸 거부하시지도 않았다. 늙은 얼굴 사진 찍어 뭐 하냐는 그런 소리는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삼우제를 지내러 눈이 푹푹 종아리까지 들어가는 산을 오르며 생각했다. 산을 오르는 우리의 마음을. 그리움, 절망, 슬픔, 안타까움 그런 모든 마음을. 그중에 제일 망연했던 건 어머니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온 추운 겨울날,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온 걸 어머니가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어딘가에서 우리를 좀 보고 계셨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오랫동안 냉담한 내 친구를 성당에 다시 가게 했나 보다. 죽음이 끝일 리 없어, 하는 마음. 이제 보니 산소 또는 납골당에 가는 것도 제사를 지내는 것도 차례를 지내는 것도, 그런 마음들이 없다면 지속될 수 없는 의례들이다. 어디선가 세상을 떠난 내 가족이 보고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그게 귀신인지 영혼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게 샤머니즘이라도 미신이라도 그 무엇이라도 제발, 제발. 그래서 제수를 그렇게 정성껏 올리고 제사를 기다리고 고대하는 거였다. 산 사람들 잘 살자고, 산 사람들 잘 봐 달라고 하는 게 제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애초에 제사의 시작은, 그리움이었다.


아주 아주 옛날에는 부모가 죽으면 3년을 움막을 짓고 산소 앞에서 곡을 했다고 했었나. 그것도 그리움이 시작이었을 테다. 그래서 3년 간 산소 앞에서 곡을 하면서, 슬픔이 사라질 때까지, 부모의 죽음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땅속 부모 곁에서 부모의 영혼이 지켜보고 있으리라 믿으며 무려 3년을.


내가 요즘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모든 드라마가 그런 맥락 속에 있다. 넷플릭스에서 찾아낸 사극은 한국형 오컬트이고, 요즘 보는 또 다른 드라마는 천국 이야기다. 부모를 먼저 보내고 보니 이제 알겠다. 그런 상상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그것이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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