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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천 년 만 년 사실 줄 알았다

by Agnes

나는 어머니가 천 년, 만 년, 사실 줄 알았다.


나는 서울 소재 대학 어학당에서 일하고 있고 내 아이는 고등학생이다. 아이는 곧, 급격히 나의 손이 덜 가게 될 터이고 나는 여러모로 일을 줄이게 될 것이다. 나는 나의 50대를 상상하며 어머니가 계신 소도시 요양병원 근처 대학을 알아보곤 했다. 그리고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지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 보고 아빠의 주말농장에서의 거리도 검색해 보고 KTX 노선도 검색해 보고 그랬다. 매일 출근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두 번 출강하는 수업을 주로 눈여겨봤다. 나는 일을 줄이고 싶은 데다가 일주일에 한 번쯤 어머니를 보러 가고 싶었다. 1석2조. 그렇다면 일정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시간 강사로 활동하면서 여행 가듯 교외에 들러 어머니도 종종 보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어머니가 자주 보고 싶은 건 나보다는 본인의 아들, 손주일 것을 뻔히 알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외면 가능한 사실이었다.


모두 어머니가 천 년, 만 년, 사실 줄 알고 꿨던 꿈이다.


작년 가을쯤, 어머니의 노후 자금이 바닥이 보였다. 나는 자금이 똑 떨어져 0이 되기 전에 가족들과 이에 대해 상의했다. 요양병원에만 계시지만 어머니에게 들어가는 돈이 사실 꽤 됐다. 한 번 종합병원에 입원해 버리면 구급차비에 간병인비에 백 단위의 돈이 술술 빠져나갔다. 하지만 우리는 자식이 많으므로. 그러므로 비교적 쉽게 십시일반 매월 돈을 걷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 수가 많으니 돈은 순식간에 불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돈은 전혀 쓰지 못했다. 본래의 노후 자금이 딱 0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깔끔한 어머니라니.


작년에 내가 어머니 이야기로 첫 책을 썼을 때, 친한 지인이 말했다. 근처에서 북토크를 하게 된다면 휠체어를 타고라도 어머니가 나와서 보시면 너무 좋지 않겠냐고. 한번 추진해 보라고. 실제로 나는 어머니가 계신 병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책방에서 북토크를 했다. 물론 어머니의 상태가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아서 외출은 꿈도 못 꿨지만. 지인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방이든 병원이든 그 근처에서 어머니 좋아하는 짜장면도 한 그릇 먹고, 끝까지 앉아 계시지 못하더라도 다만 십 분이라도 앉아 계시다가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때는 상상이었지만 이제는 공상이 되어버린 일. 나는 정말, 어머니가 천 년 만 년 사실 줄로만 알았다. 왜 그랬을까. 우리 어머니는 1933년생인데. 사람이 정말 한 세기를 살 수 있을 꺼라 생각했던 것인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것은 무얼까. 내가 지금 깨달아야 하는 일, 그것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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