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록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결혼할 때쯤 결혼식 캠코더 촬영이 유행이었는데, 나는 가볍게 패스. 생각조차 안 했다. 연예인도 아니고 어색하게 뭐 그런 걸 찍나. 신랑 신부도 하객들도 그런 문화가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를 가졌을 때는 만삭 사진은 다들 필수로 찍었는데 나는 그것도 패스. 나는 그런 방식의 기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진 연출을 위해 에너지를 쏟느니 그 시간에 눈에 담는 게 더 낫다는 주의이고 무엇보다도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그당시 회사에서의 업무에 열과 성을 다했다. 소진된 몸과 마음을 내 개인 생활에도 쓸 여력이 없었다. 여행을 가도 최소한의 사진만 찍었다. 그것도 풍경 위주로.
아이를 낳고 나서 기록하는 습관이 바뀌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물론 아이 사진은 무척 많이 찍었다. 하지만 그걸 남들처럼 SNS에 올리고 성장 앨범을 만들고 그런 건 하지 않았다. 돌 사진만 겨우 하나 찍고, 돌잔치 때 쓸 영상만 겨우 만들고 끝. 당연히 육아 블로그도 하지 않았다. 가끔 너무나 시간이 가는 게 안타까울 때 간단한 멘트와 아이 사진을 페북에 올리기는 했는데, 그것도 금방 잊혔다.
그런 내가 어머니와의 일들은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느 겨울밤이었다. 나는 아주 옛날에 만든 블로그를 열어 비공개로 기억나는 대로 띄엄띄엄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게 모였고 어느 날 카카오브런치를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쌓인 글들 몇 개를 올린 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아이를 키우는 고단함이 아이를 키우며 얻는 기쁨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동력은, 고단함과 스산함이 팔 할인 것 같다. 항상 그랬다. 기뻐서 쓰는 글, 설레서 쓰는 글은 어느 순간 그만두게 된다. 인생에 새로운 일이 닥치면 동력이 사라진다. 하지만 아파서 쓰는 글, 고단해서 쓰는 글은 끝끝내 쓰게 된다. 쓸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쓰면서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 마음도 달래지고 머릿속도 정리되고 좋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무엇보다 글을 쓰던 그때 내 감정이 오랫동안 남게 된다. 나는 그걸 오래도록 두고두고 읽으면서 다시 위로받는 중이다. 쓸 때도 이미 위로받았고 쓰면서 많은 부분 치유되었지만 살다가 살다가 나중에 읽어보면 내가 쓴 글이 다시 나를 위로한다.
글이란 그렇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내 글을 읽는 내 가족들도 글로 인해 치유되고 위로를 받는 것을 보았다. 우리의 서사, 우리 가족의 서사를 서로 새롭게 읽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긍정하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브런치에 어머니 이야기를 썼더니, 브런치 독자들도 내 지인들도 어머니에게 정이 든 것 같았다. 내가 어머니를 보러 다녀왔다고 하면, 이번엔 또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까 기대하는 독자도 있었다. 그래서 나 또한 어머니를 뵈러 갈 때면, 어머니가 이번엔 어떤 이야기를 주실까 기대하는 마음이 되었다. 슬픈 마음이든 기쁜 마음이든 무엇이든 글감이 되었다. 글감을 생각하면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 더욱 기대되고 설레었다. 결국 쓰는 활동이 어머니에게 더욱 자주 가게 만든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일 중 하나는, 그래서 어머니를 잊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기록함으로 인해 두 배 세 배 기뻐지더니, 추억과 기억도 두 배 세 배 강렬하게 남았다. 그로 인해 더디 잊히고 자꾸 떠올리게 된다. 천천히 잊어 좋은 것인지 잊힐 틈 없이 자꾸 불러내 나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