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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시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by Agnes

어머니는 화장실 갈 때, 문을 잘 닫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볼일을 보시는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한 뼘쯤은 문이 열린 채였다. 불도 켜지 않으셨다. 밤에도 낮에도 항상 그랬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온 우리들이 혹시나 불을 안 끄면, 매의 눈으로 화장실을 주방을 작은 방을 하나하나 훑으며 불을 끄고 다니셨다.


가끔 손주도 있고 아들도 있고 그런 때 어머니가 그러실라 치면, 나는 가만히 가서 문을 살짝 닫아 드렸다. 혹시 도현이가 불편해할까 봐, 혹시라도 민망한 상황이 생길까 봐 그랬었는데. 그건 그저 내가 민망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화장실 문을 열어 둔 채 볼일을 보는 노인을, 나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 익숙해졌을 즈음, 내 엄마에게도 그런 습관이 생겼다. 한밤중에 화장실에 갈 때면 문을 반쯤 열어 둔 채로 볼일을 보셨고 화장실 불을 켜지 않으셨다. TV 불빛이나 주방 식탁 등의 불빛에 기대어 이용하면 되니까 아주 캄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밝지도 않은 채로. 어두침침한 상태로. 내 엄마는 그렇게 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습성이 노인의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조심성이 없어지는 것, 뭔가 부끄러움이 적어지는 것, 뭔가 귀찮은 것이 많아지는 것, 노화에는 그런 것들도 포함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것이 있다. 어머니가 그리고 내 엄마가 화장실 문을 닫지 않았던 이유, 그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러닝 후 집에 들어와 샤워실에 들어갔는데. 문득, 화장실 문을 닫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집에는 나 혼자고. 집에 누가 올 일이 없고. 이 시간 이 집에 나는 완벽히 혼자이므로 화장실 문을 열어 둔 채 샤워를 한들, 속옷만 입고 주방까지 간들, 누가 뭐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거였구나. 어머니는 혼자 너무 오래 살았던 거구나. 어머니는 늘 몇 날 며칠을 혼자이므로. 화장실 문을 소리 내어 딸깍, 닫을 일이 없었겠구나. 그렇게 습관이 일상이 되고 인생이 되었던 거구나. 그리고 내 엄마도 그 수순을 밟기 시작했던 거다. 가족이 줄어드는 일상, 누군가 집에 오지 않는 일상, 종일 혼자 있는 일상.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6개월이 되었다. 살아계실 때 어머니의 모습 중 하나가, 돌아가시고도 6개월이 지나서 이제야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알게 될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을 텐데. 이게 좋은 일인지 슬픈 일인지 서러운 일인지. 참, 서글프다.


오랜만에 만난 큰 시누의 등에서 어머니가 보인다. 딸은 엄마를 이렇게나 닮는다. 나도 그럴까. 내 아이도 어느 날 설거지하는 내 등을 보면서 외할머니를 떠올릴까. 서로 닮은 어떤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것,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신비롭고 거창한 대단한 일이었다. 그게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제대로, 늙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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