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이사는 날로 대단했다. 곳곳에 쌓여있던 묵은 먼지와 쓰지 않았던 것들이 속속히 등장했다.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버릴 것들을 쌓아두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옷장에는 결혼 전에 입었던 말랐던 시기의 옷들이 가득했다. 다시 돌아가면 두려고 쌓았던 것을 한 무더기를 버리고, 아이들의 장난감도 모두 다 버렸다.
결혼한 지 18년 만에 덜덜거리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청소기를 바꾸었다. 새로운 것을 들인다는 것은 기존의 것과는 작별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것을 들이는 마음이 신혼살림 장만하는 마음처럼 들뜨지 많은 않았다. 구닥따리 옛날 것, 손에 익은 물건이 좋았나 보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새로운 기계와 친해지는 시간도 어색한 걸 보면 말이다. 정들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나이가 드니 한 곳에 정착해서 쭉 살고픈 마음이 있었음을 이사한 후에 알게 되었다.
오랜만의 이사여서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이 진행되었다. 청소, 가구, 짐, 가전 모든 것이 어그러져 2주간 끙끙거렸다. 널브러져 있는 곳에서 잠이 오질 않아겨지서 눈을 뜨면 닥치는 대로 정리를 했다. 2주가 지난 후 짐이 정리가 되자 설날이 되었다. 처음으로 부쳐간 전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힘이 들었고, 조카가 걸린 장염을 온 식구가 얻어 여전히 골골거리고 있다. 어린아이의 장염이 온 가족에게 옮은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도 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면역력이 떨어진 것이다
식탁에서 바라보면 야트막한 동산이 보인다. 1층에서는 바라볼 수 없었던 풍광이다. 이제야 창밖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오늘은 눈발이 제법 흩날리는 것을 아이들과 한참을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조금 더 나아지겠지? 산에 초록이 올라오면 조금은 나아지겠지?라는 마음을 먹어본다.